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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벌레먹기 (1)

2019년 7월 18일 업데이트됨




그 당시, 나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은 계속해서 인생에 축적되었다. 수명은 모래시계처럼 자꾸 아래로 미끄러졌다. 발이 푹 빠질 만큼 쌓인 아래의 시간에서 절망을 곱씹으며 허우적거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육십 개 정도의 이력서를 넣었으나, 번번이 탈락 전화를 받는 것 말고는 기다릴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여부조차 알려주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결과를 전해주지 않는 회사를 증오했지만, 점점 알려주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두 눈으로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졌고, 무엇보다 그런 고통에 익숙해지고 있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느껴졌으니까. 당시의 나는 어떤 악의도 없이 무수한 사람들에게로 일제히 보내졌을 결과 통보에 무한한 악의를 추리해 느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여름은 창밖으로 성큼 다가오고, 하수구 구멍으로 썩은 내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부패의 계절이 도래하고 있을 때, 썩지도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생물인 내가 그 계절의 무엇보다 더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쌀에서 군내가 났고, 말라죽은 화분 사이로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삶에 있어 불가피한 것이라면, 어째서 인간은 선택 없이 태어나는 무방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까. 드러누워 바라보니 천장의 곰팡이 자국이 꼭 은하수 같기도 하다. 불을 켜야만 볼 수 있는 은하수라는 점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벌레를 먹어볼까,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자기 선택 하의 안락사나 약물 자살이 부자들이나, 선택된 소수들만을 위한 특권으로 자리 잡으면서 죽지 못하는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삶을 비관한 허름한 행색의 젊은이들, 또는 옷장만 그득한 가난한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너무 큰 고통을 지불하며 삶을 포기했다. 그들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어떤 벌레’가 있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벌레는 남녀불문, 이십 대에서 삼십 대 후반까지의 육체에 기생해 살면서 특유의 마취 성분이 든 체액을 온몸에 뿌려댔고, 숙주가 된 인간은 가벼운 복통 외에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내장을 다 파먹히고 나서야 죽을 수 있는데, 이미 마취액에 너덜해진 뼈와 피부는 더 이상 어떤 아픔이나 증상을 뇌에 전하는 기능을 포기하고 만다. 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벌레의 확산을 막고, 방역을 조치했으나 벌레는 숙주의 죽음과 동시에 남은 체액을 모두 분비해 육체를 소멸시키는 전대미문의 생태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떤 단서도 남지 않았고, 그에 따른 연구도 진척을 보일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청년층을 향한 벌레의 확산을 막아보려 하긴 하였으나, 그들의 복지가 손을 뻗을 수 있는 영역에는 이미 가벼운 복통을 대수롭게 여기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가벼운 배앓이 따위로 질병 신고를 해 오는 사람도 없었기에 대책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따름이었다. 배앓이 따위가 대수로운 일이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대단한 일이 될 정도로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이며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마, 그들은 벌레를 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안락한 곳에, 또는 무지한 곳에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회사 책상에서 죽었고, 원룸 구석에서 죽었다. 컵라면을 키보드에 쏟은 채, 투 플러스 원 음료수를 책상 가득 쓰러뜨린 채, 뼈가 다 휘어버린 빨래 건조대에 옷을 잔뜩 걸어놓은 채, 바닥으로 고꾸라져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그렇게.

문제의 답을 찍어 맞추듯 시행한 방역 정책이 조금씩 차도를 보이며 사망자가 줄어들었을 때쯤, 인터넷상으로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저기 어디, 서울 기준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반쯤 걸리는 곳에는 (모방범죄를 유발한다는 빈축을 사지 않기 위해 정확한 지명을 공개하지 않겠다) 벌레를 잔뜩 기르는 노인이 살고 있다고. 수경재배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몸과 유사한 양식 틀을 만들어 두고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의 내장을 먹여가며 키우는데 자살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가끔 팔아주기도 한다더라, 하고. 한 마리를 먹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여러 마리를 동시에 삼키고, 수면제를 먹고 자면 된다더라, 했다. 자칭 의대생 또는 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담론이 과연 인체에 성립할 수 있는 사실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일 때도 있었다. 아무튼, 자기혐오와 인간불신을 배경 삼아 죽음과 절망을 예찬하는 커뮤니티 안에서 그는 가끔 메시아로 불리기도 했고, 각이 또렷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시니컬한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이 청소부가 되기도 했다. 새벽이면 커뮤니티에는 어김없이 자살을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용기가 안 난다, 함께 그를 찾아갈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글이 게시되었고, 실패 후기를 세세하게 썼다가 운영자로부터 계정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죽고 싶다는 열망이, 삶을 향한 의지보다 깊은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때때로 무리 지어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게시글의 최종 작성 일자로 그들의 생사를 미루어 볼 따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때 수아를 알게 되었다.

