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RS

[소설] 밤비행Night Flying



1

버드는 누워 있다.

몇 시간 전까지 버드는 술에 취했는지 한 문장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띵 스폐셜. 나띵 스폐셜. 나띵 스폐셜.

그의 옆으로 개가 알짱거렸다. 꼬리가 긴 닥스훈트 종. 짤막한 다리. 그러나 매우 유연한 몸짓으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옷장 위에는 고양이가 웅크린다.

강물이 넘실거린다. 해가 뜨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약간 몽롱하다. 잠을 안 잔 지 너무 오래됐다. 술도 많이 마셨다.

잠은 오지 않고, 술도 취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옷장에서 책장으로 뛴다. 착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양이 답다. 개는 버드의 옆에 터를 잡고 눈을 감는다. 고양이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는다. 살금살금. 화장실 옆 작은 방문 틈으로 들어간다.

에취.

방 안에서 나직하게 기침 소리 들린다. 안간힘을 써서 작게 낸 기침 소리.

기침 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애였고, 그 애를 주워온 건 버드였다.

좁은 어깨와 작은 눈, 하얀 종아리와 팔뚝. 축축한 티셔츠처럼 축 늘어진 몸.

오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가방 속에 든 자질구레한 짐처럼 버드는 여자애를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당분간 입지 않을 티셔츠처럼 방치한 채, 그는 잠을 잔다. 나는 그냥 여자애를 방 안으로 넣어두었다. 애완동물을 케이지에 넣듯이. 여자애는 별 반항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문을 닫지는 않았다. 슬며시 열어두었다. 창문에 검은 시트지를 붙인 방 안은 검다. 우리는 그곳을 암전이라고 부른다.

버드의 고양이는 여자애의 품에 안겨 거실로 나온다. 여자애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한 발씩 내민다.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이 급한 걸까. 여자애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그르릉 소리를 낸다.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라고 버드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무심결에 여자애와 눈을 마주친다.

피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2

여자애의 몸 군데군데 멍이 들어 있다.

좁은 어깨에 비해 긴 팔에는 붉고 푸른 멍들이 제각각 크기도 다르게 꽃처럼 피어 있다. 손등에 핀 멍은 둥그런 무궁화 같았고, 발목부터 정강이까지 퍼져 있는 멍은 보라색 꽃잎이 짓이겨진 것처럼 보기 흉하다. 무슨 멍이 저렇게나 많이 들었을까.

여자애는 나한테로 다가온다. 나는 잔에 남은 술을 비운다. 혀가 알알하다. 강물이 넘실거린다. 창문을 보는 일 말고 달리 집중할 게 없다. 여자애가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으로 정적을 방어한다. 다시 정적. 여자애는 두꺼운 눈꺼풀을 올리며 나를 본다. 버드는 아직도 잠을 잔다. 술병을 깨트리면 일어날까.

여자애는 나보다 어리다. 그만큼 약하다. 나는 미처 죽이지 못한 벌레를 보는 것처럼 막막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여자애에게 뭔가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정적을 감추기 위해 불필요한 질문을 하는 등의 알량한 가식을 떨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다. 사실 몇 달간 나는 버드를 제외하고는 타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물론 언젠가 나도 이 여자애처럼 어린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 새끼손가락을 결코 놓지 않았던 여자애를 알고 있다. 그애는 죽었다. 이 또래 애들은 바스러질 것처럼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요하다.

대치상황이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여자애가 기어이 내 무릎에 손을 얹는다.

배고파요.

밥 없는데.

돈 없어요?

어.

그럼 이 술은 어디서 났어요?

이건 원래부터 여기 있었어.

이 술을 산 사람은요?

여기, 자고 있잖아.

배고픈데.

여자애는 가늘고 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문지른다. 나도 배가 고픈 걸까. 벽시계를 쳐다본다. 고장 난 벽시계는 분침이 약간 떨리다가 말 뿐, 늘 제자리다.

바깥은 아직 검다. 초봄이다. 완전히 해가 뜨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걸린다.

여자애가 얹은 손은 의외로 묵직하다. 나는 말을 꺼낸다.

가출했니? 짐이 없네.

짐이 없는 사람은 가출이랄 게 없어요. 저는 가출 소녀는 아니에요.

