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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_리뷰 3 자꾸 실패한다는 사실이 유용해지는 까닭에 대하여



#위험한_리뷰 3


인아영 X 박민정



자꾸 실패한다는 사실이 유용해지는 까닭에 대하여



인아영 수록 텍스트 「문학은 억압한다」


이 글은 인아영의 「문학은 억압한다」를 내 방식대로 독해하고 한편으로 받아 적으며, 그의 사적인 경험들과 더불어 정립된 개념을 경청하겠다는 의지에 의해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싶다. “처음으로 김현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오래 걷던 날, “문학은 다른 분야와 무엇이 달라서 이토록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나”라고 생각했다는 대목을 읽을 때 나로서는 정확하게 대칭되는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학특기자로 문예창작과에 진학해서 소설창작을 전공했고, 줄곧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를 감히 꿈꾸어볼 만한 여력도 없이 살아왔다. 그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이십대의 나는 내내 정확히, 그것은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로지 내 주변은 미성년자 시절부터 문학주의자들 뿐이었으며, 기왕에 문학을 하기로 했으면 무릇 다른 데 눈 돌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아온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내가 가졌던 의문은 “그렇다면 문학은 다른 분야와 무엇이 달라서 이토록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나”라는 것이었는데, 이 문장은 인아영의 문장과 똑같지만, 아마도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문학이 그토록 순정한 것이라면 내 삶을 온통 채우고 있는 ‘문학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왜 때로 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그때쯤의 내겐 삶이 문학적인 방식을 만드는 것인지, 문학적인 방식이 삶을 만드는 것인지 구분할 역량조차 없었다. 문학 공동체에 속해 있는 다른 친구들보다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우선이었고, 불우하기 짝이 없는 경제적 조건을 이겨내고 등단을 하고,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애석하게도 문창과 학생은 신입생 때부터, 문단이란 지극히 생존율이 낮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때로는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일 뿐이다’라는 자위가 통할 때도 있었지만, 문학밖에 없는 곳에서 문학 그 자체가 무엇인지 구별할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지극한 두려움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범박하게는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특유의 문학적 수사들이 마땅히 잊고 넘어가야 할 상처를 들쑤시고 헤집을 때가 많았다. 오랫동안 떨쳐내지 못했던 폭력적인 연애에서조차 “이 정도 슬픔쯤은 문학 하는 자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따위 생각을 하며,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타인의 “미묘하고 이상한 마음의 무늬”를 헤아려보려 애썼다. 스물두 살에 내가 즐겨 읽었던 시, 허수경의 「폐병쟁이 내 사내」를 읊으며, 그렇게 다시금 저 폭력적인 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곡해했던 나를 생각하면, ‘문학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정의가 내 삶을 얼마간 망쳤는지 떠오르며 아득해진다.



그래서 나는 문학 하는 자들을 잠시나마 떠나 보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발걸음은 우연히 알게 된 세미나 네트워크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란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도 방학 때가 되면 며칠간 합숙하며 사회과학을 읽고 토론하는 학습이라는 것을 했는데, 선배들이 이미 선정해놓은 책을 따라 읽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문창과에서의 ‘학습’이 그다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학 공동체에서 받은 내적인 상처와 환멸은 오히려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환상을 과도하게 만들어냈던 것 같다. 문학에서 도망가 보려고 선택했던 모든 사회과학(페미니즘에도 그땐 그런 식으로 관심을 가졌다)은 내게 신세계였다. 사회과학의 시점에서, 문학의 언어라는 것은 순진하고 게을렀고 멍청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사회과학은 내게 더욱 엄밀하고 정치하고 명쾌한 방식, 문학보다 인간을 더욱 환하게 밝혀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게 ‘태생이 어디 가랴, 이것도 내력인걸’ 따위의 생각을 결국 하게끔 만들었던 계기는, 그때 한창 세미나를 주도하던 강사가 내게 ‘활동’이라는 것을 권했을 때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문예 봉사를 해달라라는 말을 했을 때,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난 그런 것 못해, 그런 건 건강한 당신들이나 해, 나에게는 그저 마르크스의 문장도 여느 소설의 문장처럼 아름다워 보였을 뿐이야……’라는 것이었다. 내가 문학 전공자였기 때문에 활동을 못했다는 건 아니다. 그건 나 자신을 모욕함과 동시에 수많은 문예운동집단을 또한 활동가를 모욕하는 말일 뿐이다. 다만 ‘나는 못해(왜? 난 돈도 벌어야 하고 등단도 해야 하니까 그럴 시간이 없어)’라는 주장의 근거를, 내가 ‘나약한 문청이다’라는 데 두었다는 것. 사회과학의 언어를 베껴 쓰며 문학의 언어를 깔아뭉개고자 했던 내가 종국에 나 자신을 변호할 때에는 그 문학의 무용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는 것. 내 생애 가장 씁쓸한 기억 중 하나다.

몇 번이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가 붕괴될 때, KTX 승무원들의 투쟁 때, 그리고 마땅히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글쓰기를 가르쳐 줄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마다, 내가 쓰는 소설 한 줄보다 언니들과 아이들 옆에 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십대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이 전부 글 쓰는 사람들이었고, 내가 쓰는 글은 세상을 바꾸지도 못할 것이고 나 자신조차 바꾸지 못한다고. 그러나 나는 그런 회한을 부족한 시민의식을 변명하는 데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정작 선택의 순간은 넘치도록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나는 나약하니까, 문학으로 돌아갈 거야’ 하고 팽하니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대학원에서 다양한 사회과학 이론을 배우면서 나는 오래전 유명한 소설가의 신간 기사에 달렸던 댓글, “소설가들은 글줄 쓴다고 까불지 말고 공부 좀 해라”라는 모욕이 내내 나를 괴롭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문화연구를 전공하는 내게, “소설의 소재를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이 꽤나 자주 따라붙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고, 사실이라 해서 부끄러운 것도 아님을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때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던 것 같다. 그저 나 자신의 얼굴 생김새를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나는 창작도, 창작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도 전부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문학의 실체를 문학이 없는 곳에서 차이를 통해 보려 했던 것도, 자꾸 나 자신의 부족함과 문학의 순진함을 연결시키려 했던 것도, 전부 그저 솔직한 나 자신이라는 걸. 내겐 문학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다는 것이 기분이자 태도였고 사실은 좀 더 제대로 된 소설을 써 보고자 노력했지만 가끔은 생활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나를 변명하기 위해 문학의 무용함을 들먹이려 했다는 것을.



2015년 이후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지만,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털어놓아봤자 통렬하다는 사실 외에 뭐가 있느냐’라고 느꼈던, 사적인 경험들이 어떤 경우에는 자기 방법론을 또한 개념적 진실을 엄밀하게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게는 인아영의 글이 그러했고, 다시 한 번 호출하는 문장, “문학은 다른 분야와 무엇이 달라서 이토록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나”는 내게 정확히 반대되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종국에는 같은 지점을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문학이 아프지 않다. 이제는 문학이 나를 억압한다는 것을 조금은 인정하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박민정

소설 쓰는 사람.

삶의 수행성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우연히 알아내면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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