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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_리뷰 8 전진하는 여성 독자

#위험한_리뷰 8


허윤 X 희음


전진하는 여성 독자



허윤 수록 텍스트

「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





<#문학은_위험하다>의 도처에 김지영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은 단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의 발자국이 아니다. ‘김지영’은, 김지영을 읽고 김지영을 건네고 김지영을 매개로 자신들의 일상과 이 세계를 읽어내기 시작한 독자의 이름에 가깝다. 김지영을 써내려간 것은 작가 조남주이지만 김지영이 그토록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 것은, 작품을 읽고 감각하며 릴레이와 합창으로써 김지영을 호명한 입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독자, 특히 여성 독자가 이전과는 ‘다른’ 독자로 거듭나게 된 전환적 국면에 허윤은 집중한다.


“여성 독자는 말 그대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며 전진해 왔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에 이르러 이들은 책 읽기를 통해 연대하는 독자가 되었다.”



‘텍스트를 먹어 치우’던 여성 독자는 지금껏 한 번도 ‘전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출판시장의 주요 구매층인 2030 여성이 소비하는 도서 목록의 주제는 시대와 정세에 따라 다른 지향을 가져왔음에도, 이들은 늘 그저 텍스트를 통해 ‘교양’을 쌓는 이들로만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허윤이 말하는 대로 교양(culture)이란 무질서(anarchy)의 상대어로서, 여성은 애초부터 ‘무질서’ 혹은 ‘자연’이라는 맥락 위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교양을 쌓음으로써 그런 무질서 상태를 극복해야만 하는, 계몽의 대상일 뿐이었다. ‘무질서-교양’이라는 이항대립의 상징폭력. 남성 중심 사회는 이 같은 “교양의 통치성”을 통해 여성을 잘 관리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독서는 누구에게도, 어떤 권력 체계에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 안전한 독서일 것이며, 이때 가장 유용한 장르가 다름 아닌 로맨스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안전한 독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에는 한 사회 전체라는 감각기관이 동원되는 것 같다. 지금껏 그 감각을 대표/재현해온 것은 문학 출판계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들은 어떤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릴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재빨리 간파하고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왔다. 2001년 『칼의 노래』가 100만 부를 돌파한 뒤 작가 김훈이 2004년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받게 된 흐름이 그 대표적 예시가 아닐까. 김훈은 평단으로부터 "모든 소멸해 가는 것들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자 탁월한 묘사"라는 상찬을 받았다. 그는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2005년 ‘황순원문학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건으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들 수 있겠다. 이 소설은 2008년 11월 국내 출간 이후 2012년 4월 국내 판매 200만 부를 돌파했고,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3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2012년 3월에는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훈과 신경숙에게 수여된 문학 평단의 헌사와, 그 텍스트가 보다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서포트한 일련의 움직임들을 이제 와 돌아보면서, 『82년생 김지영』의 ‘미학적 성취’를 운운하면서 여성 독자의 ‘보는 눈’을 폄하하고, 이들을 ‘우민’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그룹에 묻고 싶어졌다. 「언니의 폐경」의 미학적 성취와 『엄마를 부탁해』의 미학적 성취는 작품 본래의 것이었는가를, 그 미학적 성취가 작품 스스로 성취하고 확대 재생산한 것이었는가를.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앞세우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당시의 미학적 성취 앞에서 그토록 당당했던 당신들의 말과 글은 여전히 안녕한지.



