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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깁는 일

몸을 깁는 일


-'우리'의 일곱 조각의 새로운 신체 부위



1. 서론, 지금까지 있었던


앞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7편의 시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그동안 정치와 권위로서 간신히 유보되어온 세계는 전위적인 실험과 해체를 통하여 무너졌고,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면 마저 무너뜨려야 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버려진 것들과 나란히 이제는 모두가 삶의 터전을 잃었고, 그나마 유지되는 삶들은 모두 허위로 형상만이 남았다. 더욱이 선이라고 믿은 것들은 위선이었고, 새로운 선의 기준을 찾아다니며 허망한 우리는 현재, 언어의 야생에 맨 몸으로 내던져진 상태이다. 그러한 시점에서 그 폐허를 조사하다가, 담론으로 나눌 수 있는 외부적인 이해와 혼자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며 깊어지는 난해 사이에서 새로운 차원의 시도를 찾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연대와 복구의 현장을 나는 읽을 수 있었고다. 이에 이곳에 기록해둔다.

정오에는 올 수 밖에 없었던 전쟁이 있었고, 오후에는 태양의 표면보다 지구의 땅이 더 붉었으며, 지금은 밤이 오고 있다. 더 이상 멀쩡하지 않는 몸과 기억을 가지게 된 사람들과 함께, 집에 갇혀있던 여자들과 노인과 병자들만이 망한 도시 위에 있다. 두 다리론 버티기 어려워 하나씩 짚고 다니는 사람들의 지팡이, 본래는 버려진 막대기였지만 이제 하나의 신체 부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다음 7편의 시들은 시인들이 우리의 망가진 몸을 위해 찾아낸 적합한 막대기들이다.



2. 두 다리가 되는


첫 번째로 소개할 시는 독립잡지 『더 멀리』 12호에 실린 양안다「클로즈드 서클댄스」이다. 시 속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복된다. 영화를 보고 있던 시선의 방향은 영화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며, 영화 속 내용이 결국 당사자들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앞으로 있을 서사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어떤 돌고 도는 원의 범주가 되어 마치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춤으로 나타나는데, 그 속에는 여자들만이 속하며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남자가 죽었다가 살아서 돌아오기까지 하지만 아무도 그를 반가지 않았고, 그것은 남자의 죽음을 설득시켜준다. 그래서 남자는 다시 죽으러 간다.

병 들어도 아무도 아프지 않는 때는 지나 지금은 아픈 것을 아픈 것이 아니라고 했던 위선과 편협한 위로들이 거두어지고 있다. 지난하고 오랜 위선으로 인해 밀어놓았던 고통은 물 밀려오듯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으며 여자들의 원, 서클댄스라고 이름 지은 연대는 아픔으로 팽팽하게 차올라있다. 몇몇이 떠나거나 사라져도 줄어들지 않는 ‘우리’는 흘려내고 닦아내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커다란 상처의 형질을 가지고 있다. 화자는 어떠한 생생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자신과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복되어가는 상황에서 참여하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며 그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끝내 비가 그치듯 현상처럼 소멸해버린다. 평론가 윤지영은 시인은 동일성을 가진 안정된 존재가 아니라 시를 생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해나가는 과정 중의 주체로, 텍스트 내의 ‘나’는 텍스트의 효과로서 일시적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상(像)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클로즈드 서클댄스」의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나’는 다시 죽으러 가는 남자와 함께 현상으로 떠나며, 물속에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여자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생생히 ‘상을 맺음’으로써 하나의 연대적 주체를 살아남게 한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시는 『문학3』 3호에 실린 하혜희 「미래관」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바깥에서 투사할 무엇인가를 찾던 때를 지나 보들레르의 시 ‘썩은 송장’의 마지막 구절인 ‘썩어서 사라진 내 애정들의 모습과 거룩한 본질은 내가 간직해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영혼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과, 유원지의 풍선처럼 하늘로 쉽게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키스를 마구 퍼부어 댈 구더기떼들을 어느 때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미래관」은 영혼과 같은 부류의 마음과 조상의 실체를 마지막이라는 선언을 통해 고발하고, 가라앉은 바다로부터 꺼내려한다. 마음의 종말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하여 종말에 대한 선언으로 끝이 나는 이 시에서 선언이란 언어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절실한 행위로 나타난다. 관념화되어버린 마음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시선, 그리고 그 불안정함 때문에 마을 하나를 안개처럼 채워버린 밝혀지지 않은 그 무성한 소문을, 화자는 선언을 통해 밝히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미래관」에 등장하는 주검, 또는 조상에 대한 화자의 시선은 롤랑바르트가 시선에 대해 말한 바가 있듯(“시선은 항상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찾는다. 그것은 불안한 기호이다. 기호로서는 유별난 역동성이며, 그 힘은 기호를 범람한다.”) 불안한 시선에 해당하며 그것은 기존의 기호를 범람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낸다.

