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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 (3)



비탈길을 걷는 마음으로 비탈길을




어떤 문장은 나보다도 먼저 시작되었다. 시작을 이해하거나 문장을 이해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텐데 내가 아직까지도 나인 것만 같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청계천을 걷다가 뎀셀브즈에서 레몬 마들렌과 커피를 마셨다. 절박하지 않는 절규를 듣다보니 절박해졌고 가끔은 이게 내 목소리인지 의심한다. 그런데 너 무슨 일 있어? 주로 무슨 일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묻기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는데 그런 질문을 한번 받기위해선 10년쯤 기다려야하고 대체로 나는 잘 견뎌내는 편이다. 느끼고 싶은걸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오랫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기에 생각했던 건 언제나 형식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날 걱정할만한 편지를 써서 모두를 걱정시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사람을 만나는 건 끔찍한 일이야 그래서 나는 나보다도 나를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를 나라고 믿기로 했다. 우리가 생각했거나 생각했다고 착각하는 것들. 가능성은 언제나 노골적이었지 그래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믿지 않았다. 고독은 나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군. 그 점은 마음에 들어. 절망은 언제나 가능성이다.



상수역 근처의 카페 지하에서 어떤 시인의 낭독회를 구경했다. 시인은 포옹과 지팡이, 재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름을 불렀고 재생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웃었다. 나는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나는 한 번도 웃은 기억이 없었다.



절 검색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아니거든요.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 제목이 착각하는 침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가 될 뻔했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멍하니 서 있다가 시인의 사인을 받았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시인이 물었다. 순간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시인은 사인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혼자 있는 공동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는데 시인은 잠시 나를 보더니 상자 하나를 그려주었다. 오르골이에요. 열면 음악이 들릴 거예요. 들린다면 같이 있는 거예요. 그림 밑에는 비탈길에서 만나요, 라고 적혀있었다.


만날 수 있다는 착각은 당신이라는 이상

시집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비밀로 해



비탈길이 아니어도 비탈길을 걷는 마음으로 걸었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 서사에는 익숙해요. 시인에게 체리를 선물로 주었어야 했다고 아주 뒤늦게 생각했고 시집을 읽으시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서 오르골을 열어보니 음악이 들렸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인간보다 낯선



당연한 얘기지만 문학은 저주다. 입을 닥치지 못하는 인간들은 끔찍하다. 그건 나고 나는 저주다. 그래서 내가 문학과 친한 것인가. 이것은 오한기 때문인가. 나는 오한기에게 저주를 배웠다. 문학이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인간에서 벗어나는 것, 이라고 답했다. 인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냐고 묻자 오한기는 오잉크 오잉크 라고 답했다.



그게 뭐야! 제대로 대답해! 오잉크 오잉크가 뭐야!

오잉크 오잉크

한 번 더 오잉크거리기만 해! 널 때릴거야! 후두려 팰 수도 있어!

오잉크 오잉크

악!!!



오한기는 오잉크댔고 나는 절망스러워졌다.

그게 니가 말하는 문학이야? 나는 오한기의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그의 머리가 장식품처럼 덜렁거렸다.



오잉크 오잉크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한기는 문학 그 자체였고 나는 주저앉은 채 모든 것이 오한기 탓이라고 결론지었다. 주저앉으면 세계는 확장되었다.



내가 오한기와 카페 반쥴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한기 작가 맞죠? 사인 좀 해주세요.

그는 들고 있던 쿠마몬 노트를 내밀었다. 오한기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쪽이 오한기입니다. 뭐해 사인해 달라고 하시잖아.

나는 사인했다. 오한기, 라고 쓰고 옆에 홍학 그림도 그렸다.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준 기분이 어때?

남자가 가고 난 뒤 오한기가 물었다.

왜 그랬어? 무슨 짓이야!

오한기는 웃으며 고작 사인인데 뭐, 라고 대꾸했다.

사인 따위 누가하든 무슨 상관이야. 네가 오한기라고 쓰면 네가 오한기인거지 뭐. 너는 오늘부로 오한기가 된 거야.

오한기가 말했다.

자 이제 내 소설도 네가 써주는 게 어때? 사인하는 것처럼 말야. 어렵지 않을 거야.

나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했다.


소설 쓰는 법을 알려주지. 아주 간단해.


1. 뭘 써야할지 모를 때는 최근에 한 대화를 기록한다.

2. 누굴 등장시켜야할지 모를 때는 오한기를 등장시킨다.

3. 아무거나 써놓고 문학이라고 우긴다.

4. 문창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5. 그래서 당신 혈액형은 뭔가요? (막힐 땐 질문할 것)

5-1. 미소를 잃지 않는다.


제기랄! 이따위 게 뭐야! 싸우자! 나는 그가 적어준 메모를 보고 소리쳤다.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고 있군. 역시 너는 소설가 체질이야. 오한기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친구 따위 없을수록 좋은 거야. 절박하게 누군가가 만나고 싶다면 소설을 써. 불행의 끝을 볼 수 있지. 가장 먼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감정에서 멀어지고 문학에서 멀어진다. 이런 것은 저주고 문학이다. 오잉크 오잉크.






필자소개

한상경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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