수아는 ’토끼아나‘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던 오래된 유저였다. 왜 그런 닉네임을 짓게 되었느냐 하니, 무심한 목소리로 토끼와 이구아나를 키우고 있을 때 지은 닉네임이라고 대답해왔다. 그럼 지금은? 하니 대답이 없는 걸로 보아선 아마도 둘 다 죽거나 없어진 모양이다. 버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동물 버리는 관상이 따로 있나 싶긴 하지만 수아가 그랬다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녀는 낙타처럼 긴 속눈썹을, 주근깨가 피어난 뺨 위로 가지런히 늘어뜨리고 있는 모범생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만났다. 나는 트레이닝 복을 아래위로 입었고, 그녀는 패딩과 블라우스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차림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딱 네 대밖에 없었고, 배차 간격도 터무니없이 길었으므로 나는 식사부터 하고 표를 구입하는 편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수아가 말했다.

“제가 채식해서요. ”

“네?”

“아무거나 못 먹는데.”

왜 하는데요? 채식. 물음에 답하려 올려다보는 수아의 눈빛에 말할 수 없는 귀찮음과 피곤함이 역력했기에 나는 대답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네, 고맙네요.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식당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신경질이 났다. 아니, 죽으러 갈 거라면서 그깟 채식 좀 안 하면 죽나? 아니, 죽으러 갈 거긴 하지만. 아무튼. 한 끼 정도도 못 맞추나? 불편한 표정을 아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그녀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나는 다 죽을 마당에 수아가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거리에 채식을 옵션으로 식사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은 단 한 군데도 없었고, 걷다 지친 우리는 결국 맥도날드에서 각각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조촐한 결론을 짓게 되었다. 물론 그 ’원하는 음식‘이라는 영역 안에 수아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겠지만, 그런 것을 제때 눈치채거나 배려하지 못할 만큼 배가 고팠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키오스크로 빅맥 세트를 두 개 주문한 후, 일인분의 감자튀김을 그녀에게 건넸다. 커피를 마시던 그녀는 천천히 튀김을 먹었으며, 역시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맥도날드에는 무척 사람이 많았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책을 펴두고 공부에 몰두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음 안에 우리 둘만이 무성영화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한마디라도 붙여 볼까, 고민하는 사이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나는 죽음에 대한 그녀의 결의가 혹시나 옅어졌을까 두려워졌다. 그녀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죽는 것만은 계획에 없었기에 무엇보다 싫었다. 약속 시간을 정하려 받아 놓았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볼까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을 때 마침 그녀가 돌아왔고, 나는 조금 덜 외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왜 웃어요?”

“별 이유 없는데요. ”

“네, 그럼. ”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냅킨으로 물기 묻은 손을 닦은 뒤, 화장실에 가기 전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튀김을 먹었다. 매장 안의 분주함 때문에 그녀의 느린 몸짓이 더욱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동물원의 동물을 관람하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이들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수아가 말했다. 왜 죽으려고 하세요.

