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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드리밍My Dreaming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 함은

마치 바다에 빠지듯

한바탕의 꿈에 빠지는 것일세.

조지프 콘래드, 『로드 짐』 제20장

(에릭 오르세나 소설 『오래오래』에서 재인용함)




꿈을 자주 꾼다.


특별하고 생생한 꿈이다. 물론 맥락이나 설득력이 없는, 보통 ‘개꿈’이라고들 하는 꿈이 60퍼센트 정도 된다. 하지만 나머지 40퍼센트의 꿈은 생생하고 빛나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내 꿈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 중 반 정도는 앞날의 일을 예견하는 예지몽이다. 나머지 반의반은 특별한 동물이나 상황에 비추어 보아, 보통 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꿈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나는 커다란 거북이들이 서 있는 꿈을 꾸었다.

거북이가 어떻게 서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분명히 거북이들은 배를 내보이며 두 발로 서 있었다. 그 거북이들의 새끼 한 마리가 내 다리를 꽉 무는 순간 꿈에서 깬 나는 당장 거북이 꿈을 검색하고는 그날로 로또를 5만원어치나 샀다. (당첨은 단 하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무서운 꿈이다. 귀신이 나오거나 무언가에 쫓기는 꿈같은 걸 악몽이라 하지만, 그런 악몽은 거의 꾸지 않는다. 내 악몽은 좀 창의적인 데가 있다. 하지만 꾸고 나서 내용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웠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단, 몇 가지가 기억이 나기는 한다.

꿈속에서 나는 벽장 안이다. 좁은 벽장 안 끝없이 쌓인 박스에서 옷을 하나씩 꺼내고 있다. 꺼내고 꺼내도 내가 찾는 옷이 없다. 갑자기 박스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하나 나온다. 나는 그 아이를 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 나는 옷을 찾아야 하는데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것이다. 악몽이다.


당연히 이 내용은 조금 편집된 것이다. 꿈이란 걸 기억하는 과정에서 꿈은 재편집되기 때문이다. 꿈은 무의식답게 무자비하고 비논리적이며 황당하고, 때론 부끄럽다. 어느 정도 의식의 테두리에 끼워 넣어야만 설명이 된다. 만약 꿈을 그대로 재생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아마도 그런 장치는 곧 발명되지 않을까. 꽤 끔찍하겠지만 말이다.) 모두 경악할 것이다. 으악, 이것만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거야 하면서.


아무튼, 내 꿈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나는 꿈 이야기를 좋아하고, 꿈 이야기를 하는 일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내 꿈은 아무래도 좀 특이하니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나를 좀 특이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혹은 내게 ‘신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약간 앞날을 예견하는 것뿐이고(아니, 꿈으로 앞날을 예견한다고?) 무엇보다 꿈을 꾼 후에 그 꿈으로 내가 쓴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내 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내 기억에 의해, 이후에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 또는 그것을 시로 옮기면서 재구성되고 편집된 것들이다.



1. 바다와 동물


물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꾼다. 작은 연못이나 실개천이 아닌, 망망대해 또는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강, 폭포가 보인다. 우물 같은 건 물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 꿈에선. 그런데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멋질 것이다. 아무튼 바다나 호수가 파랗고 반짝거리고 깨끗한 상태인 경우 그 꿈은 좋은 꿈으로 친다. 가끔 물색이 흐릴 때가 있는데 그건 좋은 꿈이 아니다.

최근에 꾼 물 꿈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빠와 내가 석양빛으로 물든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종종 돌아가신 아빠가 꿈에 나오곤 하는데, 그 꿈에서 아빠는 수평선을 향해 수직 방향으로, 나는 수평으로 헤엄쳐 갔다. 내 꿈의 등장인물들은 말이 없을 때가 많아서, 아빠가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했지만 그저 바다 위의 윤슬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말이 없어도 기분은 좋았다. 평화롭고 안온했다.

동물은 사람보다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동물이 나오기도 한다. 황새를 본 적이 없는데 꿈속에서 소나무에 앉아있는 황새 무리를 보고 아 황새구나, 하는 것이다. 꿈에서 깬 후 황새를 검색해보고 꿈에서 본 그 새가 맞다는 걸 알았다. (후에 그 꿈은 「혼인식」이라는 시가 되었다.)


사슴, 호랑이, 잉어, 말, 뱀, 쥐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났지만 돼지나 용꿈은 아직 꾼 적이 없다. 아, 물론 개는 아주 자주 나온다. 이상하게도 고양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 이사


이사 가는 꿈도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현실에선 십 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꿈에서는 얼마나 자주 이사를 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사 간 집이 물 위에 있거나 집 밖에 바다가 있는 때가 많으므로 물 꿈과도 연결이 되는 셈이다. 하도 이사 꿈을 많이 꾸어서 「이사」라는 시를 두 편 썼지만, 사실 꿈의 의미를 이해해서 시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꿈속 이미지가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꿈에서 이사를 한 집들은 끝없이 변주된다. 금간 벽에 좁고 낡은 집, 테라스 너머로 바다가 넘실대는 널따란 통나무집, 마당이 있는 집, 아주 큰 통유리창이 있는 집, 숨겨진 방들이 자꾸만 나타나는 집… 그 꿈들이 어떤 심리를 반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이사를 가고 싶은 걸까?

