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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동시에 오한기인 어떤 한상경

* 이 글은 한상경 작가의 <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의 리뷰 원고입니다.




이 글이 한상경에 대한 글이 될지 오한기에 대한 글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한상경에 의하면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라고 하며, 한상경이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것이고 한상경이 오한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한기라고도 하는데 나는 이 문장들을 어디서 본 것 같다. 트위터에서였나. 어느 순간 오한기의 소설에는 한상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많은 동물들처럼 그냥 사라졌다. 둘이 절교라도 했나. 아니면 한상경이 또 글을 쓴답시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났나. 둘 사이의 연락이 뜸해졌나. 그렇다면 한상경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오한기는 트위터에서 몇 개의 계정들을 사용했다고 추정되고, 지금은 @ohhankee라는 계정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계정의 이름은 오한기. 한편 @hansanggyeong이라는 계정의 이름은 오한기 봇이다. 오한기에서 오한기로. 오한기 봇은 세 개의 다른 계정을 팔로우 하는데 서울 생활(@seoulbal)과 친친나트(@analrealistcin), 그리고 오기 마치(@analrealism)다. 트위터에서 analreal이라고 검색하면 몇 개의 계정이 더 나온다. 장 피에르 멜빵, 토끼 주둥이, 장 루이 루꼴라. 그 계정들은 오한기인지는 모르겠고 어쩌면 한상경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오한기의 친구들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비 오는 3월에 책방 비엥에서 정지돈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려 은평구로 향했다. 정지돈은 러시아 소설 이야기를 많이 했고 러시아 소설을 많이 추천했지만 한국 소설도 골랐는데 그는 고른 소설마다 짧게 한 줄 평을 달았고 정지돈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동료들의 소설에는 유머를 조금 섞었다고도 더했다. 이상우 행성으로 날아가는 우주선 warp 호와 인터내셔널가 혹은 김새벽의 ‘인터내셔널의 밤’ 낭독문. 『의인법』에는 지금 네이버 블로그는 오한기의 추종자들이 쓴 오한기의 팬픽으로 뒤덮였다고 달려있었다.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았지만 내가 어쩌다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오한기의 팬픽을 보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딘가를 통해서는 들어갔을 텐데. 다만 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갈색 나무 책상 비슷한 색의 네이버 블로그 스킨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종종 서울 어딘가와 경기도 어딘가에서 그 ‘팬픽’을 읽었다. 그곳에는 오한기와 또 다른 오한기, 금정연과 한국 문학이 등장했고 이들은 엇나가는 이야기를 하거나 엇박자의 질문과 대답을 했다. 글은 너무나 짧은 게 언제나 아쉬웠고 그럼에도 이런 글을 읽는 것이 좋았지만 정작 블로그 이름과 블로그 주인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한상경이었을까. 이제 그 블로그는 존재하지 않아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다.

오한기의 소설에서는 오한기가 ‘나’이며 ‘나’가 아닌 한상경과 대화를 하고, 한상경의 소설에서는 한상경이 ‘나’이며 ‘나’가 아닌 오한기와 대화를 한다. 이것은 오한기의 소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에는 같은 한상경이 나오는 것과 미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햄버거를 찾아 돌아다니는 한상경과 외계인을 만나는 한상경과 피츠제럴드를 키우는 한상경. 마츠다 류헤이를 닮은 오한기와 조성진을 닮은 오한기와 오한기를 닮은 오한기. 사실 나는 오한기가 앞의 저 둘을 닮았는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라이프 북스에서 정지돈과 함께 있는 오한기의 실물을 보고 싸인까지 받았는데. 어쩌면 그 오한기도 다른 오한기였을지도 모른다.



「오한기와 오한기들」에서 한상경은 자신이 설명을 싫어한다고 쓴다. 꼭 설명도 못하는 것들이 설명을 요구하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설명이 아닌 인간성의 상실이다. 설명을 요구하는 것들은 다 파시스트들이야. 나는 내가 설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설명만 쓸데없이 길게 해대는 글을 쓴다고 보지만 내가 쓰는 글이 설명이 아니라 그냥 아무 말이라고만 느껴질 때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오한기를 설명하려 한다. 동물들, 인간 이하, 고유명사들, 포스트-휴먼, 맥락 없음, 시대착오, 비약, 의인법, 이스트우드, 자급자족, 메타픽션, 소설 쓰기, 폭력, 무질서, 1985년, 동국대학교, 정지돈, 후장사실주의. 물론 한상경으로 오한기를 설명하려는 경우도 있다. 금정연은 그리고 한상경. 그는 오한기의 자기혐오 그 자체다! 고 소리친다. 그렇다면 오한기로 한상경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설명하는 건 결국 설명하는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결국에는 설명이 정말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한기의 소설에서의 한상경과 한상경의 소설에서의 오한기는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것을 설명해봐.