그 과정은 프랑시스 퐁주가 모든 사물을 미지의 것으로 간주하던 방식에서 출발한 듯 보이지만 닿고자하는 곳은 매우 다르다. 시에 등장하는 조상은 단 한 번도 사람들의 눈으로 발각된 적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하지만 바다에 조상이 떠밀려왔다는 소문을 듣고 조상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수많은 입으로 인해 수많은 오해가 달라붙어가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시선 속에 갇혀간다. 이에 화자는 우리가 실체를 유보하고 떠나왔던 영혼의 형상, 즉 마음의 작동을 꺼내 바다에 떠올랐다던 조상이 ‘건져져 마르는 것을 분명히 보고, 연기 오르고 바지선 움직이고 이 해변의 끝까지 입으로부터 가슴팍까지 우리를 쪼개어놓는 소리’를 듣자고 말하며, 마음에 대해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의지를 실체 없이 소문만 무성한, 아무 것도 없는 폐허 위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디딤돌을 찾는 재구축의 과정인 것이며 한 편으로는 나아가기 위함으로 생각했다. 시인은 나아감은 불가결한 일이며 더 이상 관찰자의 시점에서 마음을 서술하지 않고 마치 오래된 냉동식품 같은 내면을 끌어내 해동시키는 행동을 통해 모호해진 세계를 하나씩 밝히고자, 어두운 해변에 등대라는 구조를 지으려한다.


양안다의 「클로즈드 서클댄스」와 하혜희의 「미래관」을 두 다리가 되는 시로 명한 까닭은 더 이상 제대로 서있을 수 없게 된 두 다리를 대신할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구조물의 재료는 그동안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겼거나, 이전의 자본주의적 구조에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가담함으로 그러한 취급을 재생산하여 쓸모없게 만들어온 것들, 바로 여성과 내면의 생명성이다. 그것은 무너진 우리를 지금 서있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두 다리의 역할을 부탁하는 바이다.



3. 세 개의 팔이 되는


두 다리로 서게 된 우리는 과연 어디에 닿을 수 있으며 무엇을 붙잡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아직 팔이 없다. 다음 소개할 세 편의 시는 세 개의 팔이 되어 나아감을 도와줄 시들이다. 먼저,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시에 접근한다면 모두가 삶의 터전을 잃는 도시의 문제에서 또 다른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앞세운 독립잡지 『젤리와 만년필』의 창간호에 실린 김보민「간호사 K의 교대 근무」이다.

「간호사 K의 교대 근무」는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진행된다. 어둠 속에서 실체화되지 않은 채 여러 입들이 말을 하고 있으며, 이 시에서의 간호사는 분열된 채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간호사라는 이름을 빌린 새로운 지점을 형성해낸다.(“주체는 단일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특정 발화가 만들어내는 수행적인 효과를 이르는 이름이다. 다시 말해 주체는 시적 언술을 산출하는 실체가 아니라 이 언술들의 구조화된 장에서 생겨나는 말하는 것으로 가정된 어떤 지점이다.”/권혁웅) 이러한 간호사의 지점은 비단 피상적인 상처를 지닌 자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현 상황으로 응집시켜 신경증과 상처의 진실을 확인하고 죽은 흉터딱지를 떼어냄으로 새로운 살이 돋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간호사 K의 교대 근무」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생생히 목도해온 희생자이자 고발자이며 치료하는 사람의 팔이다.