여자애는 말을 끝내고 입술을 다문다. 한 번도 열리거나 떼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입술이 포개진다. 그것은 하나의 가죽 같다. 결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버드가 눈을 뜬다. 그의 가슴팍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닥스훈트의 꼬리가 살랑거리며 움직인다. 나는 무릎에 얹혀 있던 여자애의 손을 밀어낸다. 개를 꼭 안은 채 버드가 여자애를 부른다. 여자애는 고갯짓으로 인사를 표한다. 버드는 일어나자마자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든다. 유럽 북부 지방 고유의 술. 럼주와 과일주스 등을 섞어 마시기 용이한 술은 이제 반 병밖에 남지 않았다. 버드는 술병을 들이붓는다. 다 마시면 곤란한데.

소파에 누워 있는 버드와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나, 그 중간에 여자애가 서 있다. 이제는 여자애의 신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도베르만, 앉아.

개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버드의 손에는 고양이의 사료가 들려 있다.

그건 고양이 건데.

뭐 어때.

왜 닥스훈트종의 개를 도베르만이라고 부르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3

도베르만의 이름은 버드가 지었다.

와꾸가 엉망이니 이름이라도 때깔나게 붙이자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동양인의 와꾸와는 때깔부터 다른 이름. 버드는 예명이었다. 본명은 브라이언. 패스포트에는 15년 전, 앳된 얼굴의 그가 있다.

미국 남동부 대서양안 주에서 태어난 그의 부모님 국적은 방글라데시. 그을린 피부, 쌍꺼풀 짙은 눈, 튀어나온 광대는 남아시아 인도 반도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한국에서 그는 미국 사람이 아닌 방글라데시 사람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버드에게 요즘 외국인 노동자 인력시장의 현황과 월급인상비율에 관해 묻고,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까닭과(물어보고는 이내 미안하다는 기색을 비치곤 했다), 고국의 가족들을 못 본 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질문을 하고, 꼭 질문을 하고 난 뒤에는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낸다. 나도 무역하는 청년을 알지요. 알럽이라는 청년인데, 12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고 해요. 그간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 농장을 마련해드렸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가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버드에게 건넨다. 그런 일괄적인 시선과 물음들.

나는 꽤 유명한 주립대학을 나왔어. 이곳에 온 건 영화를 찍기 위해서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매번 버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미안해하면서 의도적으로 물은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의도가 없이 물었다는 소리인가. 방글라데시 사람 같이 생겼으니까 당연히 외국인노동자일 거라 여겼으니까. 편견에는 의도가 없는 걸까.

버드는 줄곧 말한다.

나띵 스폐셜.

이곳의 특색이라곤 와꾸에 연연한다는 거. 그거 하나야. 특출난 것도, 특색있는 것도 없지. 특히 서울 말이야.

서울에서 나고 자란, 가본 곳이라곤 서울의 위성 도시가 전부인 내게는 슬픈 발언이었다.

특히 너 말이야. 너는 고국의 언어와 가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버드는 때때로 칼처럼 매섭게 날 도려낼 것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너는 20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뉴욕의 전위적인 선언문을 더 자세히 알고 있지. 20세기 영국 음악에 더 민감하지. 너는 일개 동양 여자일 뿐이야. 와꾸만 한국인이지. 유 아 나띵 스폐셜.

버드는 생물학자인 아버지와 화학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2세대 미국 이민자다. 그는 영화와 철학을 전공했고, 미술 비평과 소설을 쓴다. 한국에 온 이유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뉴욕에서 7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도망치듯 한국행을 결심했다. 여자친구는 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아시안 혼혈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그 외에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한국 음식을 자주 먹고 자랐을 뿐.

여자친구의 한국 이름은 세희였다. 한국에서는 세희로 불린댔다. 여자친구는 한국에 사는 외가 식구들에게 5년에 한 번 꼴로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 라는 한국말을 곧잘 썼다. 버드의 첫 한국 방문은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여자친구는 니코, 라는 이름을 썼는데 그건 예명이었고, 유코라는 일본 이름도 있었다. 친구들은 니코를 가장 많이 썼고, 집에서는 세희나 유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니코를 잊지 못해서 이곳으로 왔다. 니코의 어머니가 살던 곳. 니코의 핏줄들이 모여 사는 나라. 니코와 비슷한 얼굴을 띤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아주 작은 지형에 모여 사는 것을 그는 관찰 중이다. 이 작은 도시에 어마어마한 인구가 모여 산다는 게 신기하다며. 뉴욕도 그렇고 도쿄도 그렇겠지만, 서울은 더 스펙타클했다. 집약된 공간에 집중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들. 활기가 날개를 뻗는 거리.

