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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안 독립 매체 만세! #3. 계속 쓰고 싶어서




어느 날 전화가 온다.

청탁서를 받는다.

쓴다.

낸다.

어느 날 전화가 온다.

다시 전화를 기다린다.

한없이 전화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작품을 발표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내가 발표할 매체나 플랫폼을 결정할 수 없고, 그마저도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으면 발표 자체가 어렵다. 작품을 투고해보는 건 어때? 누군가 조언해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망연함을 느꼈다.

등단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다니기 전에는 회사에 대해 알 수 없으니까,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잘 하다보면 누군가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알아줄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정보가 생길 테고, 동료들도 생길 거라고 믿었다. 문학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 구조라든가 시스템이라든가 관행이라든가 규칙이라든가 숙지해야 할 것들을 누군가가 알려주겠지. 지켜야할 것들, 주의해야할 것들, 조심해야할 것들. 제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들. 그러나 나는 모든 것들을 말로만 들었다. 그 말들은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소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개인의 몫이었고, 어떤 일이 있는지, 있지 않은지도 듣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다. 질문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직도 많은 것을 모른다.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임기응변으로 이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 기다려야 했다. 그건 앞으로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호명되지 않으면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 등단을 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친척어른 한 분이 “어. 그래 축하한다. 그래서 소설가는 월급이 얼마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 월급을 받는 건 아니고요…….” 라고 대답했다. 말하면서도 너무 민망했는데, 친척어른은 그래서 대체 얘가 뭘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나도 궁금했다.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얼마든지 더 있었다. 뭘 쓰니? 그래서 어디서 볼 수 있니? 책은 언제 나오니?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소설가는 벌써 소설집을 냈다.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하면 아나운서와 산부인과 의사가 나온다. 나는 마음속으로 진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딴 생각을 한다.

그런 순간에도 쓰는 내가 있으므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작가로써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일부 나눠 쥐고 있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호명되지 않아도 살아남고 싶다. 계속 쓰고 싶다.

그러니까 한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고, 뭘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뭘 해야 하는 거지? 고민하는 와중에 친구들과 낭독회를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보기도 했다. 메일링 서비스나 유튜브도 생각해봤는데, 매주 일정한 퀄리티의 컨텐츠를 생산하고 누락 없이 관리할 자신이 없고, 한다면 대체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건지도 망연하게만 느껴져서 일단 접어두었다.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해봤다. 종종 일기를 올리는 블로그조차 방문자가 손에 꼽는데, 대체 누가 내 홈페이지를 찾아준단 말인가.


일련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SRS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차현지 소설가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SRS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청탁이라기보다는 투고 권유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차현지 소설가가 겪은 부당한 일들을 기사로 읽어 알고 있었다. 권력과 위계가 가시화되지 않은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불투명한 구조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암암리에 묵인되고 있는지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건 나의 기다림과 아예 무관한 일도 아니었다. ‘문학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차현지 소설가가 아주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모든 여성 창작자들이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용기가 그냥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트위터에 의견을 적고, 알티를 하는 방법뿐이었지만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누군가가 알았으면 싶었다. 어쨌든 원고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그 메시지가 조금 더 힘을 얻지 않을까. 머릿수라도 되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은, 사심도 있었다. 청탁이 없으면 글을 발표할 수 없고, 어쩌다 글을 발표해도 반응이 곧장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기다림 속에서, 나는 내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누가 읽긴 읽었는지, 읽고 어떻게 느꼈는지, 앞으로도 내 이야기를 궁금해해줄지, 여러 가지가 알고 싶었다. 나도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오가면서 글을 읽으니까, 조금 더 접근이 용이한 SRS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넷 플랫폼은 비교적 즉각적으로 반응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누가 내가 쓴 글을 구입하고 읽어줄까? 읽는 사람이 있긴 할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누군가가 내 소설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었다. 크고 작은 반응들도 힘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용기와 수고에 기대어 작품을 발표할 용기와 자리를 얻은 것이다. 그게 다시 새로운 용기와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서, 개인이 기획하는 메일링 서비스를 한데 모아 정리해두는 사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았다. 비교적 자유롭게 의견이 오가는데다 수용되고 반려되는 여러 입장들을 공개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운영하거나 발간하는 사람들에 따라 저마다 다양한 컨셉과 형태로 플랫폼이 구성된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플랫폼과 매체에 대한 피드백도 간혹 볼 수 있다. 더 많은 고민들이 모여서,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다.


SRS에는 시와 소설 뿐 아니라 에세이나 비평 등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새 글이 올라오면 메일로 알림이 온다. 종종 들어가 다른 분들의 작업들을 살펴본다. 재미있는 글이 많고, 또 저마다 개성 있고 매력적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 기분이 좋고 가슴이 뛴다. 자리가 많아지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일인 것 같다.

문제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끄러지고 넘어질 기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좋음을 판단할 기회. 지면이 없어? 그러면 만들면 되잖아. 그 간단한 걸 어렵게 만드는 게 대체 뭘까.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계속 썼으면 좋겠고, 적어도 기다림 때문에 지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밤을 뺏는 멋진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당선소감에 적은 적 있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너무 많다.

생각한 것을 최대한 솔직하게 적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입장인지, 이 말들이 기만으로 느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고 조심스럽다. 매체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작성한 것이므로 이 논의에 어디까지 보탬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큰 것을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썼으면 좋겠고,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뿐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것이 내가 SRS에 소설을 투고한 이유였다.




작가 소개




조시현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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