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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영화 #7] 바캉스



바캉스


안태준





1.


온기가 쉽사리 빠져나가는 북향집에 살면서도 나는 줄곧 식은땀에 흠뻑 쩔어서 깼다. 내가 가장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희롱을 한다거나. 나 보다 조금 더 성장해 있는 인간들이 나와선 내게 모멸감을 줬다. 꿈에서 깨도 이 더러운 감정을 어찌 해소할 방편이 없었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그 꿈들을 다시 복기 하거나 끔찍한 감정을 묵직하게 끌어내리고 싶어서 줄담배를 핀 뒤 머리가 띵할 정도의 차가운 콜라를 들이켰다. 어떤 인간에게만 국한된 능력, 내지는 감각일 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보다 핍진한 꿈을 꾸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그 부류에 속했다. 퇴사한 이후 남은 것이 시간 밖에 없는 내게 시간을 죽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는 것이었다. 밤엔 처방받은 약을 먹고 바로 잠에 빠지고, 낮에는 그 기운을 이어받아 해가 중천에 뜬 시간까지 잔다. 일어나면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가볍게 영화 한 편을 본다. 어두운 방에서 보는 영화에 눈이 편할 리 없다. 시큼해진 눈이 피로를 호소하면 또 잠에 든다. 잠의 끝은 다시 약을 먹을 시간에 기상하는 것. 친구 케이는 하루를 이렇게 짧게 쓰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나로서 하루만 살아본다면 그 말을 철회할 거라 자신한다. 내가 꾸는 꿈의 내용은 현실의 일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아는 인물들이 그만의 성격을 지닌 채 평소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꿈의 내용 또한 적당한 플롯이 존재한다. 대체로 내게 압박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악몽으로 느끼긴 하나 이 섬뜩함은 분명 내 안의 불안이 만들어 냈기 때문에 아주 ‘아니’라고 볼 수 없는 모종의 현실성이 있다.



2.


누구나 초능력이 하나쯤은 있다. 맛으로 계절을 지각하는 능력, 또는 청각으로 계절을 알아채는 능력. 필라멘트 하이브리드 5를 우연찮게 얻어핀 날에 문득 작년 겨울로 돌아가게 됐다. 이 무렵 나는 롱패딩을 입어도 들어오는 한기에도 담배를 피겠다는 일념 하나로 옥상에 올라갔다. 미지근한 손난로를 만지며 쓸데없이 목이 시원해지는 멘솔 담배를 피곤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땡큐 넥스트'를 반복재생 하면서 지난 연애의 구질구질함을 애써 '땡큐, 땡큐' 로 무마해버렸다. 모든 게 끝나는 그 날 이 말 한마디 던지고 나올 걸, 나 진짜 멋 없었다. 으. 이런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제법 잘 흘러갔고, 금세 나른해졌다.

잠에 빠져 악몽에 허우적대거나 공상하는 시간 외에도 내게 남은 시간은 무한정이었다. 6년간 결근 없이 출근한 대가로 퇴직금이 제법 넉넉한 상태였다. 전 입사 동기는 퇴직금을 받으면 함부르크에서 일년을 체류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가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왜 독일을 가고 싶어 했는지, 그 많은 도시 중에서도 왜 함부르크를 골랐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가 가고 싶어하던 여행이 내 여행의 도화선이 될 지도 한참 뒤에야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자력으로 선택했다고 느끼는 것들이 알고 보면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착안된 건 한 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다.



3.


