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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안 독립 매체 만세 #2.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에 대해서



대안과 독립, 문학, 플랫폼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에 대해서 지금의 문학 현장에 발 담그고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대안과 독립, 문학, 플랫폼의 조합은 기성 문학으로부터 파생되어 굳이 범주를 나누기 위한 관성적인 명명법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성 문학에서 정의한 문학이라는 상징, 예컨대 등단 제도와 대형 출판사, 문예지 등을 포함한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공고히 하며, 대안과 독립의 당위가 세워둔 기준을 어기고 기존의 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일이다.


‘독립’과 ‘대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각각 기성의 문학의 장(場)으로부터 독립한 새로운 문학의 공간(또는 문학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과 문학이라는 상징을 구성하던 기존의 방안들을 대신할 수 있는 제 3안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정치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이라는 말, 어떤 형태의 글이건 최근에 쓴 글이라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당위가 필요하다. 정치적인 목적 없이 단순히 문학을 조금 더 자유롭게 향유하기 위함이라면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의 종사자로써 방향을 제시하거나 한계와 의의를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을 쉽고 개방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된 시대의 편리함을 말하면 된다. 다만, 대안과 독립이라는 말과 그 뜻은 지워야 마땅하다.

어원으로 보았을 때 플랫폼은 '구획된 땅의 형태'를 뜻한다. 경계가 없던 땅이 구획되면서 계획에 따라 집이 지어지고, 건물이 생기고, 도로가 생기듯이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기본적인 뜻을 기반으로 문학 플랫폼을 말해보자면, 이른바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기 이전의 기성 문학이 예컨대 문학, 또는 문학이 아닌 것으로 경계 짓지 않은 곳을 새롭게 구획하여 형성한 문학적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비슷한 의미로 동시에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본주의의 관점에서 공간과 장소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면 둘은 상호 관계에 놓여있으면서도 명징한 차이를 가진다. 사람들의 살아있는 경험이 어떠한 것으로 정의되어 해당 공간의 안팎이 구분지어지면 공간은 곧 장소가 된다. 이에 장소는 축척된 경험들, 사람들의 문화적인 정체성과 영향을 주고받는 성질을 가지며 가능성을 실현한 곳이 된다. 이 차이를 견주어 보았을 때 플랫폼이라는 단어의 독특한 지점은 장소가 되기를 기다리는, 또는 장소가 되기를 거부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은 모순이다. ‘대안’과 ‘독립’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강력한(또는 강력하지 않음으로 강력한) 정치성은 일종의 장소감(場所感)을 전제한다. 현장에서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 연대로써 작동하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당위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아직 닫혀있지 않음’ 또는 ‘정의 되지 않음’을 정치적으로 표방하기 위해 새로운 문학적 흐름이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있음을 말할 수 있다. 현재는 사용자 기반 서비스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나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통상 정치 용어로는 공약, 또는 정견을 의미한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정치적 실험으로써 플랫폼 정치가 활발히 논의됐던 사례를 참고하자면, ‘플랫폼’의 용법은 이합집산이라는 현대적인 연대의 특징을 기반으로 기성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메타 전략에 해당된다. 양당 정치가 팽배한 현 상황 속에서 군소 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를 조정하는 역할의 필요성에 의해 최근에 등장한 플랫폼 정당은 대의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이자 권력 독점을 방지하고 군소 정당들이 권력을 배분받을 수 있는, 정당 다양성을 회복하는 역할로 조명 받았다. 즉, 기성 권력 구조를 닫혀있음으로 상정하여 가능성의 공간에서 일시적인 연대를 통해 제3의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플랫폼 정치는 거의 무산되었으나, 그 무산된 모습마저 대형 출판사의 문예지나 기관이 독립 문예지, 또는 독립 출판의 현장에서 독특한 디자인과 형태, 또는 내용적 자유로움을 소비자 수요로써 조사하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한 예상을 일으킨다. 대형 출판사나 기관, 문예지들은 구조의 문제성을 알지만 딱히 구조 자체를 개혁할 생각은 없어 보이며, 앞서 말한 것처럼 독립 문예지나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들이 보여준 가능성들을 오히려 가로채고 있는 모습은 플랫폼 정치를 둘러싼 최근 정치판의 모습과 결이 비슷하다. 의도했건 안했건 그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사유는 ‘모두가 이익 집단이며 공평한 경쟁 시스템’이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권위주의로부터 좌절되기 때문이다. 플랫폼 정치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행보도 앞선 논리를 근거로 자신들의 플랫폼 정당을 만들었다.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예술 중에서도 문학이라는 영역은 특히, 다양한 예술적 가능성들이 경제의 영역 속으로 함몰되는 곳이다. 절대적인 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애초에 가능성을 탐색할 수 없는 곳이기에 특수하다. 그럼에도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라는 흐름이 형성되고 논의되고 한국 문학의 장은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있는 당장에 잘 팔리는 독립 출판 도서의 저작권을 대형 출판사가 양도받거나 해당 작가를 기성 문학의 장(場)으로 영입하는 방식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대표적인 아이러니다.

사실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의 초기 목적과 의도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기성 문학의 장(場)으로부터 형성된 문학 시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자본이 확보되어야 한다. 문학이 활발히 창작되는 국가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예술가보다도 저작권 양도에 대한 현실적인 불리함이 가장 크게 작용되며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구시대적인 대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의 본질은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는 특정 단체 또는 개인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기성 문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범주에게 책임을 묻는 일 또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 중 다수는 아직까지도 문학 창작자들을 가난한 선비이자 세상물정 모르는 깨끗한, 현명한 호구의 이미지로 여전히 그리고 있고 몇몇 작가들은 그 이미지를 잘 이용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인 문제로 인한 불가능성은 연대하여 함께 해결해나가지 않는 이상, 소소한 푸념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적으로 단절시킬 수 있는 거친 방안으론 두 가지가 있다. “1.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들이 등단 제도를 완강히 거부해야 한다. 문학 권력의 측면에서 원로 작가, 편집자, 대형 출판사, 기성 작가(또는 기성 작가가 되고자 하며 그것만을 희망하는 지망생들) 등의 주 역할은 제도를 견고하게 하는 재료들이다. 지금의 자리 매김을 포기할 때까지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 초기에 표방했던 기성 문학 제도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방안의 제시라는 정치의 지속가능성 또는 효용은 없다. 불매와 파업은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유효한 운동이다. 기성 문학의 자장 내에서 기성 문학에 대한 비판은 결국 그 권력을 재확인 할 뿐이다. 2.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립할 수 있는 수익 창출 방안을 마련하거나 자본가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선언에 가까우며 수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명징한 방안 하나는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고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 독립 문학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관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들이 기존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며 총체적인 문제 속에 놓여있는 문학의 현장을 직시함과 동시에 이곳에서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이 기획 에세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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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글을 씁니다. 시집 <고고보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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