두 번째 소개할 시는 『악스트』-2017.9/10에 실린 김은주「유령의 미래」이다. 화자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육체를 깁는 마음’으로 유령이 되었고 말한다. 더 이상 ‘심장의 무게’나 ‘복제되기 전날의 꿈’에 기대지 않고 ‘비밀 중력’과 ‘멸종의 방식’을 믿으며 깨어지고 가벼워지며 자신의 망가진 육체를 자신의 힘으로 기워가기 위해 제2의 육체를 가진 자가 되어 ‘검은 물이 질질 새는 지구’, 이전의 육체를 떠난 것이다. 이는 하혜희의 「미래관」에서 “미래관 없음”이라는 단언과 대비되어 보이지만 그것은 표면일 뿐, 지향점은 단호하고 분명하다.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알며,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들을 새로 짓고 이름 지어야 할 지금의 폐허 상태에서 그동안 어떤 뚜렷한 형체와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아니라고 외면되어온 진실의 재료들을 다시 호명하여 ‘유령의 미래’는 깨어져 조각난 육체를 깁고, 「미래관」은 조상, 또는 마음을 건져 불안한 미래를 현화시키려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령의 미래」는 벌거벗은 것보다 더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육체를 꿰매 만들어주고 있는 가장 정교하고 따뜻한 손인 것이다.


세 번째의 시는 『시작2017』 가을호에 실린 한인준「회전」이다. 「회전」에서는 마치 회전문을 돌리듯 ‘사람처럼’과 ‘잔디밭’과 ‘내가 일어난 자리의 따뜻함’과 같은 ‘현실’을 돌리며 마침내는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지만 다시 집 앞에 서있게 됨을 통해 화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전의 손잡이들이 이전의 굴레로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단단하게 묶여버린 것처럼 밀려난 이제 우리는 이전이 아닌 다음의 손잡이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전」은 밀고 나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전에 일상적이고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풍경에 대한 환상을 재생산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밀고 나가 새로운 방 또는 밖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손잡이를 찾고 잡을 세 번째 팔인 것이다. 이는 시대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우리의 세 번째 팔로, 시선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보다는 육체적이고 어떠한 문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4. 심장이 되어버린


『21세기문학』 2017-여름 호에 실린 유계영 「맛」은 지금 우리가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의 형질을 보여주고 있다. 「맛」은 ‘화면 속’과 ‘태어나보니 사과 속인’ 스투디움적 설정에서 ‘여배우의 희게 빛나는 치아들 중 하나만 누런 송곳니’라는 푼크툼을 만들어낸다. 태어나보니 사과 속이였던 사과벌레는 뜻하지 않은 우연성*을 통해 그동안 너무 많은 경이와 역동성이라는 책임을 지게 되어 망가져버린 생명을 유계영 시인의 방식으로 재정립하고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희게 빛나는 치아들’의 세계 속에서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고 웃지도 않’은, ‘누런 송곳니’의 우연적이고 거짓된 상상을 거둬내며 실체를 찌르는 이미지("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 번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이라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푼크툼은 또한 찔린 자국이고, 작은 구멍이며, 조그만 얼룩이고, 작게 베인 상처이며ㅡ또 주사위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사진 안에서 나를 찌르는(뿐만 아니라 나에게 상처를 주고 완력을 쓰는) 그 우연이다."/롤랑 바르트)를 우리는 발견해낼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지금 우리가 몸으로 가지고 있는 것, 심장과 같은 생명의 근원에 진실을 조명해준다.

* “새가 내게 온 일의 ‘뜻하지 않음’은 생명 탄생의 우연성과 조응한다. 어떤 생명의 탄생도 뜻하지 않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새는 뜻하지 않게 내게 오는데, 그 뜻하지 않음은 창밖의 무례한 아침이나 다가올 키스같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우연에 속한다. 이 시에서 명쾌한 것은 새가 왔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나는 새를 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새를 맞아들이고 거둬들였다는 점에서 생명에의 환대를 실천한 셈이다.” (장석주, 『탑클래스 』 2016년 10월호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유계영 <에그>’ 중에서)



5. 얼굴이 되어버린


마지막으로, 우리는 살아남은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얼굴은 우리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살아남았고 앞으로 어떤 이목구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총체이다. 그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문학동네 2017』 여름 호에 실린 박소란「개를 찾는 사람」을 찾아왔다. 「개를 찾는 사람」에서 우리는 ‘개의 얼굴’이 되어버렸고, ‘개의 얼굴’로 신에게 기도한다. 개는 맹목적인 사랑의 상징이다. 인간의 애정을 바란 대가로 야생의 유전적 형질을 버리고, 사랑하는 주인으로부터 버려져도 다시 인간의 애정을 바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개는 별안간 사라져버린다.