4

니코는 다자연애주의자였다. 이른바 폴리아모리. 버드와 함께 집을 얻어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내뱉은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서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관계가 부서지거나 깨지면 안 된다. 폴리아모리인 나의 정체성을 맞춰줄 생각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버드는 권력적인 그 관계에 기꺼이 순응했다. 그리고 7년 동안 니코가 갈아치운 무수한 남자들을 곁에서 바라보았다. 중요한 관계로 발전이 되는 사람이 생길 경우에는 그 사람의 번호를 갖고 있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얼토당토 않은 짓이다. 좆같고 어리석다. 너는 그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 월세는 제대로 내고 있느냐. 버드의 친구들은 조언이랍시고 그런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가 니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 버드는 그들과의 연락을 끊는 것으로 자신과 니코, 자신의 관계를 보호했다.

그런데 왜 헤어졌을까.

발단은 니코와 함께 한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였다.

니코는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외가 친척 집에 들렀다가 경주와 완도를 가기로 했다. 10박 11일의 길다면 긴 일정이었다. 니코가 외가 친척 집에 있는 3일 동안 버드는 서울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포시즌스 호텔은 생긴 지 3년이 채 안 된 최신식 건물이었고 그가 미국이나 싱가폴, 홍콩에 있을 때도 자주 묵었던 체인이었다.

니코가 세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3일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서울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서울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지. 일단은 호텔과 가까운 곳에 광화문 광장이 있었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기념비가 있었고, 지하도로를 타고 가면 한글 창제와 관련한 상시전시가 있었다. 때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이었고,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노란 리본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드는 굴절된 끈처럼 보이는 리본 엠블럼이 마음에 들어 옷깃에 달았다. 어떤 걸 상징하는 것 같았고, 그것은 슬프고 참담한 일처럼 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옆에 있는 고디바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교보문고에 잠시 들렀다가 광장시장에 갈 예정이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고디바에서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나왔다. 딸과 엄마는 손을 붙잡고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조심스럽게 핥아 먹었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는 교보문고가 어디인지 표지판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괜히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던 버드가 모녀에게로 다가갔다. 안, 녕, 하쎄, 요.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해사하게 웃던 모녀는 순간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모녀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걸었느냔 얼굴로 그를 지나쳐 빠르게 앞서 걸었다. 그때 버드는 처음 느꼈다.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걸. 세희의 나라에서 그는 그런 취급을 받았다. 네가 뭔데 나한테 말을 걸어? 라는 얼굴들. 괘씸하고 기분 나쁘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청결하지 못한 걸 보는 것 같은 표정들. 버드는 자신을 불쾌하게 여기는 한국의 얼굴이 신기했다.

왓 어 딕 컨츄리.

버드는 시장에 가는 걸 포기하고 포시즌스 호텔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그가 돈을 낸 만큼의 대우는 받을 수 있었다. 시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고층 바에서 아드벡을 마셨다. 한참 재즈 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보컬의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버드는 종업원을 불러 보컬에게 팁을 주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예쁘다는 짧은 메모와 함께.

보컬은 제법 영어를 잘했다. 공연을 마치고 내려와 그에게 감사를 표한 그녀는 몇 시간 동안 그의 곁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보컬은 숙영이라는 이름이었고 예명은 쥬디였다. 버드는 쥬디라는 이름이 조금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었고 쥬디는 좋아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말했다. 컨츄리 음악과 재즈를 좋아하는 쥬디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음악의 고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를테면 내슈빌, 디트로이트, 뉴올리언스, 뉴욕 같은 곳들. 언젠가 나도 가볼 수 있겠죠? 쥬디는 말했다. 당연하죠.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내가 이곳에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처럼. 그럼 나와 함께 가줄래요?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그들은 위스키를 세 잔씩 마시고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교환한 뒤 헤어졌다. 묵고 있는 방 키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라면 룸 넘버를 가르쳐줄 수도. 하지만 버드는 공연하게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 쥬디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친척 집에서 돌아온 니코와 함께 경주와 완도를 여행했다. 서울과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오간다고 생각해보라.)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특히나 장소마다 유적지로 가득 찬 경주에 흠뻑 빠진 그는 그렇게 크고 동그란 무덤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는 게 좋았다. 완도는 바다의 짠 내음부터 색달랐다. 항구를 따라 걷는 내내 오징어들이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오징어를 말려 먹으면 맛이 더 쫄깃하고 냄새는 더 시큼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건 싫었다.

