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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_리뷰 12 기억의 젠더 묻기


#위험한_리뷰 12


서영인 X 김지승


기억의 젠더 묻기



서영인 수록 텍스트

「1990년대 문학 지형과 여성문학 담론」

「문학사, 회고와 동어반복, 혹은 성찰의 매듭」



“나는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과거로 날아가 바르게 고치는 일 같은 것 말이야.”

-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90년대는 명명하기로 유명했다. 2000년대가 선언하기로 책귀가 접힌 것처럼. 덕분에 90년대에는 권력의 많은 얼굴을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명명 이후 주어진 각본에 따라 90년대 여성작가들은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역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확고한 생각 없이 어떤 편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게 안전하다는 경험을 빠르게 공유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마는 건 그들을 향한 다수의 명명이 예외 없이 명령이자 억압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알게 되면 괴롭다. 하루에 세상이 한 바퀴만 돈다는 게 믿어지세요? 그도 아는 것이 족족 괴로움이 되는 사람인 듯했다. 워크숍이 시작되기 전이나 끝난 후에 내게로 와 먼저 목캔디를, 다음에 질문을 내밀었는데 늘 새벽이 묻은 사람 냄새가 났다. oo공장 여성노동자 대상 워크숍 첫 시간에 자기를 ‘여성노동자 13호’로 소개한 이였다.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해서 잠이 늘 모자라고 글은 더 모자란다고 했다.

“지금까지 읽은 글 모두 너무 좋아요. 좋은데… 모르겠어요. 이 작가들은 나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19~20세기 영미권 여성작가 작품들을 읽고 있었다. 그가 하려는 말을 나는 금방 이해했다. 흑인여성 작가 작품 한둘을 빼면 리스트는 중산층 이상, 교육받은 백인 여성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저택과 넓은 정원을 배경으로 그와 같은 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그에게는 늘 부족한 잠을 부족함 없이 자면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하면 너무 납작한 비교가 되겠지만 그 납작함이 가감 없는 일차적 반응이란 걸 그도 나도 애써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하길 바랐다. 여성인 우리의 침묵과 수다가, 웅얼거림과 비명이 그 자체로 공적 언어의 위상을 가지려면 우선 그래야 했다. 비난하려는 건 아니라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다만 자신이 느끼는 바가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인지, 나아가 정당한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혹시 여성작가 혐오나 계급적 편협함이 아닌지, 만약 그런 거라면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아마 노력이란 말이 걸렸을 것이다. 뭘 더 얼마나. 나는 충혈된 13호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왜 노력은 늘 하는 사람만 하는 걸까요? 반쯤은 하소연을 담아 묻자 그가 단단하게 대꾸했다. 알아버려서요. 알고 나면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작품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당시 여성작가들이 경험한 총체적 억압에 어렵지 않게 동의하면서도 어떤 이질감이 자꾸만 이입을 방해했다. 그들의 재현 방식이 개인 경험이나 계급성을 경유하면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당황스럽게도 그 세계가 선택의 여지없이 삶에 난입했던 백인 남성작가들의 글 속 그것보다 더 부대꼈다. 아 너도 그랬느냐 나도 그랬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눴다. 여성이 여성을 향해 갖는 강력한 동일시의 욕망을 계급적으로 좌절시키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의견 말미에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어떤가요, 하고 내민 한국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영미권 여성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투입하는 에너지와 동일시의 태도가 부정과 엄격함으로 전환되었다. 그렇다는 걸 일단은 부정하다가 다시 안전함을 확인한 우리는 ‘한국 여성작가 작품에 대한 극단적 호불호’에 그치지 않고, 자기검열이 과도하게 작동하면서 급기야 작품들을 외면하는 쪽을 선택해온 일련의 공통 경험에 대해 언어화하려고 애썼다.

영미문학이 시공간적으로나 계급적으로 너무 멀다면, 한국문학은 접점이 너무 광범위해 오히려 거리감 확보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때때로 모국어가 ‘아, 엄마 좀!’할 때의 그 엄마 같다면, 모국어로 쓰인 여성작가의 작품은 ‘아, 좀!’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에게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90년대는 여성작가들에게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면서요? 얼마 전 대학을 중퇴했다는 ‘여성노동자 12호’가 강사에게 들은 말이라고 했다. 님이 13호면 저는 12호 할래요 해서 12호가 된 사람이었다. 그 강사 남자죠? ‘여성노동자 13호’가 받았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여성작가들에게 정말 좋은 시절 같은 게 있었을 리가… 그죠? 그렇죠. 말을 줄이면서 대신 워크숍이 끝날 때쯤 내가 기억하는 90년대의 한 장면을 나누기로 했다. 지금 해주세요. 아니, 그냥 부록 같은 이야기에요.