「재미를 모르는 멋진 사람들」에서 그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은 전부 어디선가 훔쳐온 것들이라고 한상경이 쓴다. 한상경과 오한기의 글을 섞어놓으면 어떤 것이 한상경의 글이고 어떤 것이 오한기의 글인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한기의 소설에서 한상경은 종종 오한기보다 더욱 더 대범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한상경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햄버거와 외계인을 찾고 납치와 섹스를 하며 글을 쓴 후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에 비해 오한기를 한국에 박힌 채로 글을 쓰지 못한다. 나는 오한기가 한상경을 부러워한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오한기가 한상경을 심하게 질투한 나머지 권총으로 쏘든 독이 든 햄버거를 먹이든 하드커버 책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든 담뱃불로 불태우든 그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그의 글과 블로그를 훔쳐 소설을 발표해 거장이 되는 팬픽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한상경과 오한기로 커플링을 해 꾸금 혐관 팬픽을 연성할 수 있지 않을까. 공수는 모르겠다.

「오한기라고 부르면 대답 안 함」에서 오한기는 한상경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한상경은 오한기의 소설은 질문과 또 그것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대답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질문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므로 설명에 묶여있지 않는 질문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면 어디든 히치하이킹할 수 있으며 설명에 묶여있지 않기 때문에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오한기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질문을 한다. 대답이 가능하려면 우선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오한기가 한상경의 소설 속에서 말한다. 한상경도 모른다고는 말하지만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오한기는 한상경으로 질문을 하고 한상경은 오한기로 질문을 한다. 여기서 한상경이 누구고 오한기가 누구인지는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다. 그 둘은 친구이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설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맥락을 무시하는 장소들」에서 한상경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친구를 만들고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 누군가라도 만나서 친구를 맺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결국 나도 친구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구가 많다는 걸 애초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오한기와 한상경 중 누가 먼저 친구가 되려고 다가갔을까.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친구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오한기와 한상경은 한상경과 오한기이면서 서로의 친구다. 그리고 한상경과 오한기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라이프 북스에서 오한기와 정지돈은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했는데 중간에 오한기가 화장실에 간다고 2층으로 올라갔다가 몇 분 뒤에 다시 내려왔다. 정지돈은 오한기에게 그동안 외로웠다고 말했다. 그 사이 오한기와 오한기가 바꿔치기 됐을 수도. 결국 나는 둘을 구분할 수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정지돈은 하는 것이고 오한기는 되는 것이다. 정지돈을 읽으면 정지돈을 하게 되고 오한기를 읽으면 오한기가 되게 한다. 지금도 누군가가 오한기가 되어가고 있다. 팬텀 이미지 정지돈은 오한기를 한기라고 부르고 야간 경비원 정지돈은 오한기를 기한오라고 부른다. 한상경은 오한기를 오한기라고 부르고 오한기는 한상경을 한상경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들을 조금 다르게 부르고 싶지만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오한상? 오한상은 일종의 개념이다. 방금 만들었다.

맥락 없는 변화. 그것이 오한상의 미래. 오한상은 변주되고 흩어지고 조합되고 변신한다. 오한상과 오한상의 글은 그러한 방식으로 맥락 없이 변화하며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고 그냥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적어도 내게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며 나는 다만 오한상이 오한기로 존재할 때의 글과 한상경으로 존재할 때의 글을 읽을 뿐이다. 읽는 것은 곧 관측이고 관측을 하는 순간 그 글들은 한상경의 것이 되거나 오한기의 것이 되며 이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순간 원래의 모습에서 달라져버린다. 이미 달라져버렸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것은 일단 오한상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오한상의 어떠한 가능성이 이번에는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것은 일종의 2차 혹은 3차 창작, 팬픽 연성과 비슷하다.

사실 이래놓고 잘 모르겠다. 나는 단지 오한상이 좋을 뿐이다. 그게 오한기든 한상경이든 상관없다. 둘 사이에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것이 곧 가능성이 된다. 나는 오한상이 존재할 수 있는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좋아한다. 나 말고도 오한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에는 확실히 있다. 확실히 있다면 어쩌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오한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한상경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이 글을 싫어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과 재작년에 책으로 만들어진 오한기의 글을 읽었고 올 겨울과 봄에 오한기의 팬픽 블로그에 실린 누군가의 글을 읽었으며 여름에는 SRS에 실린 한상경의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는 오한기가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한상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오한상이다. 오영은 이오가 몇 십 번씩 만든 게임 캐릭터고 오한기와 한상경은 오한상에서 만들어진 혹은 오한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그런 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설명은 힘들겠지만 친구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그들의 글은 너무 재미있고 나는 그들의 글이 정말 좋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고, 일단 한상경의 연재와 오한기의 신작을 기다린다.

이 글이 한상경에 대한 글인지 오한기에 대한 글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타협할 수 없는』의 썸네일에는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오한기 혹은 한상경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오한상이 나 어릴 때는 이런 거 3초 만에 풀었어, 라는 하얀 자막을 내뱉는다. 그가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뒤편에 있는 창틀에 올라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하얀 고양이의 흐릿한 뒷모습이 정말 귀엽다.




필자 소개


나원영

글을 씁니다. 그보단 인터넷을 더 많이 합니다. 그래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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