5

한국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은 변함없었다. 니코와 함께 살던 집에는 책방 못지않은 방대한 서재가 있었고, 일 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산 그랜드 피아노도, 영화광다운 수집량의 비디오와 DVD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던 패티오가 있었다. 오후에 패티오로 나가 브루클린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좋았다. 한낮에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공 차는 소리, 작은 새들이 우는 소리 같은 것들이 들렸다. 꼭 볕이 내는 소리 같았다. 그는 밤에, 니코는 낮에 일했다. 그는 한낮의 시간을 홀로 보내곤 했다. 집에는 그가 아끼는 책들과 DVD, 그리고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으므로 외롭지 않았다. 사실 니코에게는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들의 취향은 무척이나 달랐으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함께 살았다. 그들은 함께 학비를 벌었고 무사하게 대학원을 졸업했고, 다행히도 취직했다. 비싼 집세를 감당해가며 생활을 수월하게 가꾸었다.

쥬디와는 종종 서로에게 메일을 썼다. 니코가 쥬디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24시간 비디오 가게에서 야간 일을 하던 그는 늘 커피 두 잔을 사 들고 귀가하곤 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니코에게 커피를 건네고 약간의 대화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드는 것이 그의 생활패턴이었다. 그날도 역시 커피 두 잔을 사들고 집으로 귀가하던 차였다. 문을 열고 니코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부서진 자신의 노트북이 먼저 눈에 밟혔다. 쥬디와의 메일을 확인한 애인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는 억울하고 답답했다. 쥬디와는 단 하루, 어떤 육체적 관계도 없이, 그러니까 조금은 설레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였던 밤을 보냈을 뿐이었다. 니코는 무섭고 싸늘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버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날 아침, 그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이별을 결정했다. 7년간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니코의 분노와 버드의 억울함은 비슷한 수치로 작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의 애인은 지독할 만큼 독점적인 연애를 경계하던 여자였다. 일대일 연애가 관계의 불안을 조성하고 종내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조심했다. 질투 따위로 그녀와의 결속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고. 연애하는 동안 자연스레 발생하는 일말의 소유욕 같은 거로 그녀를 잃게 되는 바보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쥬디에게 보낸 메일에는 그의 그러한 심정들이 담겨 있었다. 쥬디에게서 느낀 소속감 따위도 기실 관계에서 빚어진 감정이었다. 니코에게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어떤 충만함. 그러나 니코와 비슷한 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와 함께한 하룻밤이, 7년 동안 가꾸어왔던 일상을 송두리째 뺏어간 것이었다. 잘 빠진 그랜드 피아노처럼 윤택했던 브루클린 생활은 정말 안정적이었을까? 버드는 쥬디에게 실패한 연애에 관해 메일을 보냈다. 돌아온 답장에서 쥬디는 말했다. 바보 같은 함정에 빠진 건 네가 아니라, 그녀야. 탈출을 축하해.

6

해가 다 떴다.

버드는 샤워 중이다.

여자애는 소파에 앉아 있다. 고양이는 엉덩이를 여자애 쪽으로 들이민다. 여자애를 잘 따르는 것 같다.

나는 몽롱하다. 술에 취하려면 다시 밤이 되어야 한다.

씻고 나온 버드의 머리칼이 축축하다. 그의 티셔츠가 물기로 젖어 든다. 땅바닥엔 그가 흘린 물방울들이 모여 아주 작게 웅덩이가 생긴다. 고양이가 웅덩이에 코를 박고 혀를 할짝댄다.

나는 바닥이 필요해요.

여자애가 말한다.

바닥이라니?

나는 함부로 울지 않아요. 울면 상대방의 기분이 이상해질 테니까요. 정말 슬픈 일이 있더라도 난 울지 않을 거예요. 우는 대신에, 창문을 부수거나 누군가의 팔뚝을 물거나 비명을 지를 거예요.

버드, 얘 어디서 데려온 거야?

나는 그제야 여자애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철길 골목 안쪽에 있던 술집. 기억나? 거기에 있었어. 무슨 유령처럼.

거긴 왜 들어가 있었어?

나는 여자애를 보며 물었다.

집 없어요. 보호센터에서 도망쳤어요.

왜 도망쳤는데?

거긴 내가 누워 있을 바닥이 없었거든요. 잠깐이라도 누우려고 하면 이모가 전신을 흔들며 깨웠어요.

여자애의 말로는, 이모라고 불리는 원장은 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 애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몇 번이나 구치소엘 들락거렸다. 이모는 아무나 때리지 않았다. 9세부터 15세 사이의, 반항하기엔 역부족인 어린 여자애들만 건드렸다. 겁은 낼 수 있지만, 방어는 할 수 없는, 극도의 공포상태를 알기 때문에 순순히 구타에 응하는 소녀들을, 그녀는 눈에 보이는 대로 할퀴고 때렸다.

