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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안 독립 매체 만세! #4. 포즈Pause, 포즈Pose




어디서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티프>는 휴간에 들어갔고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고 배우고 있다. 스스로가 이런 자리에 초대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인상에 투고하며 한국문단에 소속되기를 바라면서도 등단제도의 부조리함에 환멸을 느끼는 양가적인 마음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지난하고 고루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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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레이블 공전이 만들어진 것은 2017년 12월, 비주얼문예지 <모티프>가 창간된 것은 2018년 4월의 일이다. 지금까지 많은 매체에서 우리를 인터뷰해갔다. ‘이런 걸 왜 만들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개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인터뷰어가 있다. 그는 스테레오타입의 기자였는데,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래서 등단은 언제 하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수차례 던져왔다. “비등단자가 만든 문예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우리는 애써 웃으며 인터뷰를 끝냈고 사무실로 돌아가며 기사가 좋지 않게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어리숙하고 겁이 많았다. 자주 공격받았고, 단단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분노보다는 그게 우선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사는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편집되어 실렸고 심지어는 희망차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문예지 시장의 판도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최대한 저렴한 종이에 온통 흑백으로 활자를 싣거나, 오래된 템플릿을 표지로 우려먹으며 미감에 신경 쓰지 않는 문예지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종이책, 그것도 정기 간행물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물성의 질을 높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있을까. 나는 종종 ‘문예지’의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 흥미로운 담론들, 질 좋은 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사서 읽혀야만’ 유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되지 않는 출판물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모티프>를 만들기 시작한 건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교집합이 지나치게 큰 비율을 차지하는 한국문학 시장 특성상, ‘문예지’가 선택할 수 있는 활로가 그저 ‘보기 좋아지는’ 것뿐이라면 이마저도 빠른 시일 안에 한계에 부딪히리라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문학 독자층의 범위 자체를 넓힐 수 있다면 어떨까. 한때는 소수와 약자의 문화였던 힙합처럼, ‘대중적인’ 예술로서의 문학은 존재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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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인과 소설가의 스타성을 믿었다. 모든 ‘스타’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입고 활동한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처럼 그들이 전면에 나서 얼굴을 비추며 각자의 팬덤을 구축하길 바랐다. 작가들이 ‘아이돌’처럼, 힙합씬의 래퍼들처럼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팔아 돈을 벌기를 바랐다. 특출나게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잠깐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더라도 ‘작가’이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태될 것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끊임없이 약동하는 활력이 존재하는 생태계에는 고이거나 썩을 틈이 없으므로. 이러한 순환이 현재 한국문학 시장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모티프>를 기획했고, 작가의 화보를 촬영하기로 했다.

이미 많은 활동을 거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쌓아 올린 기성작가들 대신 단행본을 출간하지 않은 신인에게 청탁을 넣었다. ‘신인특집호’라는 별칭이 붙은 3호에서는 1년 사이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여성 작가 6인-김연덕, 박세랑, 성다영, 이슬아, 장류진, 장희원-의 신작을 받았고, 그 글과 작가의 스타일을 분석하여 화보 콘티를 짜고 ‘어울리는 옷’을 입혔다. 그리고 “출사표”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3호를 기획할 당시 <모티프>의 2호부터 4호까지의 디자인을 맡아주었던 신인아 디자이너에게 “6명의 1집 앨범 재킷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라는 주문을 넣었고, 3호는 훌륭하게 완성되어 역대 최고의 판매량을 갱신했다. 3호의 특전은 작가들의 친필 글귀가 새겨진 화보 브로마이드 포스터였다.

“우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의 기획 회의를 통해 모티프의 문학을 정의했다. 구성원 네 명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분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소비되는 문학을 만들자.’ 소설이, 시가, 문학이,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세상에 보다 인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문학잡지라는 포지션을 고수해온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것도 문학이에요.’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장은정, 공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티프』 3호, 문학레이블 공전, 2019. 4.)

사실 <모티프>가 굳이 종이 문예지의 포지션을 고수해온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 책의 디자인 방향을 잡을 땐 ‘서점 매대의 패션 잡지 코너와 문학 코너 둘 중 어딜 가도 눈에 튀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모티프>는 반드시 ‘문예지’여야만 했다. 우리가 타겟팅한 잠재적 소비자는 기존의 문학 독자층에 속하는 이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패션 분야를 비롯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껍데기로 대중에게 접근하여 얼렁뚱땅 문예지를 ‘사서 읽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일단 한번 잡숴 봐. 생각보다 맛있어.” 그런 마음으로 책을 엮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비롯한 오프라인 행사를 나가며 우리의 이런 시도가 완전히 헛발질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고, <모티프>는 2019년도에 이어 2020년도에도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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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2020년 봄호를 쉬기로 결정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이러한 뜻을 전하며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있던 사무실을 뺐고, 춘천에 있는 유수연(공전 대표 중 하나, 시인, <모티프> 발행인)의 개인 사유지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먼저 코로나의 탓이 컸다. 스타일리스트와 헤어·메이크업 팀, 포토그래퍼와 어시스턴트, 모델이 되는 작가들과 공전 멤버들을 포함해 약 10명에서 20명 사이의 대규모 인원이 모여야만 하는 화보 촬영 스케줄을 강행할 수가 없었다. 이런 얘기는 사실 표면적인 이유이고,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창간 당시부터 꾸준히 자금난이 있었고, 더 이상 그러한 리스크를 감내하며 ‘문예지’로서의 스탠스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모티프>는 ‘문예지’라는 타이틀을 지켜야만 하는 잡지였다. 달리 말하면, ‘종이 잡지’의 특성을 포기한다면 굳이 ‘문예지’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2년간의 <모티프> 시즌 1을 끝내고 새로운 형식의 ‘대안 매체’로의 포맷을 기획하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게 될지는 아직 그 무엇도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기존의 ‘문예지’로서의 틀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고,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뻔한 말이지만, 그렇다. 더 배워야 할 것 같았고, 여기에서 손을 놓기에는 아직 글이 좋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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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카메라에 찍히려면 어딘가에 멈춰 선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델은 스스로 자신이 있는 한 가지 포즈만을 취하기도 하고, 비슷한 각도와 비슷한 무드로 찍히기를 고집하기도 한다. 단 한 장의 A컷을 위해 포토그래퍼는 수십, 수백 번의 셔터를 누른다. 우리는 그동안 모델에게 지정된 레퍼런스 안에서 최대한 많이 움직이라고 지시한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중에 무심코 찍힌 사진이 A컷이 될 수도 있고, 현장에서 콘티가 변경될 수도 있으며, 조명에 눈이 부셔 잠깐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이 베스트가 될 수도 있다.

‘정지(Pause)’와 ‘포즈(Pose)’는 다르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촬영장 바깥에서 <모티프>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우리가 ‘멈춘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




작가 소개




이리


문학 레이블 공전 보스. <모티프> 책임편집인 겸 패션디렉터. 가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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