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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안 독립 매체 만세! #5. 작가

1. 십 년쯤 전에, 그러니까 내가 스물두 살이거나 세 살이었을 때 그 무렵 동경했던 작가를 만난 적 있다. 나의 모교가 위치한 도시 어느 바닷가에서였다. 업무 일정을 위해 모처럼 지방에 내려온 그는 일을 마친 뒤 내게 연락해왔다. 저녁에 바다에서 보자고. 좋은 바다를 알면 소개해달라고. 이 도시를 대표할 만한 바다라면 여러 곳이 있었지만 그라면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다를 좋아할 거야 곧 죽어도 좋을 그런 바다를 좋아할 거야 하고 내 멋대로 짐작했던 기억이 난다. 잠시 후 그와 나는 그런 바다에서 만났다.

연이 닿은 건 트위터에서였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어가던 때였고,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성에 새로운 감각을 더해주고 있었다. 다만 나는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twtkr을 통해 하루 십 분 아무도 읽지 않을 산문을 쓰는 공간으로 트위터를 활용했다(twtkr에서는 긴 글 쓰기가 가능했다.). 그때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지키려고 애썼던 원칙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 고치지 않을 것.

둘. 손을 멈추지 않을 것.

당연히 마음에 내킬 만큼 좋은 글은 나오기 어려웠을 텐데, 당시 나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십 분간 머릿속을 스치는 말들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 하루 이십사 시간 동안 내내 숨을 참고 있다가 트위터에 글을 쓰는 십 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기분이었다. 십 분은 길고도 짧았다. 짧고도 길었다. 고치지 않으면서,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 십 분을 보내고 나면 보통 에이포 한 장 분량의 글이 나왔다. 나는 무슨 겁도 없이 그런 글들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루하루 운동량이나 식사량을 기록해두듯이 그렇게 했다. 차츰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모를 팔로워가 이삼십 명 생겼는데, 대부분 어딘지 유령 같은 느낌을 풍길 뿐이었고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리액션을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로 발전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처럼 별 볼 일 없는 계정에 그는 찾아왔다. 어느 아침, 그는 마음을 찍고 리트윗을 하고 멘션을 남기더니 이윽고 나를 팔로우했다. 팔로우한 모든 계정의 수가 내 팔로워 수와 비슷하던 그였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핸드폰 전원을 껐다 켜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꿈을 꾸는 기분. 관용적인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게 아닐까 의심했던 건 살면서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게 그렇게 별 일이었나 싶지만 그땐 그랬다. 작가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게 된 SNS 환경 자체만으로도 경이롭던 때였다. 정말이지 그땐 그랬다.


나에게 있어 작가란 신화적인 존재였다. 히말라야 산맥이나 네스호, 마리아나 해구에 산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뿐 주위의 어느 누구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전설의 동물 같은 존재.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리븐델에서 온 요정 또는 하늘에서 어떤 책무를 지고 내려와 잠시 인간으로 현현한 대천사 같은 존재. 현실에서는 도저히 만날 길이 없는 그런 존재의 흔적이라도 더듬기 위해서 나는 책을 읽었다. 이미 지나간 세상의 어느 순간 작가가 종이 위에 남겨둔 말들을 ―다소 늦었다고 하더라도― 읽기 위해서. 그러므로 나에게 책을 읽는 일이란 그 자체로 판타지적인, 서로 다른 시간을 겪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서로 다른 시간으로 만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경험해야만 했던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머나먼 간극 그리고 신비였다.


2. 그로부터 십 년이 갔다. 그동안 작가들로부터 느껴왔던 신비는 거의 죽어버렸다. 나 자신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던 욕망 또한 사라졌다.


3.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작가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신비로울 수 있었나. 그들은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 존재였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십 년 전 그 작가를 만나러 가던 순간의 감정을 기억한다. 터질 것처럼 박동하던 심장을 기억한다. 순식간에 달구어졌다가 차분하게 식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던 나의 이상한 몸을 기억한다. 그게 다 뭐였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 모르겠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 말했다. 그때 나는 아무나 만날 수 없는 무엇을 만났다. 지금껏 내가 아는 누구도 만나지 못한 아름답고 근사한 전설의 동물을, 리븐델의 요정을, 내가 잠시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현현한 신을.

나는 그로부터 선택 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로부터 구원 받았다고. 구원 받기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요정이나 천사처럼 특별한, 평범한 인간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고. 아마 나는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구원 서사가 눈앞에서 쓰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이 가고 남은 자리에는 나만의 삶이, 나 자신으로서만 견뎌야 하는 삶이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나는 어제와 같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났고 어제와 같은 밥을 먹었다. 내가 구원 서사의 일부라고 믿었던 그 순간은 대부분 서사가 그렇듯 특정한 관점에서 해석되고 선택된 정보의 선형적 흐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오랫동안 나는 유월의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흔들리면서 기다렸다. 낮이건 밤이건 작가가 되는 날을 꿈꾸며 몸을 배배 꼬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해마다 썩어 문드러졌다. 그렇게 십 년이 갔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그토록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 믿을 수 없는 허울. 낭만화된 환상. 나는 그런 것들을 원했다. 십 년 전에 만난 그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고고하게 반짝거리길 원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작가란 한 사람이 글을 쓰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쓰러 가면 된다. 단지 그뿐이다.

작가는 죽었다. (그리고 어쩌면) 독자 역시 죽었다. 이제는 작가일 수 있는 독자와 독자일 수 있는 작가가 한 데 마구 뒤섞여 살아간다. 둘은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둘은 그때그때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단지 그뿐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십 년 전 아무도 보지 않는 트위터에서 긴 글을 쓰던 때 하루 십 분씩 어느 한 부분도 고치지 않으면서,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 새로운 문장들을 쓰는 순간에 깊이 잠수해 들어갔던 그때 나는 다른 어떤 시간의 나보다도 작가였다. 스스로 선택한 글쓰기를 통해 숨 쉴 자유를 얻었던 바로 그 시간 나는 가장 작가였다.

나는 요즘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시인지 소설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무엇인지를 쓰고 있고 읽고 있고 한국문단의 전통적인 구분에 따르자면 작가보다는 독자에 가까운 동료들과 문학잡지를 만들고 있다. 잡지의 이름은 비릿. 우리의 고민에는 한계가 많고 그러므로 비릿으로 하여금 세계에 고착화된 이상한 경계들을 건드리는 일은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의 일이 작은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일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질문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


한의연

비등단 작가. 문학잡지 비릿의 에디터.

(@meineaufg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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