하지만 더 좋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꿈에서 이사를 간 집은 낡고 허름한 집이거나 물에 잠겨 있거나 아예 배처럼 항해를 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 안 된다. 사실은 바로 이 점이 나를 꿈에 매혹되게 만들기는 한다. 내가 꾸었으니 내 것이면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내 꿈에 누가 나오든, 어느 장소가 나오든 그건 꿈 안의 일일 뿐이다. 아무도 내 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심이 없다. 문득 내 꿈이 한없이 가여워지고, 그리고 더 즐거워진다.

이건 나만의 세계야. 아무도 침범하지 않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지 않고 동시에 모든 일이 불가능한 세계. 어떤 일도 가능하고 모든 일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 그러므로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다.




3. 예지몽


앞날을 예견하는 꿈을 간혹 꾼다. 어떤 꿈은 이상하게 생생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데, 예를 들면 첫 시집이 나오기 전에 흰 눈밭에서 살구를 줍는 꿈을 꾸었다. 시집이 나오고 한참 후에 그 꿈의 의미를 갑자기 깨달았다. 내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의 표지는 꿈에서 본 색깔이었다.

미래를 예견한다고 해서 딱히 도움이 되거나 한 적은 없다. 그저 일종의 데자뷰와 같은 것일 뿐이고 매우 개인적이거나 사소할 때가 많다. 그런 꿈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 편이다. 조금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과거에 본 이미지나 사실들은 어차피 미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무의식이 미래를 좀 미리 알았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뭐 점집 차릴 것도 아니니까.


무의식을 처음 인류에게 소개한 사람은 프로이트라고 알고 있다. 무의식은 사실에 기반한 과학일까, 아니면 논리에 기반한 철학일까? 인류는 아직 스스로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론일까 신비일까?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걸 이론으로 밝혀낼 수 있다면, 과학을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것들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우리가 믿는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면, 미래가 과거이고 과거가 미래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현재에 집착하는 인간은 때로 한심해 보인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말자. 어떤 한 순간을 길게 늘이면 영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반대로,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단 한순간일 뿐일 수도 있다.



4. 교회


어린 날의 많은 시간을 흰 건물에 넓은 정원이 있는 교회에서 보낸 나는 아직도 교회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녹색 잔디밭, 체리나무(물론 벚나무였겠지만, 어릴 땐 체리가 열리면 따먹는 체리나무라고 생각했다), 지하실, 예배당, 화장실과 여러 개의 방들이 너무도 깊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다. 다른 어떤 놀이터보다도 더 많은 추억이 있는 그 장소에 슬프게도 다시 갈 수는 없게 되었지만, 꿈에서 나는 그 예배당과 정원을 다시 본다. 아마도 내게는 공간이 어떤 말, 음향이나 사건, 그리고 인물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수레국화를 물에 씻어 예배당에 하나씩 내려놓는 꿈을 꾸고 나서 나는 「꿈-J에게」를 썼다. 꿈에 나온 푸르스름한 색의 국화가 무엇인지 몰라서, 검색해서 수레국화라는 걸 알았다. 인터넷 검색 기능이 없다면 곤란했을 수 있겠다. 꿈에서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씻었던 꽃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이나 식물도감을 찾아봐야 했을 테니까.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꽃이나 동물이 꿈에 나오는 일은 무의식이 의식보다 강한 힘을 가졌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기하지 않은가? 난 몹시 신기하다.

익히 아는 그 예배당 외에도, 가끔 꿈에 등장하는 아주 거대한 회랑과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예배당도 내 마음을 매혹시키는 장소 중 하나다. 그런 장소는 사실 가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경동교회 예배당 사진을 보고 꿈속 장소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경동교회에 가본 일은 없지만, 전생에 가봤을 수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건축물은 아니다.)




5. 연예인


기상천외하기로 따지면 연예인이 등장하는 꿈이 최고다. 평소 별 관심도 없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나오는 꿈을 꾸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인 것 같은데, 그래도 ‘성룡’이 나오는 꿈을 꾸신 분은 없지 싶다. 아니 없다고 단정 지으면 안 되겠지. 하지만 일단 내가 들은 바로는 없다.

그건 너무 웃겼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고 있는 꿈 중 하나다. 꿈에서 전쟁이 났고, 성룡은 군인이다. 어딘가 부상을 당한 성룡을 나는 지하실에 숨겨 주고 먹을 걸 가져다준다. 그는 결코 잘생기거나 키가 크거나 하지는 않은데도 분명 로맨스의 기운이 풀풀 풍기는 상황이다. 다행히 그 이상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그나마 이소룡이나 이연걸이 아니어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기왕이면 양조위나 장국영이 나올 일이지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 꿈 이후로 성룡은 내게 어쩐지 친근한 사람이 되었다.

