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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 (5)

2019년 8월 27일 업데이트됨






한국문학과 나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구로사와 기요시의 <산책하는 침략자>는 오한기의 자전적인 영화다. 마츠다 류헤이를 캐스팅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메타적인 접근이다. 언어의 침략자 오한기! 그는 우리와 다른 곳에서 왔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한기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최고작이 <인간합격 ニンゲン合格, 1998> 이며 언젠가 자신이 충남 홍성을 배경으로 리메이크 하겠다고 했다. 오한기는 해가 지면 아무도 몰래 DV카메라로 영화를 찍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할 하틀리의 <심플맨 Simple Men, 1992>을 IMF버전으로 패러디한 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때 그건 그냥 오한기의 영상일기였고 최근에 들어가 보니 조회수가 97회였다.


더 늦기 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캐스팅해야 돼. 아니면 기타노 다케시라도.

오한기는 얼마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어로 번역 된 자신의 소설을 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곧 그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런 소식은 어디서 듣는 거냐고 물었다.

퍼킹 피플 Fucking People! 이마까라 침랴쿠가 하지마루 今から 侵略が 始まる!!

오한기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갑자기 소리쳤다. 아까부터 오한기의 옆에 앉아 가네하라 히토미의 소설을 읽던 누군가가 오한기의 입을 틀어막았다.

닥치고 문명인처럼 굴어! 그러자 오한기는 잠잠해졌다. 나는 눈짓으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아 참. 이쪽은 한국문학이야. 시를 쓰지.

그딴 건 시가 아냐! 절대!

한국문학이 말했다.

아무튼 뭔갈 쓰지. 오한기가 정정했다.


죽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죽어야 산다는 얘기는 결국 죽지 않는 이야기다

가장 추운 날 죽어서 계절이 되고 싶으니까

글 속에서 죽었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만져지지 않는 말은 다 거짓말

어떤 단어가 반복되고 있어 내가 갇혀있기 때문일까

눈을 통해서 보는 생각과 생각을 통해 보는 생각

그런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내가 쓴 걸 나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어 그건 내가 아니니까

비껴간 사람들 속에서도 비껴가기

꿈은 꾸는 편이 좋고 이름은 가장 빨리 잊는 편이 좋다 내가 거기 있으니까


그거 책에 나오는 얘기인가요? 내 말에 한국문학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얘기가 들렸는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건 말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죠?


그러고 보니 한국문학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건 더 이상 구분이 되질 않는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들을 수 있었고 아마도 친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헌터 S. 톰슨이 콜로라도의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갈기기 전에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렸는지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상상도 아니고 픽션도 아니며 이미지도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내가 언제나 외부에 있는 것처럼.


기억해 문학은 가정법이야. 이따 유튜브에서 만나. 오한기가 말했다.


플라스크에는 한국문학과 나만 남겨졌다.


당신 누구야.

한국문학은 나를 들여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질문처럼 들렸고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먼지에요.


죽음보다는 경멸이 쉬우니까. 질문하지 않을 거면 날 쳐다보지도 마.

내게 필요한 건 의인법이야.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어디서 배울 수 있지.

나는 인간이 뭔지 알기도 전에 너무 일찍 경멸을 배웠어. 그래서 죽을 수도 없는 거야.

날 읽고 있지?

한국문학이 나를 노려보았다.

더러운 새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날 볼 거면 더 깊게 바라봐! 날 더 총체적으로 보라고!

대충 보는 새끼들은 죽어야 돼! 읽을 수 있다면 제대로 읽어야 돼.

날 읽을 수 있는 게 너 뿐이라면 더 내밀하게 읽어.

날 읽어. 읽어봐. 읽어. 내 피를 가져 가. 내 안의 피를 모조리 핥아먹어.

지퍼를 내려 옷을 벗듯 죽음도. 눈물 흘렸기에 감동했다는 얘기는 끔찍해.

눈물과 감정은 더 이상 상관이 없잖아. 나에게서도 눈물만을 믿겠지.

눈물밖에는 볼 줄 모르는 인간들. 지옥에서도 지옥만을 보겠지.

날 텅 비우고 내 속을 너로 채워줘. 텅 빈 속을 상상으로 때려 넣지 마.

읽고서도 쓰지 않는 새끼들은 비겁한 새끼들이야. 잔인한 새끼들.

커피 한잔 더 드실래요?

가네하라 히토미를 덮고 한국문학이 말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경멸은 죽음보다 강력하다. 내게 죽는 법을 가르쳐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말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한국문학



말 좀 해 목소리 좀 들려줘 날 그렇게 보지 마 날 알려고 하지 마 안다는 건 지옥이야

목소리를 믿지 마 날 모르는 사람만이 내 옆에 남게 되겠지 지옥이야

목소리가 아니어도 괜찮아 그래도 들려줘

항상 베개 옆에 가위와 헤르만 브로흐를 두고 잤어 나도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려고

뒷모습을 보려고 거기까지 갔어 너는 미래에서 온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지

그런 건 춤이 아냐 절망이지 네 말에도 나는 춤을 추지 않았고 네가 아니어도 여기까지 왔어

착각으로 가장 멀리 가는 나는 와이파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목소리라는 것도 착각이었을까 책을 읽을 수 없어도 나를 읽을 수 있잖아

지나가듯 했던 말들은 지나가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야

어쩌면 이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일지도 몰라

시간은 가지 않아도 너는 가고 네가 가니까 시간도 가고

깨어나고 싶지 않아서 늘 깨어있고 싶어서 가고

아무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오늘도 내가 가진 하루보다 멀리가고 그래서 항상 어지러운 건지도 몰라

착각해봤자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런 걸 쓸 수 있어

소음으로 도망쳐봤자 나에게 그것은 소음으로 들리고

가장 낯선 단어를 생각해내도 나는 가장 정당하게 짓밟히고

혼자 죽으면 혼자인 것일까 아니면 죽었기에 혼자인 것일까

생각해봐도 혼자라면 결국 우리 라는 단어는 허구이고

허구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해 말해 말 좀 해줘

시를 쓰신다면서요.

내가 말했다.

그딴 건 시가 아니에요.

나와 한국문학은 말없이 한동안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제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국문학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 <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는 2주에 1번,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필자소개


한상경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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