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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not reconciled (2)




재미를 모르는 멋진 사람들




그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은 전부 어디선가 훔쳐온 것들이다. 훔쳐온 말들에서는 사탕수수 냄새가 나는데 거기 코를 처박고 있으면 내가 지껄이는 말들이 전부 어디선가 훔쳐온 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훔쳐오지 않은 말들에서는 은은한 커피향이 난다. 나는 커피 향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훔쳐온 말들은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말 그 자체다. 말을 혐오하는 인간일수록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오한기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 함께 인간 쥐의 습격을 보고 난 뒤였고 나는 혼란에 빠져 거의 넋이 나가 있었기에 그의 말에 반응할 수 없었다. 오한기는 동국대에서 존 워터스에게 영화연출을 배웠다.

홍학이 된 사나이의 영화화를 노린 감독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알렉스 콕스

츠카모토 신야

오한기

두 명의 데이비드 (린치과 크로넨버그)

미이케 다카시 (어림도 없는 소리지! 오한기는 말했다)

데니스 호퍼(?!?)



우리의 병은 언제나 말 때문에 생겨나는 거야.

나는 눈물 없이 태어났다.

이제 네 본명을 말해봐.

본명 같은 건 허상이고 진실은 허상보다 깊은 곳에 있다.

목소리로 육각형을 그려봐. 언제나 투쟁된 진실로 그려진 목소리.



그의 말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믿을 수 있는 말 같은 것은 재미가 없어. 그래서 믿을 수도 없는 거야. 믿음에 목을 매는 인간일수록 믿음을 이상화시키는 법이니까.



금정연은, 금정연도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은 아무것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재미만 없나요? 미래도 없고 돈도 없지요. 하하하.

공부가주를 들이키며 금정연은 말했다. 그는 웃어보려 애썼지만 그것은 웃음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 다음 금정연을 만났을 때, 내가 여전히 모든 것이 재미가 없냐고 묻자 그는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하며 멋쩍어했다. 재미도 없고 미래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너무도 그런 말을 했으며, 여전히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상황은 달라졌고 저는 책임져야할 것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꺼내려다가 흠칫하며 금연을 한지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고 했다. 갈 곳을 잃은 채 덜덜 떠는 그의 손을 바라보니 나는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금정연의 내일은 우리의 미래보다 크다.

등장 없이도 퇴장할 수 있었으면.



오한기는 잘도 그런 소리를 하며 내가 재밌는지 묻자 난 재미 같은 건 몰라, 라고 대답했다.






오한기라고 부르면 대답 안 함




누군가 영화에 대해 물으면 나는 물방개에 대해 얘기한다.

누군가 『사냥꾼의 밤』에 대해 물으면 나는 암소에 대해 얘기한다.

누군가 계몽주의에 대해 물으면 나는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에 대해 얘기한다.

누군가 오블로모프에 대해 물으면 나는 엎드린 뒤 못들은 척 한다.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으면 나는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보았는지 되묻는다.

누군가 내게 소설에 대해 물으면 나는 오한기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오한기는 문학에 대해 물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오한기는 미래에 대해 물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오한기는 오한기! 라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한기는 언젠가 자신은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답할 수 있는 말들은 언제나 불공평해. 우리가 했던 질문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질문과 또 그것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오한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에게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히치하이킹 같은 것이라 말했다.



어디까지 가는 건데?

네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면 어디든.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으며 아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며 더더군다나 소설 같은 건 쓸 줄 모른다. 오한기가 오한기에 대해 모르는 만큼 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대답이 가능하려면 우선 질문이 있어야해.

오한기가 말했다.

왜 다들 대답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지?



그의 질문에 대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한기는 마포구청에서 내렸다. 나는 아무데서도 내리지 않았다.




*가독성을 위해 편집 이미지로 올리지 않았습니다.



필자소개


한상경

오한기의 60%는 사실 오한기고 나머지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 가능성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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