사라진 개는 개를 찾는 사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버리고, ‘고작 사람을 버리고’ 개가 되게 한다. 개는 끝내 돌아오지 않지만, 그 돌아오지 않음으로 보이지 않는 개가 되어 개를 찾는 사람에게 돌아오고, 그 사람도 함께 사라지게 한다. 우리는 개와 같은 애정의 대상을 잃고, 사라진 애정의 대상을 그리워하며 그 애정의 대상을 닮고자하는 모든 이목구비를 잃을 만큼 절실하다. 우리가 사랑했던 ‘개의 보드라운 털과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 같은 것’에 대한 그리움과 필요가 남았고, 다른 것은 오직 개의 얼굴로 드리는, 신에 대한 기도만이 남아있다. 「개를 찾는 사람」, 그 표정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남았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6. 소감, 기워진 '우리'의 몸으로


침범 당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던 우리는 친절하게 초대하고 초대하지 않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결국 다시 실패했다. 모두가 망가져버린 지금, 다시 모두가 신비롭지 않고 다가서기 쉬워졌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물려받지 않은 새로운 두 개의 다리와 세 개의 팔, 심장과 얼굴 또는 표정을 가지게 되었다. 높게 쌓아올렸던 건축물들은 전부 무너져 내려 동일한 지평선 위에 부서진 채로 남아있으며 이 새로운 신체 부위들은 그 잔해 속에서 찾아낸, 높은 층에 서있을 때는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었던 것들이다. 그런 소외되고, 시대에서 버려졌던 약자와 소수자와 병자들의 세상이 사실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높이임을 알며, 알아야 한다.

바벨탑이 붕괴했던 사건을 다시 꺼내본다. 하나의 언어만이 통용되던 때에 인간의 위상은 높아졌고, 마침내 신의 권능과 맞닿을 만한 높이까지 탑을 쌓아올리자 탑은 무너졌다. 그리고 언어는 뿔뿔이 흩어져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정오에는 신을 자처한 듯 같은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숱한 혁명과 전쟁이 있었다. 밤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은 수많은 바벨탑이 무너져 내린 상태이며, 몇몇 살아남은 시인들은 망가진 언어들의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생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중에 뿌려진 뜨거운 피들로 데워졌던 땅은 차갑게 식어있고 사람들의 생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사신처럼 우리의 귀 옆에 서있는 공기는 끊임없이 죽음을 속삭이고 있다. 아무 것도 우리는 걸치고 있지 않으며, 부서진 신체 조각들을 모아 겨우 몸을 찾아낸 시점이다.


이 7편의 시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개인적이지만 사태와 연관된 많은 일들을 겪었다.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가면을 벗고 싸우는 성소수자들, 치료를 유보했던 상처에 손을 집어넣고 끔찍하게 신음하며 기억을 고발하는 성폭행 피해자들. 그리고 여자들은 자신의 자궁 속으로 몰래 숨어들어온 권위적인 남성을 꺼내 침착하게 하나씩 죽였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사회구조로부터 추방되어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호명하며 원래 있던 세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도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회와 자본주의 구조의 척력으로부터 밀려나버리고 이름을 잃은 것들. 두 눈을 파랗게 뜨고 있는데도 부정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보았다. 우리의 절벽 같은 가난함으로 인해 어떤 물질적인 도움도 정신적인 위로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불편함과 고통이 내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도덕률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며 조심스럽게 기록해왔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된, 나의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우리로 이름을 호명해주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잊어버리지 않고 나도 그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존재를 부정할 자격은 어떤 존재에게도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첨부한 시들과 더불어 72번 반복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전에 공동체적인 권위로부터 왜곡 당하고 남용되었던 이름이 아니다. 개인성**에서 비롯된 우리이다. 우리는 각자의 새로운 ‘우리’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 폭력의 기미를 들이지 않기 위해 거리는 서로 손 끝이 겨우 닿을까 말까한 정도를 유지하며 함께 원을 만들어나가며 다시 우리를 재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7편의 시들을 엮어가며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연대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 “그저 세월에 따라 자라난 것이 아니라, 호기롭게 삶을 살아온 부단히 복잡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감각하고 냉혹하며 약탈만을 일삼는 동물 이하의 존재가 아닐뿐더러, 불가사의하게 스스로 인식하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자동 기계 인형도 아닙니다. 저는 자연스럽고 기적적으로 자라난 온전한 한 인간, 곧 무한한 감정을 지닌 한 개인입니다.”이 시사하는 개인성에서 비롯한다. (E.E.커밍스 저, 쏜살문고,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 본문 중에서)