이모는 오로지 손바닥으로만 때렸어요. 손바닥으로만.

그녀는 기구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어린 여자애들을 두들겨 패고, 들어 엎고, 때려눕힐 수 있었다. 소녀들은 이가 문드러질 정도로 그녀의 구타를 꾹꾹 참아야만 했다. 성에 다 찰 때까지 때리고 나면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수프를 만들었다. 수프 분말이 다 녹기도 전에 그릇에 담고 소녀들에게 던져주었다. 소녀들은 수프 분말이 쩍쩍 앞니에 감기는 것을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그릇을 다 비워냈다. 여린 손가락으로 소녀들은 빈 그릇을 닦고, 자신들이 입을 티셔츠를 빨고, 방바닥에 붙은, 굳어 딱딱해진 수프 분말을 손톱으로 떼어내며 잠이 들었다.

이모는 마녀인가. 수프를 휘젓는 이미지. 마녀처럼 느껴진다. 여자애의 얼굴보다 큰 손바닥과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린 긴 손톱과 저가에 팔리는 레트로트 수프 분말과 수프를 저을 때 쓰였던 국자와 이가 나간 그릇. 보호센터의 원장이라는 가면을 쓴 마녀.

때꾼한 여자애의 왼쪽 눈 밑이 심하게 거무스름해 보인다.

이리로 와봐.

여자애의 눈 밑을 까본다. 콩알만 한 다래끼가 누렇게 차 있다.

네 이름은 당분간 다래끼다. 다래끼 나을 때까지만 여기에 있는 거야.

7

다래끼는 참치캔, 달랑 하나만 고른다.

버드에게 돈을 받아 편의점에 와서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거나 다 집어, 라고 말했음에도. 나는 맥주 한 캔을 들고 편의점 밖 파라솔에 앉는다. 아침부터 술 마시는 여자가 이상해 보이지. 나도 알아. 사람들의 시선에 나는 꾸준하게 대응한다. 다래끼가 편의점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그거 하나야? 그럼 그렇지.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꽤 많은 양의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집는다. 다래끼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기쁜지 웃는다. 원하는 만큼 집으라고 했잖아.

우리는 쌍쌍바를 둘로 쪼개어 한 입씩 문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안주로 다래끼에게 질문한다.

멍은 다 이모가 만든 거야?

네.

참을만 했어?

다래끼는 대답은 없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수고 많았어. 도망치느라. 그거 엄청 용기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다래끼는 말이 없다. 단지 혀뿌리에서 끄윽끄윽, 울음을 참는 소리만 난다.

그리고 말이 없다.

저한테 동생이 있어요. 아주 어린 동생이요.

아이의 눈두덩이 붉어진다.

동생 이름은 내가 지어줬어요. 우리끼리만 부르는 호칭이죠. 그래서 비밀이에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

그래, 나한테도 알려줄 필요 없어.

동생을 두고 왔어요. 데리고 나올 자신이 없었어요. 걘 너무 어리거든요.

너도 충분히 어려.

난 참을 수 있거든요. 동생은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이모가 누군지, 부모가 뭔지. 거기가 전부인 줄 알고 있으니까요. 모두 원래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까.

넌 어떻게 알았어. 부모란 게 존재한다는 걸.

그건 당연히 알죠.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으로 알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생리도 벌써 해요.

몇 살이지?

한 달 지나면 만으로 12살이요.

내가 알기로 지금은 봄인데.

외국 애들은 생일날로 나이를 매기잖아요.

똘똘하구나.

강간, 치정극, 간통 이런 것도 다 알아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도 아네.

신문이나 소설책만 훑으면 죄다 그 말인데요. 텔레비전만 봐도 온통 불륜 얘기잖아요.

그만 들먹거려. 그런 거 안다고 예뻐해 주는 어른은 없어.

아마 내 엄마 아빠도 불륜이거나 강간당했으니까, 날 버렸겠죠.

다래끼의 말을 멈추게 하고 싶다.

쌍쌍바를 다 먹은 다래끼가 아이스크림 막대를 바닥에 집어 던진다. 표정이 좋지 않다. 볼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빼뚜름하게 서 있는 아이의 발목이 너무 가늘다. 만으로 12살이면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어야 하는 나이.

어느덧 검은 하늘은 제 색을 옅게 지우고 있다.