섬에 머무른지 보름이 지났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온종일 버려진 매트리스에 누워 있다가 볕이 들면 해변에 나가 바보처럼 서 있는 갈매기를 관찰하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푸석한 모래밭에 누워 살갗이 타는 걸 내 버려두었다. 불쑥 한 여인이 찾아와 "여기서 누우면 안 되는데요. 여긴 모래보호구역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보호할 게 없어서 모래를 보호하나. 저 여자는 내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군말 없이 모래를 툭툭 털고 해변의 구석을 향해 걸었다. 해변에 구석이 있기 만무하겠지만 파도의 수평선으로 내리 걷다보면 외딴 지점이 하나는 있을 것 같았다. 이십분 쯤 걸었을까. 뒤꿈치가 멍든 것 처럼 쑤실 무렵 거대한 돌무더기 앞에서 멈췄다. 돌에게도 역사가 있다면, 이 돌은 누구를 만나서 다정함을 느꼈을까. 누가 여기에 찾아와 몸을 뉘이진 않았을까. 나는 돌무더기에 무한한 애틋함을 느끼곤 아슬아슬한 비탈을 올라 돌 무더기 가장 위에 앉았다. 올라와 있는 시간동안 나도 유구한 돌이 된 기분을 느꼈다. 이 섬에 온 이유가 이 돌을 만나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자문하면서.


새벽녘에 일어나는 날엔 숙소 근처 숲으로 들어갔다. 빛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의 쓰러진 상수리 나무에 얹힌 모습이 눈에 띌 무렵 신발을 벗고 걸었다. 축축한 이끼 때문에 발이 땅 속에 푹푹 들어갔다. 말라 비틀어져 썩어가는 나뭇잎과 떨어진 나뭇가지 잔재들 때문에 발바닥 부터 종아리까지 빨갛고 얇은 빗금이 그어졌다. 쓰라림보다는 개운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좀체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그건 어쩌면 축복이었다.

민감했던 지난 날엔 좀스러운 생채기에도 무방비 상태의 부상당한 군인처럼 속수무책으로 떨었다. 생채기 하나마다 그 날의 기억이 방출됐다. 이렇게 예민할 필요는 없는데. 라며 되뇌어 봐도 늘 상처는 강제로 새긴 타투마냥 억울한 흔적으로 남았다. 내성이라는 건 약물 효과에만 적용되는 지, 새로운 통증에는 썩 효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픔을 외면하는 훈련은 계속됐다. 나는 상처를 부정하고 싶어서 번번이 통증을 이 악물고 참았다. 턱 근육이 발달되는 만큼 통증에 둔감해지는 능력도 점차 늘어갔다. 통증을 익히면서 상실된 건 새로운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민감한 촉수를 몽땅 다 털어서라도 아픔을 전부 떨쳐내고 싶었다. 어금니를 앙 물면서 집중했던 건 현재와 아주 다른 세상의 나였다. 이 아픔을 견디는 건 ‘진짜’ 내가 아니라 완벽한 타인이라고 생각하면 통증도 견딜만 했다.


- 한국 비둘기는 좀 특이해. 차를 피하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들끼리 장난을 치는 것 같다니까. 분명 나랑 멀리 있었는데 내 자전거 앞으로 존나 빠르게 후다닥 달려들어. 내가 놀라서 급정거를 하면 그제서야 밍기적 거리고 다른 곳으로 빠진다니까. 차를 피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불나방처럼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거. 그거 일종의 놀이문화인지도 몰라. 걔네끼리 엄청 익사이팅한 놀이를 하는 거라고.

- 지난 번엔 나 비둘기한테 뺨까지 맞았어. 걔네끼리 짜고 치는 건 아닐까 했는데 네 말 듣고보니 그럴싸하다. 개체 수는 늘어가는데 할 만한 유희거리가 뭐가 있겠냐. 존나 심심하겠지, 게다가 인간은 몸집도 존나 큰데 대부분 비둘기 무서워하잖아. 걔네도 알겠지. 인간을 존나 좁밥으로 알 수도. 그게 아니면 뭘까. 존나 지구 정복하려고 인간 공격하는 걸까.