7. 선정 첨부


클로즈드 서클댄스 / 양안다

발표지면 : 더 멀리

발행일 : 2017년 2월 28일


언제부터인지 방안에 비가 쏟아졌다 누군가가 폭우가 왔다고 말했는데 다른 이는 장마라고 했다

슬래셔와 로맨스, 두 장르의 영화를 동시에 보는 일 한 쪽에선 사람들이 죽어 가고 다른 쪽에선 사랑을 나누는데 꼭 우리들 이야기 같았다 우리들은 영화를 따라 쪽지에 병의 이력을 줄줄이 적었다 나, 사실 꾀병이었구나 너는 그렇게나 아팠어? 모두의 쪽지를 돌려보고 나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거나 수신자 없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따라왔다

때때로 우리들이 전위적인 삶에 대해 떠드는 동안 방안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왜 나만 잔뜩 젖어버린 거야? 누군가가 울먹이는데 있잖아 내 어깨도 이만큼이나 젖어 버렸어, 그런 게 자랑이나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주술처럼 중얼거리고

어젯밤엔 누가 사라졌지? 누군가는 죽어서 사라지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진 이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왜 줄어들지 않는 걸까

그거 알아? 식물에게도 미각이 있대 그래서 난 너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 고민했어, 숲 속에서 그가 내게 속삭였을 때 그렇다면 장마와 폭우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 걸까요, 나는 벗겨낸 나무껍질로 육각형이나 오리 모양 따위를 만들었다

밤이 되면 우리들은 해변에서 그날 본 영화 속 장면을 흉내 내었다, 그를 사랑해서 그랬어요 그래서 그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낸 거에요 여자가 여자의 뺨을 때린다 다음 장면은 여자가 여자의 옷을 벗겨내고 쪽가위로 귓바퀴와 유두를 순서대로 잘라내는 장면

온몸이 아프고 가슴이 아프고 졸려요, 이런 증상을 찾아봤었어 그런데 병명이나 치료법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혼자 춤만 췄어,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표독스럽게 말했다 잘 봐요 이 해변에선 비가 내리지 않고 우리들의 방에만 비가 내린다고요 저기에 반짝이는 모래들이 있는데 우리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한쪽 유두가 잘린 여자가 물속에 뛰어든다 사람들이 여자를 따라 뛰어든다 모두 헤엄을 친다 그것이 춤이라는 듯이 모두 손에 손잡고, 원을 그리면서, 그와 나는 뒤늦게 뛰어들어 무리에 합류한다 헤엄을 친다 춤을 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이었지?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들은 방으로 돌아가고 비를 맞는데 왜 나만 이 사실을 궁금해하는 거야? 우리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키스하는 도중에 연인을 죽이는 영화를 봤었나 이야기가 섞이고 섞이다 보면 어떤 장면이 원본인지 헷갈리는데 언젠가 너, 내 복부를 쑤신 적 있지 않았어? 그가 물었을 때 다시 그거, 대사예요? 되묻기만 하고

해변에서 모래가 반짝였다 한 줌의 모래에서 그의 체취가 맡아졌다 그는 그것이 소금결정이라고 말했었다 모래를 씹으면 물맛이 났다 그런데 물이 어떤 맛이었지?

어떤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잊히지 않았다, 죽었던 남자가 살아 돌아온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죽기 위해 떠난다 비가 그친다



미래관 / 하혜희

발표지면 : 문학3

발행일 : 2017년 9월 25일


마음에 대해서는 이번뿐이다

우리가 해변에 딸린 소항구에서 조상을 본 이야기다


많은 관광객들이 상점가에서 항구로 몰려들었다

항구에는 낚싯배 따위, 그리 볼 것도 갈 일도 없는데

조상이 떠올랐다는 이야기에

아마도 밤사이 내려왔으리라고 근처의 강에 대해

난간에 기대 떠들었다 식당 주인은


마음에 대해서는 이번뿐이다

마음의 목이 있다면 마음의 칼로 눌러 두 동강을 낼 텐데


마음의 온몸이 마음의 물로 젖는다면, 다시

떠오른 조상을 말하자면

무서운 것은 입이었다 눈보다는

입이 더 무서웠다 조상의 입 속에서

마음의 연기가 형형색색으로 나오는 듯

마음의 공중으로, 모래사장, 폭죽보다, 눈보다 나은

마음의 배, 마음의 항구, 마음의 관광, 마음 천국이

무서워서 너무 오래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가망이 없고, 다시

바다에서, 바지선 그림자에서, 그림자 옆 부표에서, 등대에서, 조상의 입 속으로


저것은, 잘못 짜인 저 얼굴은 구경은

어디에 놓였다가 왜 지금 조사받는가

왜 어제 저 조상을 보았다고 생각하는가?

