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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 (6)



우리는 링 위에 있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절망은 언제나 가능성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런 순간에는 질문이 있었고 밤이 있었다. 밤이 짧거나 질문이 길었다. 잘못된 질문은 밤을 짧게 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질문인지 아닌지 질문해봐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질문은 불면을 낳는다. 혹은 질문 다음으로 불면이 찾아온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려고 했으나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신 명동 프린스 호텔 앞에서 길을 지나가는 정성일을 마주쳤고 종로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블루레이를 구경하는 유운성을 보았으며 카페 이드라에서 글을 쓰고 있는 허문영을 보았다. 영화가 날 지켜보고 있는 게 분명해. 끔찍한 일이야.


한 것도 없이 새벽이 찾아왔다. 사람은 거의 없었고 볼라뇨 에코백을 든 사람이 멍하니 서서 청계천을 보고 있었다. 죽으려는 걸까. 너무 얕은데. 나는 아무 생각이나 했고 볼라뇨는 꼼짝도 하지 않고 청계천만 보았다.


거기 뭔가 있나요? 볼라뇬가요?

나는 아무 말이나 했고 볼라뇨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잘 봐요. 토마토가 떠내려 올거에요. 갑자기 볼라뇨가 말했다.

나는 볼라뇨 옆에 서서 청계천을 바라보았지만 토마토는 떠내려 오지 않았다.

왜 토마토인가요? 내가 묻자 볼라뇨는 자신이 꾼 꿈 얘기를 해주었다.

꿈에서 그는 청계천 근처를 걷다 토마토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고 손을 뻗어 토마토를 주웠다. 토마토는 계속계속 떠내려 왔고 볼라뇨는 더 이상 주울 수 없을 만큼 토마토를 주웠다. 몇 일치 식량으로 충분하겠군. 토마토 스프를 만들면 되겠어.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에서 깬 볼라뇨는 중얼거렸다.


그래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꿈인지 아닌지는 여기 서 있으면 알게 되겠지요,

볼라뇨는 말했다. 그건 태몽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무 생각이나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볼라뇨와 함께 청계천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니 무척 바보스러운 기분이 들었고 이토록 한심한 짓은 세상에 다신 없을 것만 같았다.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볼라뇨가 물었다. 나는 먹지 않았다고 했다.

인앤아웃? 볼라뇨가 제안했다.

새벽 4시인데요? 아마 없을걸요.

그런가요? 볼라뇨는 난감해했다.

집으로 가죠 그럼. 아침식사를 합니다. 워싱턴 식으로.

집에서 볼라뇨는 우유와 알파벳 시리얼을 대접했다.

워싱턴 식인가요? 그럼요. 거기선 항상 이렇게 먹죠. 볼라뇨가 말했다.

워싱턴에 가보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긴 대도시입니다. 조지 워싱턴의 생가와 인앤아웃 버거가 있죠. 나는 알파벳 시리얼을 퍼먹으며 볼라뇨의 얘길 들었다. 볼라뇨는 시리얼을 하나씩 골라가며 워싱턴을 먹었다.

W.a.s.h.i.n.g.t.o.n. D.C

스펠링이 맞나요? 볼라뇨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t 를 두개 드셨네요.

뭐라고요?

t 를 두개 드셨어요. 그러니까

W.a.s.h.i.n.g.t.t.o.n. D.C 를 먹은거죠.

퍼킹! 볼라뇨가 소리쳤다.

방법이 없을까요?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죠.

그렇지만 이제 W가 없는걸요. S도 다 먹었구요.

잠시만요. 저한테 S가 있네요! W는... 그냥 V를 두개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따위 얘기를 하며 아침식사를 했다. 과연 워싱턴식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빌어먹을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청계천을 걸으며 잠시 뭔가가 떠내려오지 않을까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지같은 점심이 되었고 나는 뎀셀브즈에서 명란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정성일이 준비해 온 자료에 대해 끝까지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극장에서 만난 오한기가 물었다. 이것은 배용균 감독의 실종과 더불어 한국영화계 7대 미스테리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동국대에서 존 워터스에게 영화 연출을 배웠고 핑크 플라밍고는 사실 오한기의 데뷔작이 될 뻔했다. 대신 오한기는 배용균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김기영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리메이크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생활고에 의한 잦은 좌절감, 인간관계의 실패, 삶의 허무 등등의 이유로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머지 다섯 개의 미스테리는 뭔데?

응? 뭐가?

7대 미스테리라며 나머지 다섯 개는 뭐냐고?

미안하지만 너의 정치적 견해 따위는 궁금하지 않아.


나도 당신처럼 극장에서 죽게 되겠지. 확신은 언제나 끔찍해. 그건 차라리 비현실 같아.


​오한기는 아무 말이나 했고 얼마 전부터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그는 SNS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미친 듯이 비난받고 있었는데 굳이 그걸 검색해내서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비공개 계정으로 자행되는 비판과 욕설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읽은 뒤 고통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안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밤마다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오한기의 절규를 들으며 생각했지만 그는 문학이야말로 마조히스트들의 몫이라며 고행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절규가 되는 문학. 문학이 되는 절규들.


누군가 당신을 싫어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부코스키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런 것은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오한기는 주짓수를 배우겠다고 했다.


역시 우베 볼이 옳았어.

우베 볼이라니. 우베 볼은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도 한숨을 내쉴 만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만드는 인간 아닌가?

앞으로 우베 볼의 방법론을 채택하겠어.

우베 볼은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어둠 속에 나 홀로], [왕의 이름으로] 등등 주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만들었고 이것은 영화화인가? 사형선고인가? 라는 논란과 함께 팬들의 경멸에 가득 찬 비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페이스로 졸작들을 양산해냈다.


자신을 비난하는 평론가들에게 "자신 있으면 링으로 올라와서 그 주둥아리를 놀려라!" 라고 스파링을 신청하였고 실제로 붙어보겠다고 링 위로 올라온 젊은 평론가들을 전부 때려눕히며 완승을 거두었다. 우베 볼은 아마추어 복싱선수 출신이었고 그의 주먹은 그 어떤 비판보다 강력했다. 그 후로 그에 대한 비난은 점차 수그러들었고 마이클 베이가 자신의 영화를 혹평하자 스파링을 신청했지만 마이클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마이클 베이가 악몽에 시달리고 잠꼬대로 가드를 올리며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제작자인 톰 드샌토는 증언했다.)


나는 위키백과에 올라와 있는 내용들과 우베 볼의 스파링 동영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한기는 우베 볼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본 적이 없으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을 써야할 때가 있고 권투를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가르시아 마데로 시인!!)


오한기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필요한 건 권투가 아니라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베 볼은 2016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 캐나다 벤쿠버 개스타운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오한기는 충남 홍성에서 칼집삼겹살집을 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을 잃었고 링 위에 있지 않아도 언제나 링 위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누가 우리를 링 위에 세운거지?

그 누구도 아냐. 우리가 스스로 올라간 거지. 오한기는 대답했다.





* <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는 2주에 1번,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필자소개

한상경.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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