견딜 수 없이 심심해질 때면 따분함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하는 것보다 케이가 말해 준 비둘기의 비행을 떠올리는 편이 훨씬 위안이 됐다. 며칠 동안 바닷가나 숲에 들어가 누워있다 보니 약간의 해방감도 식어버렸다. 또 다시 어딘가 떠나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미지의 공간에 관한 두려움만 커져서 이동할 엄두가 안 났다. 이렇게 하릴 없이 누워있는 건 내 방 침대에서 공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늘막에만 있다가 햇볕을 쐬고 싶어져서 사구로 걸어갔다. 여긴 너무 한적하고 넓어서 걷다보면 내가 모래알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침 입고 있는 옷도 살구색 슬립이었다. 누워있으면 아무도 발견 못하겠지. 괜히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지난번에 입고 있던 건 새빨간 점프수트 였으니까 발견된 거겠지. 이번엔 내 시간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거다. 그나저나 숙소엔 어떻게 돌아가지. 발자국은 바닷바람 때문에 다 지워지고 없었다. 도망칠 요량으로 온 여행이라 로밍 신청은 당연히 안 했다. 돌연 찾아온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코 속에 모래가 꽉 들어찼다. 슬립 끝자락으로 코를 거칠게 풀었더니 나오라는 모래는 안 나오고 눈물이 팽 돌았다. 햇볕은 여전히 눈부셨다.


그냥 울기로 결정했다. 크게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먼저 소리부터 질렀다. 그리고 하품했다. 교감신경 때문에 하품하면 무조건 눈물이 나니까. 제법 우는 모양새가 나왔다. 그리곤 이 과정을 휴대폰으로 남기기로 했다. 곤경에 처하거나 패닉이 오면 생각이 이상한 과정으로 흘러간다.

이제 휴대폰을 모래에 제대로 꽂아두고 그 앞에서 제대로 울어보기로 한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고함을 지르고 연신 하품을 했는데 나오라는 눈물은 안 나오고 콧물만 질질 흘렀다. 삼분 째 괴성을 지르고 나니 그냥 외로워지기만 했다. 촬영한 영상을 확인해보니 얼굴은 터질 듯 벌게지고 콧물과 침만 질질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는 대신에 그냥 그 영상만 반복해서 재생했다. 딱히 후련한 감정은 없었다. 영상에서 같잖게 울음을 시도하는 내가 웃겨서 실소가 터졌다.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모양새가 고라니 같았다. 급격하게 덜 외로워졌다. 나와 내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귀가 째지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예감했다. 아 그 사람인가.

- 그저께 그 분 맞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여기 계시지 말라고요. 한국사람 아니에요? 한국말 알아들을 줄 몰라요? 아, 혹시 중국 분이세요? 아 유 차이니즈? 플리즈 돈 컴백 히어. 아 유 언더스탠? 유 캔트 컴 투 히어. 아 이게 아닌가? 여기 오지말라는 말이 영어로 뭐지. 유 슈드 낫 컴백 히어. 오케이?

- 죄송합니다. 나갈게요.

- 뭐야, 한국인 맞네요. 왜 못 알아듣는 척 하셨어요. 여기 모래보호구역이라고요. 들어오시면 안 돼요.

- 여기 관리인이세요?

- 아뇨, 관리인은 아니고 여기 사는 사람이에요. 원래 여기 규칙이 그래요. 요즘 한국 사람들 많이 오면서 제가 눈치를 많이 봐요. 협조 좀 해주세요.

- 여기 한국인 많이 와요?

- 네. 일단 여기 나와서 얘기하세요. 원, 한국인들은 왜 다른 나라와서 안 좋은 꼴 보이는 지 몰라.

- 저 한국인 아니에요.

- 알겠으니까 나와요.


실없는 거짓말을 했다. 왜 그랬지. 믿어줄 리가 없는데. 여자는 내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바다를 따라 계속 걸었다. 황당한 말에 뒤 끝 없이 넘어가는 걸 보니 내게 시비를 걸고 싶어서 온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왜 이 모래를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지에 관한 물음은 여전히 얻지 못했다.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너무 시시해서 농담인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지만. 그녀가 품고 있는 한국인에 관한 혐오감도 어쩌다 커진지도 알고 싶었다. 그녀 역시 한국인이면서.