왜 어제 보았다고, 저 조상이 우리의 저녁 물놀이 멀지 않은 바다에서 일했다고

별 이유도 없이 생각하는가?


튜브를 붙들고 떠내려갔다 밀려오던 우리

특히 아이들이 있는 튜브의 안쪽과

아이들이 없는 튜브의 바깥쪽으로 추측해보건대

우리는 나중에 마음의 지옥에 간다

조상이 항구에 떠올랐던 것과 같이

파라솔이나 방파제 등대 요트 휴일의 보이지 않는 발, 어둠보다 더 나은

안식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떠올랐다고 하는 소문과 같이

무섭고 가망이 없는 일에 결국 빠져들고

천국도 마찬가지로 버글버글하고

모래보다 상점보다 밝게

이쪽으로 발사되는 대낮 착시에 이끌려

눈에서 머리카락으로 우리를 찢어발기는 사이렌

그것을 따라나서는 우리의 마음의 행진은


이번뿐이다 정말이지 이번뿐

눈보다 어두운 입에 대해

마음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고 우리는 조상의 눈 속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이 이 해변의 법이라고

경고했고, 분명히 가지 말라 했고


경악으로부터 상점들 속으로 다시, 안도와 이상한 실망과 돌아온 휴가가 끝나고 또

이러저러한 질서 정연한 공황 가운데 무섭고 가망이 없는 와중에

주검과 조상을 분간치 못하는 우리가 풀려나, 아니면 더 많이, 다시

어째서 눈보다 입이 마음을 끌었는지 돌이켜보면

죽음을 찾은 듯이 굴었던 미래관 때문

우리는 돌다가 갈라지기를 연이을 것이다

이야기를 잊고

확인하러 가자 우리의 미래관 없음

마음의 작동을, 건져져 마르는 것을 분명히

보고, 연기 오르고 바지선 움직이고 이 해변의 끝까지

입으로부터 가슴팍까지 우리를 쪼개어놓는 소리가

매해 소용돌이로 데려감에도

마음에 대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이번이 마지막이다



간호사 K의 교대 근무 / 김보민

발표지면 : 젤리와 만년필

발행일 : 2017년 7월 31일


이브닝

웃으면 웃는다고, 죽을래?

울면 운다고, 죽을래?

아무것도 하지 마, 제발

너 아무것도 안 하니? 제발 좀

아가씨는 우리 딸 같으니까

발목이 너덜너덜할 때까지 당신의 반찬 뚜껑을 열고

저희 아저씨는 오늘 가셔도 살려 주지 마세요

평생 노름이나 하고 계집애 엉덩이나 주무르던 양반이니까

죽고 싶어요, 오늘 자낙스를 열일곱 알 먹었는데요

퇴근까지는 앞으로 십 분

잠이 오지 않아요 수면제를 주세요

집에 가면

장군 보살을 모시는 계단을 지난다

불을 켠 장례식장 옆에 누워, 죽을래?

장수하늘소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

곡소리에 깨고

당신들은 영영 잠들어라


나이트

우리 마누라가, 이상해요, 와서, 봐주세요

DNR이지?

음……네

한 입 겨우 베어 문 햄버거를 내려놓고 마스크를 쓴다

이럴 때 무슨 표정을 지어야 좋은지 몰라서

식어가는 흉부에 심전도를 붙인다 리드는 고장

젠장 할 병원, 이런 것 좀 진작에 고치지

아직 심장이 뛰는데요

야, 당직의란 새끼가 저러고 가버린다

어쩌라고?

플랫, 플랫, 제발, 제발, 제발

아가씨들, 지금, 뭐하는, 짓이요?

플랫이죠?

여보, 이렇게 가냐? 나 이제 밥은 누가 해주냐?

엉엉엉

누가 죽었나봐, 아가씨, 누가 죽었어요?