나보다 앞서 뛰던 다래끼가 갑자기 선다. 홱 돌아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콩콩, 같은 자리에서 점프한다. 다래끼의 작은 두 발이 공중에 뜬다. 찰나 동안 나는 다래끼가 항의라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해. 나는 얼결에 다래끼의 행동을 막는다. 다래끼는 맥없이 땅이 꺼지도록 고갤 숙인다.

첫 훈육이다.

8

나는 깨어 있다. 몇 달째.

불면증은 치료하기에는 버거운 증상이다. 아니지, 일종의 사치다. 밤은 어둡고 그래서 편하다. 나는 되도록 태양과 멀리 있기를 바란다. 기미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곤란한 일들은 밤에 일어난다. 나는 그것을 즐긴다. 곤란하지 않은 일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들, 가만히 있는 일들, 시간이 홀로 걸어가는 일들, 일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일들이 진행되는 건 대체로 낮이다. 가늠할 수 없는 활기가 지하철, 편의점, 횡단보도에 즐비하다. 카페에도, 음식점에도 동일한 에너지들이 형상을 띠며 돌아다닌다. 그들은 종이로 된 커피잔을 들고 삼삼오오 서 있고, 수저를 부딪치며 동태탕을 먹고, 목적 있는 걸음으로 보도블록을 바쁘게 걷는다. 같은 인종의 그들은 대체로 같은 톤의 옷을 입고, 같은 말씨를 사용하며,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일정한 공간 안에 장시간 함께 있으면 당연히 비슷한 냄새가 날 것이다. 그들은 머리가 길거나 짧고, 성기가 외부로 보이거나 감춰졌고, 안경을 썼거나 안 쓴 걸 빼고는 애석하게도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그것은 정말 활기라는 것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냄새의 종류인데, 사람들은 그 냄새를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곤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낮에 더없이 발을 동동거리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충분히 해결방안을 모색하면 애써 찾을 수 있는 종류의 곤란함이다. 내가 말하는 곤란함은 그러니까,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곤란함, 월세나 대출 이자보다 더 아득한 지경에서 흘러나오는 곤란함이다. 어디서 솟아오르고, 어디서 폭발하며, 어디서 다시 잠잠해지는지 알 수 없는, 허나 늘 곤란해지는 곤란함이다. 그러니까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약을 복용하거나, 권총을 소지하거나, 열린 대문을 보았거나 할 때 찾아오는 곤란함들. 그런 일은 대체로 밤에 일어난다. 밤은 검고 적막하고 그렇기에 편안하며 그래서 불안하고 그러므로 별수 없다고 중얼거릴 수 있는 시간. 대낮은 너무 환해서, 훤히 드러나고, 그렇기에 더없이 두려워진다. 특히 곤란함을 애써 묵과하는 어떤 활기, 사람들이 건강하다고 일컫는 활기 속에 숨어들 때는 미치도록 공포스럽다.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약을 복용하거나, 권총을 소지하거나, 열린 대문을 본 사람이 드러나지 않는 대낮일수록. 보도블록을 걷고, 음식점에서 동태탕을 먹고, 종이로 된 커피잔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밤에도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밤에 대해 추궁하길 꺼리고, 밤에 일어난 일들을 논한다 해도 그건 밤에 일어난 일이니까, 하고 어물쩍 넘어간다. 낮은 끼어들 수 없는 밤의 관용이 있다. 밤만이 지닐 수 있는 오만함. 밤은 밤으로서 충만하다. 낮은 끼어들 수가 없는 밤의 지층과 대기층과 문화권이 있다. 같은 지형에서 시간으로 분리되는 두 생태계는 동류의식을 갖지 못하고 벤 다이어그램처럼 그 공간에 서식하는 종자들끼리 묶인다. 낮에도 살고, 밤에도 사는 사람들이 밤과 낮의 교집합 역할을 해주지만 그들은 그다지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목격자로서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낮과 밤의 생활은 곤란함의 여부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낮의 생활자로서의 자신과 밤의 생활자로서의 자신이 판이할 수 있고, 밤만이 가지는 어떤 관용, 묵과, 오만에 묻혀 있는 경우가 태반이므로, 그들은 낮에도 살고 밤에도 살지만, 시간의 연속성에 기대지 않는다. 그들은 분절된 시간을 널뛰기하듯 뛰어넘으며 산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두 가지 인생을 사는데, 하나는 낮의 인생이고, 나머지 하나는 밤의 인생, 즉 곤란한 인생이다. 밤은 낮에 저당 잡힌 활기가 내지르는 비명이면서 숙명의 공간이다. 그들은 비틀리고 뒤틀려 있다. 나는 낮에 트위스트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지럼증이 인다. 잠을 자야 한다면 낮에 자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볕을 멀리할수록 기미는 생겨났다. 태양광선에 노출되지 않는 날이 많아져도 기미는 줄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는 밤의 생태계의 사람이니까. 밤은 비논리적이며 뜬금없고 우연으로 대체할 문제들이 넘치는 공간이기에 나는 그러려니 한다. 밤에는 기미도 필 수 있고 꽃도 자랄 수 있다.

