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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영화! #1]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노정원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다.”

_ 이창동 감독1)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기획을 접했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내가 이미 특정한 영화에 대한 그와 같은 글을 공개적인 곳에 여러 차례나 올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140자 이내였던 그 짧은 글들은 궁금하지만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기대나 설렘 등을 담은 것들이 아니라 절대 보지 않기로 다짐한 영화를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길 바라는, 지극히 악의에 찬 마음으로 휘갈긴 험담들이었다. 이를테면 칸에서 처음 영화가 공개됐을 때 리뷰들을 찾아보고서는 "또 여자 죽이는 한국 영화"가 나왔다며 섣불리 영화를 격하시켰고, 것도 모자라 서구 평론가들이 아시아권 또는 제3세계 영화들 속의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경향까지 지적하며 혹시나 이어질지도 모르는 해외 평단의 후한 평가와 수상 등의 성과를 미리 깎아내리려는 성의도 보였다. 돌이켜 보면 특별히 거짓을 지어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썩 정당한 비판을 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당시의 나도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런 께름칙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비평이 나올 때마다 여느 때보다 열심히 찾아 읽고서는 미리 지적해두었던 비판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을 발견할 때면 안심하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내게 그 영화는, 좋지 않은 영화여야만 했다.



"<버닝>의 ‘답’은 숨겨져 찾지 못하는 것(미스터리)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미스터리는 추적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건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_ 우혜경 평론가2)



영화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비평들을 보다 자세히 읽어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에 주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글을 읽는 건 보통 영화를 본 이후로 미루고는 했었는데, 그러다보면 미처 읽지 못한 글들이 쌓여 다 챙겨 읽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영화를 절대 보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고 나니 스포일러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직후 나온 해외 평단의 리뷰부터 관객들의 개인적인 관람평까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글들을 읽다보니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의 이미지들이 조각모음 되어 맞춰지고 있었다. 이야기 전개와 인물들의 동선부터, 심지어 많이 인용된 일부 장면들의 경우 카메라 워크나 장면 전환 방식까지 그려졌다. 결국 나는 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직접 눈으로 본 다른 영화들보다 더 자세한 부분들까지 알게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막상 영화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영화제에서 내내 졸면서 앉아 있었던 그 상영관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던 영화는 '본’ 것이고,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의 담론들을 세세하게 탐색하며 그 전경의 윤곽선을 충분하게 파악해버린 이 영화는 ‘보지 않은’ 것일까?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_ 해미의 대사



어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예상과 기대를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실제의 이미지와 맞춰보며 탐색해나가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평소에 좋아했던 감독의 신작을 보러 갔을 때엔 이미 그 영화를 좋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자신이 기대했던 ‘좋은 영화’의 틀에 실제 펼쳐지는 영화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영화에 대한 비평들을 찾아 읽으며 모은 파편화 된 정보들을 가능한 최악의 방식으로 맞춰나가던 내 모습이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할 수 있겠다. 결국 내가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은 막연하게 상상 속에 그리고 있던 실체 없는 잠재적인 이미지와 실제로 눈앞에 물질적으로 구현되는 실체적인 이미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둘을 잇는 선분 위에서 어떤 경우엔 전자에 더 가까울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엔 후자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다면 전자의 이미지는 공백으로 비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나는 정말 그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일까? 그저 실체적인 이미지와 맞춰보는 탐색의 단계에만 아직 이르지 못한 채, 조금 '덜' 본 것은 아닐까?



"관객의 예단을 허용한 다음 그걸 깨트린다. [...]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예단하는 과정의 확인이라는 영화 문법의 틀을 깬다." _ 김영진 평론가3)



그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나의 관심은 온통 그쪽에 쏠려 있었다. 사실 그 영화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던 감독의 오래 기다려온 신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난, 이를테면 그 영화를 좋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 기대는 정반대로 뒤집혔고 나는 영화를 절대 보지 않으리라 공연하게 다짐하게 됐다. 다짐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전혀 다른 맥락의 논의를 가져오게 되는 일이므로 글 바깥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직접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실컷 떠들었고 지금도 떠들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자기모순에 대해 탐색하는 글이니까. (계획했던 바는 아니지만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뒤집혀진 나의 기대는 영화에 대해 품고 있던 잠재적인 이미지를 정반대의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아직 보지 않은, 아니 덜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흥미로운 건 덩달아 이전까지 무척 좋아했던 그 감독의 전작들에 대한 감상도 조금씩 뒤집혔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나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던 영화의 이미지들도 내 안에서 다시 이어 붙여지고 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실상 그 영화들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어 보이는 영화 바깥의 계기로 인해서 말이다.



“고양이가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_ 종수의 대사



결국 어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영화 그 자체의 실체와 생각만큼 가까이에 있는 일이 아닐지도, 그렇다면 <버닝>을 보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은 진작 깨져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난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그 영화의 조각들을 너무도 성실하게 탐색하고 있었으니까. 나아가 지금은 영화에 대한 글까지 쓰고 있지 않은가? 꼭 감상을 기록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한 글도 매번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국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구체 없는 추상의 윤곽을 더듬어 나가고 있는 이 막연하기 짝이 없는 글은, 여러 리뷰들을 읽으며 가늠해 보았던 그 영화에 대한 인상을 충실히 복기하고 있기까지 한 모양새다. 어떤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 영화를 개인적인 또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거부하겠다고 하는 결정이라고 한다면, 어느 쪽이든 나는 이미 처참하게 실패한 셈이다.



"전 버닝 안 봤어요." _ djuna4)



어쩐지 어떤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다짐보다 절대 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경우가 더 잦아지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모 감독의 신작을 보러 가는 일이 괜찮을지, 결국 참지 못하고 보러 가게 되지는 않을지, 혹시나 보게 되었을 때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는 무색한 걱정을 하고 있다. 나는 무사히, 그리고 충분하게 그 영화를 보지 않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화의 그림자가 서서히 내게 비춰지고 있는 것만 같다.


1) 연합뉴스, 2018-05-20, [칸영화제] 이창동 "미스터리, 가슴으로 안아줘 감사", https://www.yna.co.kr/view/AKR20180519059451005

2) 씨네21, 2018-06-07, <버닝>의 냉정함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0340

3) 씨네21, 2018-05-31,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버닝> 평론 - 無의 몸짓,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0279

4) 트위터, 2018-05-17, https://twitter.com/djuna01/status/997050691947450368



작가 노트


글을 쓰기 전에 개인적으로 정해둔 규칙이 있었다. (본문에도 언급한대로) 이미 충분하게 알게 돼버린 영화의 장면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는 것, 그리고 영화 바깥의 논쟁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화 안팎의 구체적인 레퍼런스 없이 글을 써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이런 당최 뭔 소리인지 모를 막연한 글이 나와 버렸다. 그런데 뜻밖에 이 글이 이번 기획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다는 다른 참여자 분들의 추천을 받아 부끄러운 첫 순서가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서 어쩌라고’인 이 글은 부디 가벼운 농담처럼 읽어주시고, 이어질 다른 분들의 멋지고 다채로운 작업들을 기대해주시길.

(p.s. 뜻하지 않게 트윗이 박제되어버린 듀나님께 송구스런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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