아쉽게도 그녀는 일말의 투덜거림도 없이, 대화의 작은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나를 이끌고 도로까지 나왔다. 이 부근 도로가 익숙한지 양 옆을 간단하게 살피고는 무단횡단해서 내 반대 방향으로 멀리 걸어갔다. 나는 한참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봤다. 실 없는 농담 외에는 그녀에게 말 붙일 용기가 없던 자신을 탓했다. 혹시나 사구로 돌아가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까. 그 때는 미리 준비한 몇 가지 질문들을 건넬 수 있을까. 고민해봤지만 이미 하늘엔 땅거미가 짙게 내려 앉은 뒤였다.


숙소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다 근처에 자리 잡은 민박집이 아니랄까봐 비린내를 레몬으로 잔뜩 감춘 생선구이와 조개가 한껏 들어간 전골이 끓고 있었다. 식탁에는 이미 여섯 명의 사람들이 수선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 자리인 듯 보이는 빈 의자에 착석할까 했지만, 세 명 이상 앉아있는 자리는 영 부담스러웠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는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씨는 투박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독일어쯤 되어 보였다. 말도 안 통하는 저들과 저녁 식사를 나눈다면 백퍼센트 체하겠다는 판단이 서서 꾸벅 인사만 하고 침실로 올라갔다. 남자는 아쉬운 기색도 없이 바로 몸을 틀어 다른 이들과 대화를 이었다.

한국인을 피해 타국으로 넘어오긴 했지만 여간 적적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아까 말을 건 남자에게 호의적인 태도라도 취할 걸. 지금 내려가면 이미 식사는 끝나고 정리가 끝났을 시간이다. 베개에 머리를 박아봤지만 1층에서의 웃음소리가 2층 구석의 내 침대까지 울려 도무지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여기에 온지 근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기였다. 유일하게 대화를나눈 사람은 사구에서 마주친 여자뿐이라 타인과 대화하는 방법의 기초부터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허기는 없었지만 대화는 굶주렸다. 누구라도 내게 대화를 청하면 내밀한 곳까지 알려줄 작정이 되어 있었다.

기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친구를 사귀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와도 교류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나로 먼 이국까지 날아왔다. 내가 친구가 많은 사람인가? 전혀 아니다. 한국에서도 연락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의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외부의 모든 자극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 태도는 처음의 결심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 실은 새로운 공간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자극을 찾고 싶었던 걸까. 비둘기가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로에 뛰어들 듯이 나 또한 이국에서 원초적인 자극을 강구하고 있는 건가.



4.


눈앞이 파랗게 번지고 있었다. 육안으로 새벽녘인지 저녁 어스름인지 정확히 구분은 안 되지만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축축한 새벽의 공기가 느껴졌다. 간밤에 내가 술을 마셨던가, 아니면 정량 이상 먹은 약 때문인가 속이 불편했다.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작가 노트


진부하고 지루한 소설을 드디어 마쳤습니다.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작업을 꽤나 고민해서 어딘가에 내어 보는 일이 이렇게 근성이 필요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쓰면서 타계한 자크 타티에게 얼마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단순히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개그 코드 때문에 지루하다고 일단락 해버린 점에서 가책을 느꼈습니다. 모임에서 듣기에 그는 아주 치밀하고 계산된 감독이었는데 말이지요. 그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썼다고 하기엔 이 글은 과히 불온합니다. 독자들께서는 이미 제 글이 영화와는 아주 다른 정서를 띄고 있다고 염두에 두고 보시겠지만, 그래도 염려가 되는 점이 많습니다.

저는 이 글을 마치고 타티의 영화로 다시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이번에는 거기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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