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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안 독립 매체 만세 #0-1. 심한 말


올해 초, SRS의 큐레이터인 차현지는 '대안 독립 매체 만세'라는 기획서를 다양한 문예 플랫폼의 작업자, 그리고 플랫폼을 이용해본 작가와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 비평가에게 보낸다. 이 기획은 독립 잡지와 신생 대안 문예 매체에 대한 기획자, 작가, 비평가, 독자의 작업 일지이자 관찰 노트쯤으로 한다.



위와 같은 기획서를 받은 필진들은 한 편씩 원고를 송고해왔고, 4월 초로 예상했던 업로드는 5월 마지막 주부터 진행된다. SRS는 매주 목요일마다 그 원고들을 업로드할 계획이다.


첫번째로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이자, 소설가 박서련의 원고를 게재한다.




심한 말



사실은 나 최근에 이런 글 너무 많이 썼다. 월간 안전가옥에서도 썼고, 던전지기들이 다같이 쓴 글을 베개에 싣기도 했다. 던전지기들끼리 진행한 대담 내용(그건 온라인 대담-즉 타이핑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반은 ‘말한' 느낌, 반은 ‘쓴' 느낌이다)도 비슷한 맥락이었고. 그래서 또 무슨 얘길 하면 좋을까 고민이 됐다. 이번에는 되도록 나만 할 수 있는 말을 하기로 했다. 다른 문청들의 입장을 고려한 보편적인 (여기서 말하는 ‘보편’이란 경험적으로-상상된 것이다) 의견이 아니라 꼭 나같은 이력을 가진 나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하긴 매번 그런 말을 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글을 다 쓰고 나서는 꼭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나 너무 심하게 말했나?, 이런 식으로, 다정한 검열을 요청하곤 했다. 이번만큼은 그냥 심하게 말하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고 바로 발표하려고 한다.


어떤 말이 심한 말인지, 심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약간 헷갈리기 시작했다.


오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청소년 없는 청소년 문학계에서"(김과현) 라는 글을 봤다. 나에게는 특히 “우리는 청소년이 저자인 출판물을 얼마나 접해봤을까?”라는 질문이 와닿는 글이었다. 필자가 말하려는 바와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는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나의 청소년기를 소환하는 말이기도 해서 그랬다.

한 20년 전쯤 나는 청소년이 저자인 한 줌의 출판물을 필사적으로 피해다녔다.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 쓰길래 라는 심술궂은 궁금증과, 그런 기회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나 주어지는 거라는 자포자기가 고르지 않게 섞여 있는 질투심을 숨기느라, 어차피 그런 건 읽을 가치가 없는 글일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니까 당시 나에게 청소년 문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딱히 없었지만,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속으로는 부러워서 죽으려고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산청소년문학상(소설부문 동상)을 타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누가 내게 청소년 문학에 대한 의견을 물어볼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 의견도 그새 바뀌어 있었다. 청소년이 쓰는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 문학상의 세계로 구축되어 있으며, 그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 그때 나의 생각이었다. 대산청소년문학상 캠프에 처음 참가하면서부터 문예특기자 전형을 전문적으로 준비하게 해 주는 학원과 과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연히 강원도 철원에 사는 나로선 그런 것들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이 대회들은 나에게 상을 주니까. 내 가정환경이나 사는 곳이나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배웠는지와는 관계 없이 내 재능만을 보고 상을 주니까.

나는 대산청소년문학상을 두 번(소설부문 동상, 금상) 탔고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시 부문) 대상을 탔다. 이 이력들은 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내 이름 옆에 나란히 적히고, 인터뷰 때 질문으로 나오기도 하며,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나의 내력을 소개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당시에 나는 문장청소년문학상을 운영하는 사이버문학광장의 청소년 전용 서브 사이트 글틴이라는 곳에서도 열심히 활동을 했는데,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시인 선생님께서 대략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등단한 사람들 너무 많이 따라다니지 마라. 등단 늦어진다.”

등단한 사람들과 너무 많이 어울리면 자기도 이미 등단한 거나 마찬가지라 착각하고 등단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청소년 문학상 공모와 백일장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이 이미 등단 예비리그에 속해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만 가능한 진지한 조언이기도 했지만, 등단한 사람과 등단하지 않은 사람을 거의 계급적인 시선에서 나누어 보고 있는 말씀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에 “서련이는 시간 문제지"라고, 나는 곧 등단할 거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전에 하신 말씀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두 가지 말씀 중 하나만 믿는 건 비겁하니까. 나는 스물 일곱살에 등단했다. 혹시 내가 등단 못하는 이유는 이미 등단한 사람들과 너무 많이 어울렸기 때문일까를 7년동안 고민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나는 문예창작 전공도 아니고 해서, 사실은, 글틴 활동을 하던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이 바로 그때까지의 내 인생 가운데 등단한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린 시기였다.

간신히 등단은 했는데 2년간 아무 청탁도 받지 못했다. 2015년 가을에 등단하고 2017년 겨울에 첫 청탁원고를 발표했다. 그마저도 국가지원금 수혜를 함께 받던 다른 작가님이 내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녀주신 덕분이었다. 겨울호가 나올 때가 됐는데 원고료는 언제 입금되는 건지 궁금하다고 메일을 보냈다가 “열심히 작품 발표하여 훌륭한 단행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2015년 시상식 때 첫 책 계약을 구두로 언급했던, 내가 등단한 모지 편집부로부터 말이다. 애초에 내가 어디 발표를 해 봤어야 문예지 원고료는 통상 발간 당월 또는 내월 말일에 입금된다는 걸 알지. 황망한 기분으로 첫 장편 원고에 매진했고 그게 천만다행으로 잘 됐다. 다들 이제부터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열을 냈나 싶어서 머리를 묶고 왔다.