세상에, 제발 들어가서 더 주무세요


시체를 수습하고 손을 씻는다 짜게 식은

감자튀김을 입에 구겨 넣는다



유령의 미래 / 김은주

발표지면 : Axt

발행일 : 2017년 9월 1일


심장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어

어디론가 조금씩 이동하고 있어

얼싸안고 감정을 나누던 물체들

지금부터 나를 모르기로 해

똑같은 얼굴로 변해가는 구경꾼들

검은 물이 질질 새는 지구

나를 던져 깨뜨리고 있어

악몽입니까 선몽입니까

복제되기 전날의 꿈

십자가를 풀어 주머니를 짰던 전생

베껴온 밤과 낮을 번갈아 틀던 관성

어린 천사는 복원되길 원하지 않았어

끊임없이 풍선을 불어대는 금속들

0부터 1까지 천천히 세며 참는 숨

비밀 중력은 산산조각을 끌어당기고

반짝반짝 닦이는 하나와 한 쌍

육체를 깁는 마음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녹아 흐르는 기도와 필요한 소음에 대해

멸종의 방식으로, 아멘.



회전 / 한인준

발표지면 : 시작

발행일 : 2017년 9월 9일


외출하다가


사람처럼을 손잡이만큼 잡아버렸습니다

금속과 재질과 이상한


손의 돌리며


갑자기 잔디밭까지 돌리면


초록색 같은 내가 옆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풀잎과 촉감과 이상한


돗자리는 그래도 하늘같이 펼쳐지니까


불어오는 밤바람까지 옆으로 돌리면


어서 집으로 가야 합니다

듣고 먹고 졸고 읽다가


내가 일어난 자리의 따뜻함을 순식간에 돌리며

정리했었고


집으로 가는 길목을 돌리면


흐트러진 이불 옆에서 깨어납니다


그날의 곁에서 떠다니는 유람선들과 그날의 곁을 스쳐가는 이상한


자전거들은 그래도 하늘같이 펼쳐지니까


어떤 하루를 손잡이만큼 잡아버렸습니다

마음을 돌리면


어느새 나는 다시 집 앞에 서 있고

금속과 재질과 이상한


현실의 돌리며


내가 자꾸 나가 있었습니다



맛 / 유계영

발표지면 : 21세기문학

발행일 : 2017년 5월 25일


핥고 싶냐고

화면 속 여배우의 희게 빛나는 치아들 중

하나만 누런 송곳니


탁자 위에는 사과벌레가 축축한 이불 밖으로 종아리를 뻗는다

태어나 보니 사과 속인 것


잠의 호두 껍데기를 부수고 깨어나 오줌을 눈 다음

손까지 씻고 다시 잠드는 사람처럼

꿈이 기성품*인 것


4인 가구의 칫솔이 네 가지 색깔이듯

1인 가구의 칫솔도 어제와 침 섞지 않는데

통조림 속에서 미래의 혀가

미래에는 미래의 맛이 있다고


나는 벼룩을 입에 문 복잡한 심정으로

그것을 기다린다


마침내 사과를 탈출한 사과벌레는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조금 갸웃거리다가 다시 사과 속으로

파고들었다


* 아름다운 오월 / 크리스 마르케



개를 찾는 사람 / 박소란

발표지면 : 문학동네

발행일 : 2017년 6월 13일


누구에게나 개는 있습니다

어떤 개는 별안간 사라집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개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개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라진 개를 잊지 못합니다 잊지 못해 병이 들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을 버리고, 고작

사람을


개의 보드라운 털과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 같은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차츰 개를 닮아갑니다

개처럼 곤히 웅크리거나 또 금세 몸을 일으켜 컹컹 짖곤 합니다

컹컹 울곤 합니다

그 모습을 알아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개는 어디에 있나요 잃어버린 개를 찾는 사람은

전봇대에 나붙은 전단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칠흑의 혀를 빼문 골목을 서성이다 맥없이 주저앉곤 합니다

다시 네 발로 터덜터덜 돌아와 눕곤 합니다


영원을 생각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개로 인해

신은 존재합니다

당신은 왜 개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개의 얼굴로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은 사람 곁으로 앙상한 뼈다귀를 입에 문 사나이가 다가와 넌지시 속삭입니다

개는 돌아올 것입니다 개를 찾는 사람에게로

어느 날 문득 예의 희고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안녕


보이지 않는 개가 한 사람을 유유히 끌고 갑니다


어떤 사람은 별안간 사라집니다




작가 소개


한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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