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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 (4)



읽거나 보지도 못한 자들과의 싸움(그것을 읽거나 볼 수 있다면)



게로베로를 죽여라



아침에 눈을 뜨니 갑자기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눈을 떴다고 해서 그걸 아침이라 할 수 있을까) 게로베로가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죽은 건지도 몰라. 내가 죽어야하거나.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왜 모두 낮에 죽었을까. 어쩌면 햇빛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누구도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했기에 어제는 이미 죽어있다. 그건 인정의 문제가 아니야. 어떤 가능성만이 나를 죽게 하고 죽음은 하나의 의견이 되었다. 그런 죽음은 나를 살게 만든다.



홍제천에서 불광천까지 걸으며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게로베로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해선 말했으며 경솔한 얘기를 했고 더욱 경솔해졌다. 사실 경솔해진 쪽은 내가 아니라 죽음이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견딜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절망은 확률적이다. 그 확률을 뚫고 나는 절망할 수도 있다. 내가 분노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분노는 상품이 되어 우리를 겨눈다.



한 신scene안에 얼마나 많은 죽음을 담을 수 있는가

죽음보다는 미장센을 죽여라

중첩된 사운드 속에서 각혈하는 고다르

근데 절 여기 두고 가셨네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지. 전단지를 받는 사람과 전단지를 받지 않는 사람. 그리고 전단지.

뭐야 그게.

선택해야할 거야. 어둠속에서 어둠을 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진짜 어둠을 보려면 밝은 곳으로 가야 돼.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비유 속에서 살다가 방금 막 이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는 넌 어느 쪽이지?

내가 물었다.

어느 쪽이랄 것도 없어. 전단지가 바로 나야.

오한기가 대답했다.



명동의 르빵에서 올리브빵과 감자빵을 샀다. 벤치에 앉아 감자빵을 먹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종일 먹은 게 없다며 돈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돈을 줄 순 없지만 빵을 나눠줄 수는 있다고 했다. 딜은 성립되었고 나는 그에게 아직 먹지 않은 올리브빵을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당신의 친구니까요. 그가 말했다. 단지 배가 고팠습니다. 나는 감자빵을 씹으며 그의 얘길 들었다. 그는 자꾸만 자신이 나의 '친구'임을 강조했다. 그는 싸움에 휘말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갑이 없어졌고 그 작자들이 애초에 자신의 지갑을 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경찰서에 갔는데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유령과의 싸움이었습니다.

​ 그가 말했다.

저도 늘 유령과 싸웁니다.

감자빵을 씹으며 내가 대꾸했다.

그치만 마리아님은 보셨겠죠.

그가 앞쪽에 있는 뭔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성모마리아 상을 가리키려고 한 것 같은데 그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큰 곰돌이 인형이 있었다.

기도를 하십니까 친구여?

나는 곰돌이 인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저에겐 별 말 없으시던데요.

뭐가요?

마리아님이요.

그렇지만 보고 계십니다. 지금도 보고 계시며.. 근데 이거 맛있군요.

올리브 빵입니다.

올리브! 영롱하네요. 아무튼 이 은혜는 갚게 될 겁니다. 친구여. 절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전 그저 매우 배가 고파서.

이해합니다.



그는 내게 볼펜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메모지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너무 걱정마지 마세요. 보고 싶다고 해봐야 고작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걸 적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여 잊지 마세요.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르빵에 다시 갔을 때 올리브빵은 하나도 없었고 나는 그가 정말 나의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루이트에서 아인슈패너를 마시며 그가 적어준 메모를 펼쳐보았다.



허구가 실재를 대신 할 수는 없다 실재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에 가깝다

오한기는 메모를 보더니 자기도 밑에다 뭔가를 썼다.

- 나도 감자빵 사줘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는 1963​년에 학술지 『Analysis』에 개제한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라는 A4용지 두 페이지도 안되는 논문으로 현대 인식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철학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감자빵을 씹으며 오한기는 자신도 에드먼드 게티어처럼 되겠다고 했다. 나는 위키백과에서 에드먼드 게티어를 검색해 논문을 읽어보았다.


근데 왜 날 언팔했지? 오한기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SNS도 안하는데.

날 언팔하지 않았단 말야?

오한기가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맛이 갔군. 넌 정상이 아냐. 트위터 좀 그만해.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내가 하는 건 트위터가 아냐 문학이지.

맛이 갔군.

오한기는 맛이 갔다. 정상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 정상이란 것은 허구인가. 모르겠지만 정상 비정상을 나누는 인간이야말로 비정상에 가까울 것이다. 이딴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비정상일까.



정상에서 만나요. 에드먼드 게티어와의 싸움.



난 알 수 있어. 인생이 날 언팔한 거야. 오한기가 말했다.



그 많던 시도들 가운데서도 우리는 좌절할 수 있다.

그래도 보고 계십니까?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필자소개

한상경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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