미학적 성취, 즉 ‘아름다움’이 작품 그 자체에 내재된 고유하고 본래적인 것이 아님은 18세기 당대의 흄이나 버크 등의 이론에서 이미 논증된 바 있다. 아름다움은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관조하는 정신에서 시작되며, 시대의 “판단자들에 의한 연합된 판결”이 미적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1) 한 작품은 그것이 어느 시기, 어느 맥락 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이고 초역사적인 미적 진리를 지닌 얼굴이란 없다. 한 시대와 사회가 갖는 각도와 온도, 기압에 따라 때론 추하게, 때론 아름답게 모양 지어지는 얼굴만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질문해야 하는 것은, 한 작품이 왜 하필 이때 우리 앞에 놓였고 또 우리 대다수에게 그처럼 선명하게, 혹은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무결하고 죄 없는 피해자, 김지영. 사회를 변혁하고 현재의 지반에 균열을 내면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가 아니라, 지나온 날들을 아프게 돌아보고 자각하고 체념하는 데에서 말을 끝내는 착한 피해자, 김지영. 피해자란 복잡한 관계 안에 위치하게 마련이므로 늘 무고하거나 순수하지만은 않으며 한순간의 피해자가 영원한 피해자일 수는 없다는 것, 피해자는 피해자라는 단일한 이름만을 갖지 않는다는 점 등 김지영이라는 캐릭터와 김지영에 대한 재현의 한계를 나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김지영이 오늘의 여성 독자에게 보이고 들리고 인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보다 집중적으로 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허윤은 이 소설이 “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 선택한 여성들이 ‘착한 여자’로 남으면서 손에 쥘 수 있는 무기”였을 것이라 분석한다. 허윤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나는 여성 독자의 온전한 여성적 동일시가 가능했던 소설 자체가 많지 않았던 현실적 상황 또한 그 원인으로 들고 싶다. ‘여자 냄새’ 나는 소설 같은 건 쓰지 말라고 가르치던 남성 ‘문학 전문가’들로부터의 조언(을 가장한 강요와 억압)2)이 시·소설 작법의 일반 이론으로 자리 잡던 시대였다. 정확히 말해 2000년 이후부터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이전까지, 여성 서사는 물론이거니와 페미니즘 문학 비평조차 자취를 감췄다. 여성 독자들은 시장에 널리고 널린 남류 문학을 소비하면서 도무지 동일시 불가능한 문학 바깥으로 끝없이 튕겨 나오는 시간을 견뎌 와야 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여성 독자들은 이것이 정말 ‘아름다움’인 것일까 하는 의심을 키워온 것이 아닐까.



독자 비평을 통해 촉발된 김훈의 ‘추락’은 그 시기가 ‘의심’의 시기였을 수 있다는 관점을 뒷받침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많은 남류 작가들의 기성 작품이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단연 김훈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200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 중 생리를 묘사한 대목이 주요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그 비판은 SNS라는 채널을 통해 대두된 독자 비평에 의해 본격화된 바 있다.3)


김지영 현상에 대해, ‘미학적 성취의 미흡함 대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손쉬운 감각에 현혹된 독자’라는 식의 프레임을 덧씌우는 평론가들이 왜 지금의 이 ‘김훈 현상’에 대해서는 침묵을 고수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언니의 생리를 닦아주는 동생’을 통해 여성을 대상화하며 남성적 욕망을 기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핍진성마저 결여된 헐렁한 묘사는 미학적 성취의 주변부에조차 닿지 못한 듯한데 말이다.


이쯤에서 다시금 허윤의 말을 빌려와 보면, ‘교양’ 있는 여성이라는 이름을 얻어야만 가까스로 시민적 성원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여성 독자는 그 많은 텍스트를 먹어 치워가며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텍스트가 자신에게 유용한지, 어떤 텍스트를 집어 들어야 저마다의 생존에 유리한지 여성 독자는 원래부터 제 욕망의 방향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 그들은 비평하고 인용하며 이어 말하고 함께 말하는 자로서 ‘독자’라는 이름을 새롭게 취득하려 하는 것 같다. 여성적 동일시를 가능하게 하고 지금 이 땅 위에 위치한 여성의 말하기를 가능하게 한 김지영이 환영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지영을 경유하는 동안, 흩어져 있던 여성의 목소리는 더 빠르게 집합한다. 이 같은 여성 연대를 향한 첫 번째 욕망의 무기로서, 김지영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 캐롤린 코스마이어 <페미니즘 미학입문>, 신혜경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9.

2) 여성소설가모임 ‘왓에버’(차현지·천희란·조우리) 인터뷰, 한겨레 영상 <판을 바꾸는 언니들⑩>, 2009.9.8.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08925.html

3) 비판 글은 지난 23일부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이 글을 두고 “생리에 무지한 남성이 쓴 판타지”라고 비난하고 있다. 생리혈은 ‘뜨겁게’ 밀려 나오지 않을뿐더러, 생리대는 속옷에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돼 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성인 여성인 언니의 생리혈을 닦아주었다는 묘사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생리’를 묘사한 단편소설에 비판이 쏟아지다> 참조. 허핑턴포스트, 2017.06.26.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16778990







필자 소개



희음

시 쓰는 여성주의 활동가.

시인들과 함께 펴낸 페미니즘 시선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가 있습니다.

여성주의 일상비평 웹진 <쪽>의 편집과 관리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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