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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우골의 피구 법칙


맞으면 죽는 거야. 죽는 척 하는 거야? 죽는 거라니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무섭지 않던 때가 있긴 했었다 가슴 언저리에 공을 세게 맞고 그 움푹 파인 것 같은 살들을 부여잡고 딱딱한 모래 바닥에 눕는 것이 우리들의 법칙이었다 햇빛이 이마를 뚫을 것처럼 쏟아졌다 그것을 가리기에 눈꺼풀은 너무나도 얇아서 이를 악물어야 했는데 그러면 죽어야 한다는 법칙이 깨졌다 나는 살아 있는 걸 잘 하지 못해서 자주 죽었는데 옆에는 항상 은정이가 먼저 죽어 있었다

― 저기 봐, 구름이 동그래.

― 우린 죽었으니까 눈 뜨면 안 돼.

― 눈 떠서 보이는 게 아냐.

눈을 감고 숨을 느리게 쉬어보라고, 은정이는 좀 어려운 말을 했다. 우리는 죽었으니까 숨을 쉬면 안 되는데, 나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를 깍 깨물고 있었는데 은정이는 턱에 힘을 풀고 천천히 숨을 쉬라고 했다 공에 찌그러졌던 흉골을 천천히 부풀어 올리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처럼

오래 누워 있으면 손끝이 저렸다 등에는 모래 모양 무늬가 새겨졌다 은정이는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구름들을 이야기했다 네가 가지고 싶은 모양들을 모두 그려도 돼, 어차피 가질 수 없으니까. 종이컵은 깨질 수 없다는 말처럼 태평한 그 말들 위로 피구공이 거세게 날아갔다 어떤 아이들은 피구공에 힘을 실어 던질 수 있었다 나는 뭔가를 꼭 던져야 한다면 공이 아니라 종이학이나 휴지로 접은 장미꽃을 던지고 싶었다 그것들이 어디에 부딪혀도 움푹 파이지 않도록, 그런데 그 일들은 너무 어려웠다 피구 시합이 끝나면 애써 그려놓았던 하얀 선들은 모두 엉키고 헝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때는 그 선이 흐트러지면 그 사이가 바다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 나중에 지옥 간다.

피구공에 맞아 죽은 뱀이나 사마귀 따위를 보면서 은정이는 그랬다 공을 던지고 싶지 않아서, 어떤 것이라도 움푹 파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은정이는 공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깨어날 줄 모르는 낮잠을 자고 싶었다 은정이와 제일 먼저 공을 맞고 선 밖에 이 피구 시합 때문에 죽을 작은 것들을 미리 추모하고 그 대신 죽어 있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사이렌 소리가 울려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비가 쏟아져서 구름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눈을 뜨지 않고, 죽은 친구의 복수를 하러 온 다른 뱀이 내 배를 타넘더라도 소리치지 않고, 죽어 있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자주 죽어 있는 연습을 하면 정말로 죽을 때 두렵지 않을 테니까

맞으면 죽는 척 하는 거야. 죽는 거야? 죽는 척 하는 거라니까.






작가 소개




이유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붙는 모든 씩씩한 마음과 명랑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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