알아서 뭐하시게요,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녀가 슬며시 웃었다. 그냥 취업도 안 되고, 친구도 없고, 알바는 하기 싫고, 부모님한테도 미안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네요. 그간 겪어온 고통이 함축된 간결한 대답을 몇 번씩이나 끊어서 말하면서 나는, 사람이 죽고 싶어하는 이유는 참 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취업이 안 돼서, 수능을 망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나한테만 너무 뭐라고 하니까. 그런 이유들 안에 잔뜩 얽힌 눈물과 권태와 비참함은 어떤 말로도 간략하게 설명될 수 없다는 걸. 태어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의 단순함처럼, 죽음을 결심하는 마음은 누군가의 앞에서 어떤 언어와 거짓말을 곁들여 설명한들 특별하거나 독특할 수 없다는 걸. 입에 젖은 솜을 잔뜩 물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이유와 숱한 밤들은 누구에게도 완전한 설명을 할 수 없고, 그저 품은 몸과 함께 사라질 뿐이라는 걸. 조금 울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다 죽자 마음먹은 마당에 이 무슨 신파랴 싶어서 나는 코를 찡그리며 웃는 것으로 대답을 마쳤고, 그녀는 전혀 귀 기울여 듣지 않은 채 쟁반 위의 튀김을 싹 비워냈을 뿐이었다. 허,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참 힘든 이유네요. 수아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랄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잘 참았다. 다 죽는 마당에 우리까지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수아는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병이 깊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었고, 죽기 전에 수아에게 기르던 이구아나를 부탁했다고 한다. 수아는 파충류라면 질색을 했고, 먹이로 조그만 애벌레를 주기도 한다는 말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지만 오직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겸허히, 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과 몸짓이 마치 신앙의 정점에 도달한 성자의 것과 비슷하게 보여 조금 웃었더니 그대로 면박을 들었다. 먼저 물어봤으면 조용히 입 닫고 들으라는 거였다. 먼저 물어본 것은 수아 자신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처럼 그녀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조금 어이가 털렸지만 나는 또 우리가 굳이 죽을 마당에 싸움을 보탤 필요는 없다는 이성적인 사실을 상기해냈고, 비교적 무표정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경청하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조용한 태도에 만족한 듯 그녀는 계속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순순히 이구아나를 맡아 기르는 수아에게 그는 ’참 착하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속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아빠인가, 말하는 거 되게 구리네. 아무튼 그 말 한마디가 수아에게 굉장히 중요한 말이 된 거다. 잘 때도 환청처럼 들리는 그 말은 갈 곳 없는 수아의 마른 삶을 뒤흔들었다. 그를 정말 사랑했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섞어 말하는 그녀의 시간은 여지없이 그 과거에 멈춰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의 구린 말이 얼마나 대단한지 동의를 구하려 말이 길어지는 수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시계를 보았다. 젠장, 한 시간이 더 남았다.

먹성 좋은 이구아나를 키우면서 수아는 파충류가 꼭 곤충을 먹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채를 먹기도 하고, 맞춤으로 제작된 사료를 먹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수아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이구아나를 돌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전해준 이구아나 관련 용품 안에 아직 죽지 않은 생 밀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까무라칠 정도로 놀랐지만, 그것 역시 나름대로 극복해내 먹이로 줄 수 있었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직접 밀웜을 구입해 줄 정도로 애정을 키웠다고. 그때는 토끼를 키우는 일과 파충류를 기르는 일이, 그러니까, 어떤 생명을 기르는 일은 모두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게 느껴져 자주 눈물이 났다고. 당시의 수아는 그에게 돈도 퍼주고, 몸도 퍼주고, 시간도 퍼주면서 그의 반려동물까지 맡아 기르는 일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느껴졌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에게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자신의 삶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고. 삶의 원동력이 좀 이상하다 싶어서 뭐라 첨언을 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많다며 얼른 말을 이어 붙여오길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그녀의 삶과 마음에 이구아나라는 미지의 생물이 완전히 둥지를 틀고 다가섰을 때, 그토록 사랑하는 그와 연락이 두절되었고, 병원에 가도 진작 퇴원하였다는 말뿐, 소식을 알 수 없어 암울한 시간이 찾아왔다고 한다. 절망을 이길 수 없어, 오랜 시간을 술에 취해 있거나, 울면서 보내면서도 잊지 않고 이구아나의 밥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비참했었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밤바다처럼 고요히 일렁였다. 우리가 죽을 계획이 아니었다면 아마 수아의 어깨를 슬며시 쓸어주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수아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감자튀김을 먹을 때처럼, 꾸준하게, 규칙적으로, 느리게. 손가락으로 천천히 튀김을 헤집을 때처럼 말을 고르면서 말이다. 결국 외로움과 절박함, 애타는 마음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가 선택했던 방법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그를 찾아보는 것이었으며, 그 꼬라박은 이백만원이 고스란히 웬 여성의 허리에 손을 얹고 길을 걸어가는 그의 사진으로 되돌아 왔을 때 수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참담한 심정을 느꼈고, 삶을 끝내고자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수아는 눈에 띄게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고 나는 슬슬 차표를 구입하러 터미널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짐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동안, 그녀는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차표를 사고,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수아는 말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긴 속눈썹이 그늘져 눈 밑으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말이 없는 그녀를 몇 번 살피다가 나도 금새 잠이 들었고, 완전히 곯아떨어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비가 내렸고, 빗길에 흔들린 차량이 몇 번 요동쳤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달팽이 집처럼 커다란 패딩을 입은 수아가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시간이 그리 깊지 않았는데도 흐린 날씨로 인해 버스 안은 금새 캄캄해졌다. 불을 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수아를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굳이 고개를 돌려 살펴보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수아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가방조차 제대로 챙겨오지 않아 올려질 것이라곤 없었다. 만약 우리가 죽을 생각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자리를 옮겨 수아의 옆으로 갈 수 있었을까. 뭘 그렇게 보냐면서, 어째서 하릴없이 내리는 비를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있느냐고, 그 안에 무엇이 있냐고, 그 안에 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었을까. 조금 개연성 없고 구질구질하지만,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오지랖을 마구 피우면서.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는 기분만으로 그렇게 해도 된다는 듯이. 버스 창틀에 말라붙은 파리가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지저분하다거나, 덧없다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버스 기사에게 부탁해 차내를 샅샅히 뒤졌으나 지갑은 어디에도 없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흘렸거나, 터미널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건지, 졸지에 교통 카드도 없고 신용 카드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스는 완전히 끊겨 있었고, 택시로 이동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멀고, 비싼 거리라고 지도에서는 설명하고 있었다. 수아는 큰 눈을 깜빡이며 가로등 불빛으로 날아드는 벌레들을 보고 있었다. 벌레 값을 제외하고는 일 원 한 장도 없으니 헛꿈 꾸지 말라고 수아가 말해왔다. 피차 마찬가지인 입장이었다. 터미널은 불필요한 전등을 모두 꺼버리려는 듯, 소등을 시작했고 달리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무턱대고 목적지를 향해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는 별말 없이 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밤의 피부를 헤치면서.

