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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영화~ 알기는 아는데 보지는 않았어요 [서문]



[아, 그 영화! 알긴 아는데 보지는 않았어요] 라는 모임의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모임은 5주간 진행된다.

2. 모임에 참석한 멤버는 약 5주간 기록할 ‘자신이 보지 않은 영화'를 정한다.

3. 모임에 참석한 멤버는 매주 모여 ‘자신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기록을 공유한다.

4. 마지막 주에는 모두가 기록을 완성한 형태로 가져와 함께 읽는다.


모임은 8월 2일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을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물론이고, 부지런하게 영화를 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무 많은 영화의 목록 앞에서 놓친 영화들의 평을 찾아보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짓는 시네필, 그냥 거짓말을 뻔뻔하게 잘하는 사람, 글 쓰는 게 좋은 사람, 아직 나오지 않은 마블의 다음 영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까지.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길 바라며 ‘공고'를 올렸다.

이 모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와 어떤 기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설문을 받아, 최대한 다채로운 영화와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를 고려하여 힘겹게 10명을 선정했다. 그 중 8명(노정원, 김민규, 신승헌, 정예림, 햇빛, 최아영, 안태주, 길혜연)이 모임에 참석하여, 총 9개의 기록물이 완성되었다. 각 8명의 필자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영화를 선택하였다.

선택된 영화는 다음과 같다 : 이창동 <버닝>, 앙리 조르주 클루조 <지옥>, 데이빗 핀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야 <집의 시간들>, 폴 다노 <와일드 라이프>, 양윤호 <홀리데이>, 자크 타티 <월로씨의 휴가> (를 포함한 전반적인 타티의 영화들), 베라 치틸로바 감독의 <올가미>.

이 영화들을 보지 못한 이유는 게을러서, 혹은 여태껏 인연이 닿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고 싶었으나 국내 개봉이 되지 않았거나 (<와일드 라이프>), 궁금하지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거나 (<올가미>), 혹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기로 했거나 (<버닝>),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지옥>)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각자가 선택한 영화, 선택한 이유와 시선이 가지각색이듯, 완성된 작업물 역시 다채롭다.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정보 중 일부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로 펼친 필자가 있었다면 (길혜연님은 몇 줄의 줄거리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베라 치틸로바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전혀 다른 줄거리의 소설과 극본을 완성했고 안태주님은 휴가를 떠난 이방인이라는 영화의 설정에서 착안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영화의 포스터를 재작업하거나 (<홀리데이>), 영화의 구성을 본떠 새로운 형식의 텍스트-실험을 진행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필자도 있었다.



반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긁어모아 이를 바탕으로 한 ‘비평’ 아닌 ‘비평'을 작성하고자 했던 필자도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관련하여 얽힌 젠더 이슈를 이유로 영화를 의도적으로 보지 않기로 한 노정원 필자의 글은 우리로 하여금 로만 폴란스키, 우디 알렌, 케이시 애플렉, 김기덕 등 너무 많아 전부 적는 것이 불가능한 영화인들의 개인사(범죄이력도 ‘개인사'라고 말할 수 있다면)와 작품을 완전히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 물음을 던지기도 하지만,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기도 한다.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써야 한다는 막막함에 그 어느 때보다 글을 쓰기 위해 영화에 대한 각종 정보 (인터뷰, 비평, 예고편, 장면 클립 등) 많이 찾아야만 했기에,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실제로 본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경험을 공통으로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모임을 진행하며 보지 않은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해당 영화와 ‘비슷한 결을 가질 것 같다'고 예상되는 여러 다른 작품을 통해 그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 예를 들어 <와일드 라이프>의 주인공 지넷(캐리 멀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해당 필자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문법에서 벗어나 ‘쉽게 좋아할 수 없는' 여성 캐릭터를 구현한 영화들을 경유해야만 했다. 영화를 촬영하다 심장 발작을 일으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않은 <지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여러 비평적 견해 내지는 상념을 두 관객이 교환하는 소설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었다. (시네필들은 만나면 주로 서로가 인상깊게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의외로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공통으로 본 영화는 경험상 잘 이야기 하지 않더라.)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알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려 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철거가 결정된 둔촌 주공 아파트의 마지막 시간을 담은 라야 감독의 <집의 시간들>을 다룬 만화를 정예림님이 그리겠다고 밝히자, 마침 자신이 둔촌 주공 아파트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며 이를 빌려주는 특별한 일도 일어났다.

당초의 계획은 모임의 결과물을 책으로 엮는 것이었지만, 그 작업엔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이 많이 투자된다. 때문에 차현지 소설가의 플랫폼을 빌려 먼저 완성된 결과물을 각자의 작가 노트와 함께 공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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