낮은 눈을 떠도 악몽, 감아도 악몽이다. 악몽은 자주 나를 잠에서 내몬다. 그럴 때면 나는 잠에서 깨기 직전까지 꾸었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깊은 노력을 한다. 꿈속에서의 포지션은 언제나 생을 방관하는 자, 내지는 부차적인 조연이다. 유체이탈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나라는 형상을 관람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얻어터지거나, 강간을 당한다. 나를 좇고 패고 강간하는 자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은 볼 수 있었다. 입술 한 쪽이 삐끗 올라가 있는 그들은 종종 소리 내 웃기도 한다. 나는 일련의 어떠한 방어도 하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도 않는다.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심각하게 흔들리는 몸체를 그저 관람한다. 철저하게 방관적인 태도.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죽음을 무감하게 바라보는 관객처럼 나는 나의 몸을 배반한다. 무관심하다. 나를 쳐다보는 꿈속의 나는 언제나 팔짱을 끼고 지루한 얼굴인데, 그 모습 때문인지 잠에서 깨면 비웃음이 픽, 하고 터져 나온다.

얼마간 누워 있다가 어둠을 지우기 위해 방문을 연다. 거실 바닥에 사선으로 빛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해가 저무는 속도에 맞춰 기울어지는 빛의 선. 나는 시간을 가늠한다. 방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암전에서는 적요의 소음만이 부유한다. 여기는 방치된 사람들의 공간. 도망자들의 쉼터. 폐지된 노선의 버스 정류장 같은 곳. 창문에 검은 시트지를 바른 이유는 잠을 더 잘 자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 더 편해서. 대낮은 너무 환하고, 훤해서 모든 게 더 잘 드러난다. 그건 위험하고 공포스럽다.

사람이 미치는 건 밤이 아니라 대낮이다. 한낮의 적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벅차오르는 공허.

나는 미친 걸까.

9

버드와 내가 처음 만난 건 폐허가 된 술집에서. 철길 골목 안쪽에 있던 술집. 몇 해 전에 가봤던 곳이었는데 조만간 가게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사장은 말했다. 아직도 있으려나, 하고 갔는데 건물이 반쯤 뽀개져 있었다. 낡은 상가 건물이었는데 공사를 하다 말았는지 천장의 반이 날아갔다. 그곳에는 특이하게 툇마루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때, 버드가 핸드폰 라이트를 내쪽으로 켠 채 들어왔다. 저 외국인 노동자는 누구지. 나는 겁이 났다. 설마 여기서 잠을 자고 사는 건가. 설마 외국인 노숙자인 건 아니겠지. 설마.

버드는 니코와의 추억을 헤집는 중이었다. 몇 해 전, 니코가 처음 데려온 술집. 바 이름은 밤비행이었다. 인도에서 가져온 이국적인 천떼기가 곳곳에 붙어 있던 곳. 사람들이 알라딘 바지를 입고 물담배를 피우는 게 흥미로워 보였다고 버드는 말했다. 레게를 틀고 히피를 논하던 곳이었지. 여자 사장의 카리스마는 대단했고 멋있었어.

실제로 밤비행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월세를 200%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농간에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포스터를 만들고 공연을 열면서 밤비행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술집 주제에 무슨 문화적인 커넥션 타령이야. 사람들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애정도 예전처럼 강렬하지는 않아서 점차 바의 운명이 결정되는 듯 했다. 그때 밤비행의 사장이 권리금을 두 배로 받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새로운 세입자는 건물주에게 월세를 200% 인상해 줄 수 있을뿐더러, 밤비행 사장에게 권리금까지 줄 수 있었다. 그는 건물주와 상의해 그곳의 건물을 제대로 짓기로 했다. 건물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투자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비행을 지키고자 했던 운동은 끝이 났다. 결국엔 장사잖아, 씨펄. 공연을 기획했던 인디 밴드의 드러머는 약이 올랐는지 어딜 가도 밤비행의 여사장을 욕했다. 뭐가 그리 고까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반쯤 뽀개진 건물의 툇마루에 앉아 옛날의 밤비행을 추억했다. 영어를 잘하네? 호주에 워킹 다녀왔어. 요즘 한국 애들은 웬만하면 다 영어를 해. 어학연수 같은 거 안 간 애들이 없지. 초여름이었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툇마루에 앉아 마시면서 모던아트와 북유럽 동화, 신디 셔먼과 주디 시카고, 발레리 솔라나스에 대해 말했다. 대학에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말에 유학을 준비했다가 관두었다고 대답했다. 유학? 응. 너희 나라로 가려고 했지. 근데 왜 하지 않았지? 그냥. 나는 죽은 나의 아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당분간 미국에 가지 않으려고. 왜? 그냥. 버드도 역시 니코와의 결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온 술을 다 마시고 일어나 아침까지 하는 술집에 가서 술을 더 마셨다.