터미널을 벗어나서 십오 분쯤 걸었을까, 사방으로 논밭이 펼쳐졌다. 두 개의 논을 가로지르는 흙길로 걸으면서 나는 밤이란 새삼스럽게 참 깜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밤을 캄캄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언제나 잠들지 않는 사람들이 수천명 쯤은 있을 테고, 때때로 잠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아침까지 술을 팔고, 술을 먹고. 운전을 하거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서울의 밤을 캄캄하다 여긴 적이 있을까. 그런 잠들지 않는 서울의 모습에 활력을 느끼고 상경했지만, 본격적인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 들었던 사람들의 발소리. 원룸 빌라의 복도를 구둣발로 쿵쿵 울리면서 저만치 멀어지던 사람들의 부지런한 발소리를 들으면서, 어디에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자기혐오와 절망감으로 눈물 흘렸던 숱한 아침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밤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어둠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양 계속해서 짙어졌다. 저 너머의 산등성이에 몇 개의 가로등이 켜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일 뿐이었다. 여러 개의 마음이 동시에 차올라 답답하면서도, 쑥 내려가 아예 없어진 것처럼 편해지기를 반복했다. 밤이라는 시간이 담은 어둠이 출렁여 우리 앞으로 울컥 쏟아진 것처럼 어둡고, 그래서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하늘에 별 따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없어도 될 것 같고, 다 죽는 마당에 웬 별을 찾나 싶어서 스스로가 우습다가도 이 나약한 마음이 아직은 인간다움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수아는 두 번쯤 발을 헛디뎌 논두렁에 자빠질 뻔했다. 시골 길을 걷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캄캄한 밤을 보는 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남자와 걷는 것도 난생처음이라고. 이 시간이 조금 자유롭게 느껴진다고. 한 시간쯤 걸은 것 같다. 수아는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만 골라서 엄청나게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말을 참아온 사람처럼.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우뚝 서 있기보다는 차라리 말이 많은 편이 그녀답다고 느껴졌으므로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물론 수다의 대부분은 거북한 주제들이었다. 굳이 대답을 갈구하지 않고 시종일관 수다를 이어가는 수아는 꼭 무대 위에 선 연극배우 같았다. 말한다는 말보다, 지저귄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릴 것이다. 준비된 대사를 읊는 것처럼 수다는 한 번도 막힘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 거냐고 묻고 싶을 만큼 어떨 때는 목소리가 격앙되기도 했다.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해시키겠다는 집념이 느껴지기도 하여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그게 안쓰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을 모두 선하게 설명하면서, 절대적인 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위선적인 태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조금 싫었다. 우선 이 진부한 고교 시절 따돌림이라는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수아 씨, 그런데 이구아나랑 토끼는 어떻게 했어요?”