#문학은_위험하다』가 우리의 대화에 등장한 게 그즈음이었다. 과거의 여성작가와 우리를 같이 끌어안을 수 있는 질문들을 고민하면서, 마침 12호가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저녁도 안 먹고 우리가 이러고 있으니 문학이 위험한 게 맞다고 13호가 웃었다. 12호는 책을 읽다보면 자주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된다고 했다. 무슨 반성요? 차이를 혐오나 분노로 대응하지 않았나 해서요. 반성도 노력만큼 걸리는 말이었다. 반성 말고 질문해요. 90년대 권력의 많은 얼굴이 만든 기억과 경험의 의미망을 흔들 만한 질문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무력(無力)이 있고, 무력과 무력의 감(感)은 과거 쓰는 여성의 생존과 존재와 잔존에 슬프게 새겨졌다. 그 무력의 감은 지금 우리와도 얼마나 친밀한가.

90년대 여성작가들이 그 무력의 감을 슬픔의 제도로 구축한 최초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제도 안에 자리를 잡고 단단한 질문들을 조립해갔다. 가령, 90년대 한국 여성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모든 명명을 의심하면서, 어떤 이들이 어떻게 제한되고 배제되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90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거나 ‘90년대 문학은 없다’라고 선언하는 건 섣부르지 않나? 무엇보다 그 선언의 마이크를 쥐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명명하고 선언하는 권력의 얼굴이 우리에게로 전진해올 때 가장 유효한 질문, 지금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질문들 후로도 3주를 더 만났다. 90년대와 그 이전 한국 여성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더 읽었다. 역사인 적 없었던 우리 앞에 숱하게 던져진 역사의 종언 때문에, 어쩌면 덕분에, 우리는 멋대로 미래로 또 과거로도 갈 수 있었다. 여성노동자 1호부터 13호까지 다시 읽고 쓰는 그들의 손이 앞서 읽고 썼던 여성들의 손을 꼭 붙들고 어디로든. 나는 2016년 이전부터 줄곧 이런 관계성을 목격하고 있다. 여성노인과 탈학교 청녀와 퀴어들의 읽기와 쓰기에서. 그러니까 명명과 선언의 권력자들은 잠시 기다리는 게 어떤가. 아니, 침묵하자. 특정 시대의 문학이 명명하지 않은 빈자리, 배제되고 소외된 이름들, 욕망, 슬픔이 이제야 언어를 얻고 있다.



[부록]


90년대 중반, 모 문학 출판사 송년회 자리. 일찌감치 잘 붙는 가면을 선택한 이들과 쓰고 오긴 했지만 어색하게 연신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면이 필요 없는 귀빈석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점이라 치고 선으로 연결하면 문단의 모양이 되었을까. 장소를 잘못 찾은 데다가 눈치도 없는 한 남자가 “여긴 무슨 회사 망년회인가요?”라고 큰 소리로 묻는 바람에 뒤쪽 입구에서는 잠시 언짢은 시선이 오갔고, “망년회는 보우넹카이(忘年会)라는 일본말이야.”라고 한 중견작가가 옆자리 신인작가에게 아는 체를 하는 목소리가 또 터무니없이 커서 시선은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는 사이 식이 시작되었는지 ‘그냥 인사’와 ‘인사 말씀’이 이어졌다.

“올해 여성작가들의 약진도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우리 남자작가들이 너무 기가 죽어 있어요.(웃음) 내년에는 남자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더 활발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적당히 웃었다. 하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짝짝.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그렇지! 노년의 발언자가 숨을 고르는 사이, 일찌감치 귀빈석으로 안내를 받았지만 가볍게 거절하고 여성작가들이 모인 중간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H 작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잘 팔아먹고 딴 소리야…”

그해 출판사 매출 1위 도서가 H 작가의 것이라는 사실은 그 자리에 온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쩐지 나른한 말투였지만 왜 이 자리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같은 의아함 가득한 표정이 더해져 묘한 힘이 번졌다. 앞과 옆과 주변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할 만한 힘이었다. 같은 테이블의 여성작가들이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을 가장 먼저 터뜨렸다. H 작가의 말은 홀 가운데에서 팔방으로 전달, 전달되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뒤쪽의 신인작가들이 ‘아, 웃어도 되나 웃음’을 보탰다. 그러다가, 그뿐이었다. 90년대답게 산발적이고 지속성이 없었으므로 인사말씀은 무리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앞을 보지 않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어떤 감정을, 그리고 기억을 연결할 안테나를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에게만 보이는 그 선들이 선명해지려는데 그때까지도 자기 행사 장소를 찾지 못한 남자가 뒤쪽에서 안을 흘끔거리며 말했다.

“아, 출판사? 출판사는 원래 젊은 여자들이 많나부네.”

아아, 그렇게 90년대의 어떤 하루는 앞뒤로 총체적 난국이었고, 남자는 계속계속 눈치가 없었다.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에디터.

읽고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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