버드는 포시즌스 호텔에 나를 데려간 적이 있다. 쥬디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쥬디는 일을 관두었다. 버드는 쥬디에게 메일을 보냈다. 쥬디는 더 이상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고향인 광주로 내려갔다고 전했다. 버드는 내게 광주에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광주에서 우리는 쥬디를 만났다. 나 역시 인사를 하면서 쥬디보다는 숙영이 더 어울리는 얼굴인데, 하고 생각했다. 쥬디라니, 너무 이상하잖아.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본명을 까지 않았다. 쥬디와 노이. 그리고 버드.

쥬디는 자신의 단골 술집으로 데려갔다.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술을 더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신들은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쥬디는 우리에게 물었다. 나도 똑같이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데요? 하고 물었다. 쥬디도 사실은 도망친 거잖아요. 고향이 싫어서 도망쳤다가, 서울이 싫어서 다시 고향으로 도망친 거죠.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나는 코타르 증후군에 걸렸어요, 하고 말문을 뗐다.

그게 뭔데?

쥬디와 버드는 물었다. 버드에게는 설명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냥 쥬디에게만 말해주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병이에요. 그런 병도 있어요? 네. 스톡홀름 증후군이나 야스퍼거 증후군 들어본 적 있죠? 그런 거랑 비슷한 병이에요. 그런데 노이는 살아있잖아요. 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그 증후군의 증상입니다. 살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한다니요. 그건 생각을 고치면 되는 일이잖아요. 그러게요. 그런데 그러한 증후군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저는 당분간 그 증후군의 팬이 되려고요.

버드는 나중에야 맥락에 맞게 대충 듣게 되었다. 그런 거라면 나도 그 병에 걸렸어, 라고 말했다. 쥬디도 그렇다면 나도 그 병에 걸린 거로 칠게요, 라고 했다. 진짜 그런 병을 겪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 죄송한 말이지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닌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 증후군의 팬이 될 거라고, 나는 술에 취해 미친 사람처럼 떠들었다.

당분간 죽은 사람처럼 지내려고요.

쥬디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10

버드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이후, 우리는 암전의 방을 만들었다. 정말 관 같은 방이 필요해. 검은 시트지로 온 창문을 다 발라버린 방은 정말 암전된 무대처럼 검었다. 누구든 그 방을 점유하고 있을 땐 들어가지 않을 것. 그것만이 규칙이었다. 지금은 다래끼가 그곳에서 잔다.

아이에게는 천장이 필요하지. 비와 눈, 매서운 바람을 막아줄 처마가 필요해. 천장만 그곳이 욕조든 대합실이든 술집이든 다 괜찮아.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면(이를테면 마녀라든가, 부모라든가.)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 다래끼를 당분간 여기서 살게 해도 되겠지?

버드가 말한다.

죽은 사람이 사람을 키울 수 있어?

우리는 도베르만도 기르는 걸.

그러네. 그게 사람이라는 게 문제네.

비자 때문에라도 버드는 영어 학원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먹고 산다. 비자 때문에 중간에 외국에 다녀와야 하는 버드는 일본행을 택했다. 니코의 반쪽짜리 고향. 나도 함께 가기로 했는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넌 다래끼를 보살펴. 그게 네 할 일이야.

죽은 사람이 사람을 보살필 수 있을까?

다래끼가 다 나을 때까지만.

조만간 버드는 일본으로 떠날 것이다. 단순히 비자 때문인지, 유코를 애도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없는 일주일 동안 나는 다래끼와 함께할 것이다.

이곳의 결론은 모른다.

다만 유령이 떠도는 암전 같은 방에서, 나는 다래끼가 잠에서 깨고 자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다시 밤이 온다. 나는 아직 덜 취했다.



작가 소개


차현지

언제나 나른해지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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