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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_리뷰 4 미래의 야만이 되지 않기 위해

#위험한_리뷰 4


장은정 X 강성은


미래의 야만이 되지 않기 위해

-장은정의 <죽지 않고도>를 읽고


장은정 수록 텍스트

「죽지 않고도」

「겨누는 것」



계절마다 쏟아져 나오는 잡지들을 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몰아 읽는 편이다. 며칠에 걸쳐 몇 개월 치를 읽고 한꺼번에 버린다. 책이 비워진 공간에 다시 책이 쌓이고, 쌓인 책을 또 버리고 나면 일 년이 지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조금씩 뒤늦고 덤덤한 편인데 얼마 전 몇 계절 치의 잡지를 읽다보니 유난히 흥미로운 비평글들이 있어 실소를 터트렸다. 시에서도 쓰지 않는 감정 노출이 심한 비평을 읽고 나니 장은정이 제시한 것처럼 지금이 세 번째 시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 문학에서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이 구축된 시기를 장은정은 세 시기로 나눈다. 짧게 요약하면 첫 시기는 2016년 10월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문학출판계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공론화가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 목소리들이 SNS라는 익명의 공간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요 문예지들이 특집 지면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시기는 그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있던 여성혐오적 사고와 문학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몇몇 평론가들의 문학의 자율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문제 제기로 논의의 중심이 옮겨가는 바람에 정작 한국문학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관한 토론이 이어지지 않았다. 세 번째 시기는 앞선 두 시기를 통과하면서 형성되어 온 문학에 대한 페미니즘적 고찰들이 미학성과 정치성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적 대립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현재이다. (p.95-97)


2019년 8월 현재.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우주선이 얼마 못 가 다시 지구로 끌려가고 있다면 기뻐할 사람은 지구에서의 삶이 행복했던 사람일 것이다.



장은정은 여성문학의 부흥기였던 1990년대부터 페미니즘 비평이 거의 사라져버린 2000년대, 그리고 이후 ‘탈여성문학’에 이르기까지의 여성문학 담론을 살펴보고 당시의 비평적 관점 때문에 포착할 수 없었던 여성시의 가능성과 시적 성취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답한다.

“과거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감각되는 것은 ‘지금-여기’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페미니스트-독자-시민들이 출현하면서 가능했던 감각인 것이다.” (p.116)


달라진 것들과 폐기된 것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것들을 나는 떠올렸다. 그중 하나는 여성문학이 하나의 장르로서만 존재했다는 사실. 2000년대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잊고 있었다. 많은 여성 시인들이 지워진 것은 흔히 말하는 거대 담론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위치했기 때문이라는 것.


최근 모 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문학 번역출판 지원사업에 내 시집이 선정되었다. 번역가들이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해서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해외에서 출간하도록 돕는 사업이다. 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 사업의 역대 지원작을 살펴보았다. 기록을 통틀어 단연 고은의 시가 가장 많이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홈페이지가 생긴 2001년부터 기록을 보면 2005, 2007, 2008, 2010, 2012, 2013, 2014, 2017년에 걸쳐 10회 번역되었다.) 성추문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지금도 한국 대표 시인으로 전세계에 번역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은을 본 적도 그의 시집을 읽어 본 적도 없다. 수업 시간이나 잡지를 통해 시를 몇 편 읽어 본 적은 있지만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한 번쯤은 시집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도 많으니까.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그런데 내가 만난 시인들 중에서는 나처럼 고은의 시집을 읽어본 적 없는 시인들이 많았다. 고은의 시를 좋아한다는 시인을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현재 한국에서 시를 쓰고 있는 47세의 나와 또래의 시인들, 혹은 더 젊은 시인들은 고은의 시를 읽지 않는다. (시집은 시인과 시인지망생들만 사 읽는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있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2018년 미투 사건 때문이 아니라 고은의 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읽지 않는 시가 되었다는 얘기다. 고은의 독자는 누구일까. 어디 있을까. 이쯤 되면 고은의 시는 외국 사람들만 읽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이 아주 많은데. 그런데 왜.



최영미 시인이 경험했던 90년대의 술자리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얼마 전에는 또 다른 원로 시인의 오래전 성추문에 대해 듣게 되었다. 본 적은 없지만 그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이다. 역시나 20년 전쯤에 성추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나 우리 중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시간은 꽤 빨리 모든 것을 지운다. 이런 사실이 무섭다.


“우리가 과거에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마지막까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애도를 통해 단지 윤리적 주체가 되기 위한 자기만족 때문이 아니라, 지금에도 죽어가고 있을 이들을 죽기 전에 살리기 위해서, 또한 미래에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p.120)


나는 친구들과 과거의 얘기를 할 때면 “그땐 야만의 시대였잖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야만의 시대였다는 말로 뭉뚱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가 야만인이었다고 말하고 나면 내게, 우리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야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장은정은 한국문학에서 여성문학 담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르렀나를 차근차근 밝히고 있지만, 결국은 도래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글의 독자인 문단을 둘러싼 구성원들에게 셰에라자드와 바리데기처럼 죽음을 유예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지 않고도 여성의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손 내밀고 있다. 단단한 비평은 어제의 희미해진 빛을 불러와서 내일의 밤길을 환히 밝혀준다.


「문학은 위험하다」를 읽으며, 지난 계절의 잡지들을 읽으며, 나는 오랜만에 비평 읽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 평론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독자로서 작가로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읽기와 쓰기는 안전한가. 여전히 질문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시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남성 평론가들에게는 부탁하고 싶다. 비평의 언어는 정확하고 날카롭되 오랜 숙고에서 나오는 것이길.



우리집 오른편에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한 그루, 골목 맞은편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5층인 우리집에서 보면 높이가 비슷하다. 오동나무와 은행나무의 밑동은 앞집과 뒷집 사이 아주 작은 공간에 겨우 끼어 있는 거나 다름었다. 건물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높은 나무들이 자랐을까 의아했다. 얼마 전 놀러 온 친구와 집 밖으로 나가 나무들을 좀 더 자세히 보았는데 몰랐던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친구는 나무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그렇게 자랐을 거라고 했다. 그런 조건에선 도리어 위로 최선을 다해 뻗어나간다고. 건물과 건물 사이 음지에서는 빛을 받을 수 없어서 맹렬한 속도로 햇볕을 향해 자란다고 했다. 그래서 저렇게 나무가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있다고. 식물을 아주 잘 키우는 친구의 말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 나무를 둘러싼 건물들의 높이가 3층이거나 4층이라서 나무는 이제 건물들 보다 더 높이 우뚝 서 있다.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있을 것이다.


「죽지 않고도」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죽음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도 더 멀리 갈 것이다. 환한 빛을 향해.





필자 소개




강성은

시인.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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