“몰라요. ”

“설마 버렸어요?”

수아가 펄쩍 뛰며 그럴 리가 있냐고 했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냐고도 말했다. 몹시 분노한 눈치였다. 나는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 관상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라며, 그저 궁금해서 물어만 봤을 뿐인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덤벼드냐고 덩달아 언성을 높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던 수아가 말했다.

“엄마한테 보냈어요. ”

“왜요?”

엄마는 동물을 버릴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그게 버린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옳은 거냐고 수아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수아를 원망하거나, 심하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책망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럴 만큼 동물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몹시 들끓어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마음이 가슴 속에서 날뛰고 있음만은 분명했다. 수아에게 심한 말로 화내어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마음과,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충돌하여 스파크를 튀기는 것처럼 눈 앞에 불이 번쩍번쩍 일었다. 나는 수아에게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죽을 생각은 하면서, 기르던 동물은 어쩌지 못해 부모에게 손 벌리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제발 말 좀 그만해! 수아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알아아아.

수아는 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달려와 얼굴을 할퀴었고, 나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밀쳤다. 무책임하니까, 당신이 무책임해서 이렇게 된 거면서 제발 착한 척 좀 하지 마! 수아도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그 나이 먹고 취직도 못 하면서, 멍청한 새끼, 너 아까 버스에서 낙서하는 거 다 봤다, 오타쿠 새끼, 이 십타쿠 새끼야, 나이 처먹고 이상한 그림이나 그리면서 괜히 자살하기 무서우니까 여자한테 소리나 지르는 성격 삐뚤어진 새끼! 남의 죄책감 자극하고, 남의 사연 함부로 말하고, 그러니까 취직을 못 하는 거야. 회사가 바본 줄 아나, 너 같은 새끼를 못 알아볼까 봐? 수아는 막힘 없는 패턴으로 수다를 떨 때처럼 굉장한 속도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말하다가 조금씩 웃음을 터뜨렸다. 제발, 너무 지친다고, 배가 고파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으니 좀 다물고 걷자고 했다. 그 뒤로는 말없이 걸었다. 목적지는 100m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휴대폰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고, 우리는 곧은 길을 똑바로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마음은 누구보다 후련했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쯤인데..”

해가 뜰까 말까 한 어둑어둑한 시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 쓰러진 비닐하우스와 탄 장작더미 말고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황량함이었다. 원래는 있었다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삽으로 한 더미를 들어낸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광경이었다. 수아가 그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벌레! 벌레가 있어! 나는 헐레벌떡 그곳으로 뛰어갔다. 벌레가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생김새와 비슷하게 생긴 벌레가 있었다. 다만, 불에 타 버려 더는 살아있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벌레를 길러서 판다는 노인도, 청소부도, 메시아도, 어디론가 급하게 떠나버린 것처럼 사라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벌레를 길렀을 스티로폼이 불에 잔뜩 그을린 채 뒹굴고 있었을 뿐이다. 승용차가 창문을 연 채로 지나갔다. 운전자는 잠깐 멈춰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있었던 집 어디로 갔는 줄 아세요? 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몰라! 하고 신경질을 내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동이 트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동안 아무 말 없이 허, 하고 입을 벌린 채 그저 서 있었다. 힘없이 벌린 입으로 새벽의 추운 공기가 몰려들었다. 캄캄한 폐가 오래된 전등처럼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밤보다 아침이 조금 더 춥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안이 벙벙해 잠깐 두 귀가 막혔다가 돌아왔다. 물에 잠겼다가 순식간에 건져진 기분이었다. 하하하. 하. 수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허허 웃었다. 우리 중 아무도 울지 않았다. 갑자기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고, 허기진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주머니 속의 돈다발이 쥐어졌다. 벌레의 값으로 지불하려고 했던 돈이다. 수아는 고기나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순순히 그러자고 말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수아의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자고,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곳까지 걸어서 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밤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은 사라졌다. 주위는 완전히 밝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지나온 길에 몇 개의 조그만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 <벌레 먹기>는 총 3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필자소개


이해주, 소설가.

어쩌다 비매품처럼 찍었던 책이 완판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가끔은 시니컬해지고 싶다.



#이해주 #벌레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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