문세 오빠가 나와서 가방을 잃어버린 나를 들어 안고 어디론가 막 뛰는 꿈, 장차 와이지 사장이 될 줄은 몰랐던 양현석이 ‘서태지와 아이들’ 중에서 내가 뽑은 미팅 상대가 되는 꿈 등 황당무계한 꿈을 많이 꿨지만 최근에 꾼 하정우님 꿈이 역시 최고의 꿈인 것 같다. 입시미술학원을 같이 다닌 동기와 ‘하정우’와 내가 만난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1년간만 그 학원을 다녔고, 재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술학원 후배가 있을 리 없건만, 하정우님은 내 후배다.

동기는 어디론가 가고 나와 정우(?)는 길을 걷는다. 느닷없이 정우가 내게 고백을 한다. 누나, 저 옛날부터 누나 좋아했어요. 음? 그러니? 현실의 내가 그런 고백을 받는다면 기뻐서 방방 뛰겠지만 꿈속에선 별로 놀라지도 기분이 별다르지도 않다. 그저 계속 골목을 걷는다. 정우님, 역시 걷는 분이다.




6. 시, 또는 꿈


얼마 전에 꾼 꿈이다. 연극 무대에서 중요 배역을 맡았는데, 어째선지 누구도 대본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진행되는 공연의 주인공 누나 역인데, 내가 나갈 차례가 다가오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본을 달라고 누구에겐가 사정을 해 봤지만 내가 받은 건 정작 내 대사 부분이 찢겨진 대본이었다. 방법은 임기응변뿐이다.

꿈에서 깬 나는 비몽사몽간에 핸드폰 메모장에 ‘대사 없이 연기를 할 수 있나요?’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한 줄의 메모는 시의 모티프가 되었다. 아직은 초고만 써 놓았지만.

인생을 하나의 공연이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사 없는 연기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명은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운명이라는 대본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매 순간 연기를 해야 하지만 앞으로 이 극이 어떻게 진행될지, 이 순간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꿈이 시가 되는 일이 내겐 귀하고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까지 쓴 많은 시들이 꿈을 통해 얻은 영감과 이미지로 탄생됐다. 꿈이 텍스트가 아닌 3차원적 영상이라는 점에서, 그 상황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섬세하고 상상이나 간접체험보다는 훨씬 생생하다. 게다가 내 꿈에서는 극적인 일이 참 많이 일어난다.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나 감각을 꿈에서 겪는 일이 가능할까? 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꿈에서만 사는 집이나 걷는 길, 동네, 버스정류장, 언덕이 있다. 실제로 가본 적도 없는 그 장소들이 다시 등장하는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이제 그러려니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꿈속에서는 그 장소가 실제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평행우주론을 상당부분 믿는 편이다. 평행우주에 사는 다른 내가 사는 집이나 걷는 길이 무의식을 통해 나타난다고 하면 그건 좀 말이 되니까.

꿈은 내 감각과 인식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서는 무척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시를 쓰는 이유인지 모른다.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경험, 아직 알지 못하는 감정들이 내겐 너무나 많고 그것들을 이 짧은 생에서 다 겪어내기란 불가능하니까.

내게 시는 꿈이고, 꿈이 곧 시인지도.



얼마 전, 한동안 꿈 심리치료를 진행하셨던 선생님으로부터 꿈을 공유하는 일의 신비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몇 명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꿈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꿈에 어떤 공유나 간섭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모임이 진행되자 서로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심리 상태가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놀랍고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돼지꿈처럼 좋은 꿈을 꾸면 아무한테나 함부로 꿈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던가 하는 오래된 금기가 있지 않은가?

우리의 꿈이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지는지 인간은 아직 모른다. 텔레파시나 초능력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는 한 우리에게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다.

꿈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이루지는 못했으나 언젠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할 때, 우린 꿈을 꾼다고 말한다. 꿈이 있다면 아무리 슬픈 현실이라도 살 만 하다고 여긴다. 인간은 아직은 아름다운 존재인지 모른다, 아마도 꿈을 꾸는 한.


인간만 꿈을 꾸는 건 아니다. 개도 꿈을 꾸고 잠꼬대도 한다. 꿈을 꾸다가 친구라도 만났는지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새도 꿈을 꿀까? 나무는 어떨까? 아마 새도 꿈을 꿀 테고, 나무에게도 꿈이 있을 것이다. 잠자는 존재는 모두 꿈을 꿀 테니까. 꿈꾸는 존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엊그제 꾼 꿈이 기억난다. 한동안 오지 않던 아빠가 꿈에 나왔다. 아빠는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사물들에 은색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내 피부는 은색으로 덮였고 반짝거렸는데, 그것이 어쩐지 굉장히 슬펐다. 무언가에 이별을 고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별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 그러니 이렇게 빛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뭘 꿈꾸든, 언젠가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날이 오겠지. 나는 꿈을 꾸는 한 시를 쓸 것이고, 그러니 언젠가 시를 쓰지 못하는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꿈결에 가르쳐 주었다. 모든 이별마저 다 빛나는 것이라고.





필자 소개


박시하.

시인. 매일 꿈을 꾸고 가끔 꿈으로 시를 쓴다.

평행우주론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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