하여 나는 늘 장외자라는 기분을 품고 있었다. 등단할 때 한 편, 2년 만에 같은 지면에 또 한 편, 젊은 작가 지원사업을 통해 발간한 앤솔러지에 한 편, 해서 2018년까지 발표한 단편소설 세 편이 내 이력의 끝이 될 수도 있었다. 등단 제도의 주니어 리그로서의 청소년문학상 시기를 거쳐온 나에게 등단과 문단이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온 신앙의 대상이었는데, 등단하고 아무 청탁도 받지 못한 2년간 그 믿음이 해체되었다.

내가 믿어온 등단과 문단은 완전하고 철저한 실력주의의 세계였고 내 생각에 내 실력은 (적어도 신인 수준에서) 모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 어째서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청소년 문학상에 도전하던 시기에 이미 차고 넘치는 보상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청소년 문학상의 세계가 등단 제도의 예비리그라고 본다면 나는 이미 예비 등단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세계관 안에서는 내가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 믿음의 전제가 잘못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얻어 듣기로 누구는 때마다 선배님들에게, 은사님들에게 안부인사를 드리며 지면을 얻는다던데 (물론 지면을 바라고 금품을 제공하는 등은 아니고 그저 빈 자리를 볼 때 자기를 떠올려 주십사 하는 인사일 것이다) 내겐 그런 식으로 인사를 올릴 선배님도 선생님도 안 계시다는 것, 그건 내 자학과 자존의 양가적인 근거가 됐다. 그런 분이 내게 계셨다면 나는 때맞춘 인사를 드렸을까, 안 드렸을까. 아마 다정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쓰면서 이건 청탁과는 상관 없는 나의 진심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켰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앞으로 그런 분이 생겨도 청탁을 바라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인 것과 별개로.



그렇지만 어쨌거나 등단도 했고 장편문학상도 탔고 장편문학상 수상 이후 1년에 한권 이상 책을 내고 있는 사람이 ‘나는 늘 장외자라는 기분’이라 말하는 것도, 등단에 대한 신앙이 해체되었다 말하는 것도 기만처럼 들릴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기만이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나는 문단의 중앙에서 관심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신인작가로 오인받곤 하며 나조차도 때때로 그렇게 믿는다. 다분히 편의적인 믿음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에 대해 재미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장강명의 “소설가들의 피해의식”) 그런데 나는 장편문학상을 탄 이후 오히려 역시 나의 신앙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어떤 곳에서도 호명받지 못한 건, 역시나, 내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는 응답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정성일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을 즐겨 인용한다.


“난 그 상을 갑자기 받았지요. 이상하지요? 상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상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나에게는 그 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은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정우열 2010 바다출판사)

영화가 영화상과 관계없는 것처럼 문학도 문학상과 관계가 없다(상금이 작가의 생계와 관계있을지언정). 그건 그렇지만 나는 상을 타고 나서 비로소 나의 실력과 내 문학의 방향 대신 제도에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상을 받기 전에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은 작가의 열등감 발사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제도를 통해 제도에 대해 발화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은 모순적인 말이지만, 그렇다.

때때로 상을 받기 전에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했다는 자책을 느낀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무를 수는 없고 사실은 무르고 싶은 속성의 일도 전혀 아니다. 다만 내가 이전에 갖지 못했던 용기를 여기서부터는 어떤 식으로 펼쳐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내게는 독립문예지면을 꾸려가는 이들이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들로 보인다. 누군가의 인정을 구한 다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타난 다음 자 어쩔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걸, 하고 묻는 것처럼 보인다. 나같은 사람이 이 흐름에 보탤 수 있는 힘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흐름에서만큼은 나도 장외자가 아니라는 안도를 나는 거의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물체처럼 의지하고 있다.



함께 던전을 만든 친구들은 내가 장편문학상을 타고 작가로서의 내 입지가 변화하기 전부터 같이 글을 써 오던 이들이다. 던전의 개장을 준비하는 동안에 나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던전과 같은 공간이, 지면이 필요하다는 생각만큼은 나도 친구들도 바꾸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 이것을 만들자고 생각했다기보다 시대가, 시절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굳이 우리가 던전을 만들지 않았어도, 누군가 지금보다 조금 늦을 뿐인 어떤 시기에 비슷한 모양의 물건을 내놓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랬으면 나는 아마, 왜 난 진작 이런 생각 못했지 하면서, 부럽고 분해서 죽으려고 했을 것이다. 이건 거꾸로 말하면 나 스스로 질투를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내가 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신봉해온 어떤 제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실험의 장도 필요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그런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다시 2019년 7월 27일로 돌아가도 서호준한테 전화를 걸 것 같다. 야, 좆같아서 안 되겠어. 우리가 만들자. 기어이 그렇게 말하고 이 모든 고생길을 다시 걷고 말 것 같다.



*위 글은 2020년 3월 22일에 작성되었다.



작가 소개


(사진 ©돌배)



박서련


암흑의 한국문학 카운슬. 던전 운영진. 소설과 일기와 박물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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