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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기 2




벌레 때문에 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은 은폐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로소 확실해졌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떨어지는 살점을 주체하지 못해 헤프게 살을 흘리고 다녔다. 살을 흘리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커다란 덩어리 반죽 같았다. 벌레가 인간을 죽일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인간을 벌하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은 절대자가 있는 것처럼 인간들은 고통스럽게 죽어나갔다. 남편은 병에 걸린 후에도 오랫동안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내성이 있는 체질이 아닐까 하여 연구소에 불려 다니며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그 역시 면역력이 강해 조금 버텨냈을 뿐, 이내 살점을 흘리며 떠나가는 것들에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인간일 따름이었기 때문에 금방 버려졌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은 날, 나는 내가 그동안 그가 낫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편이 아주 무해한, 아니 무해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러니까 인간의 의도가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사고로 차라리 영영 사라지기를 바라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병에 걸리기 전인지, 병이 나타나기 전인지, 건강했던 남편은 죽은 사람을 싣고 떠나는 트럭을 보면서, 만약 신의 시선에서 본다면 꼭 빼빼로를 가득 실은 모습으로 보일 거라며, 절대 조물주의 입장은 인간과 대등해질 수 없다며, 지금도 신을 위해 일부 헌금을 내는 어리석은 인간들과, 뻔뻔한 얼굴로 헌금을 받아먹고 사는 것들이야말로 진작 병에 걸려 죽었어야 마땅한 것이라고 서슴없이 누군가를 모욕했다. 잔뜩 열을 내는 남편의 앞에서는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신이 있다고 간절히 믿었다. 부족한 형편에서 주먹만큼 돈을 떼어 몰래 헌금을 내기도 했기 때문에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그때까지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소중한 아들인 윤이 어린 몸에 고통을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한 채 죽었을 때도, 신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를 절체절명의 순간 구해줄 거라고, 나를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정말로 신을 믿지 않게 된 것은, 성실히 낸 헌금을 차라리 구걸통에 던지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울부짖게 된 것은, 남편이 연구소에서도 살아남았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였을 거다.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진부한 시작일 것이다. 남편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조금 특별한 종교를 믿고 있었다. 매주 목요일에 예배를 드리며, 신도들이 함께 몸을 씻는 특별한 예배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낯선 몸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젠가 신이 만든 천국의 낙원탕에 몸을 담글 때를 대비하자고, 선지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성기를 세우거나, 성욕에 들뜬 얼굴이 되지 않았다. 낙원탕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초에 예배당에 들어올 수 없었다. 선택받은 용감한 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거였다. 나는 용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용감하지는 못했다. 부숭하게 털이 난 남성기나 갈색 젖꼭지를 볼 때면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바로서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긍지이자 용기라고 믿었기 때문에 곧 극복할 수 있었다. 목욕을 하고 난 뒤에는 성별에 상관없이 서로의 몸을 닦아주며 경건한 마음을 다졌고, 가끔 보는 튼살이나, 흉터를 존중하며 너그러워지는 마음을 품는 시간을 가졌다. 진분홍색 작은 주머니를 들고, 헌금을 넣는 것이 예배의 마지막이었다. 손을 깊숙이 넣어 헌금의 액수를 가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는 주머니는 마지막 신도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불룩해졌다. 임산부의 배처럼 부푸는 주머니를 보면서, 나는 저것이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은 이토록 가까이에, 낙원탕 입장료만큼 가깝고 비슷비슷한 무게를 서로 불려주며 커지는 거라고. 나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스터디를 한다고 했다가 결국 사실대로 신앙을 고백했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이비인가? 아닌가? 그는 내 얼굴을 천천히,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뜯어보며 유추해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와 자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습관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생활에 아주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정도로 믿고 있고, 믿는다는 말이 가끔은 어색할 정도라고. 아주 오래전, 개인적으로 힘든 문제가 있을 때 위로받았던 사람이 그곳의 성도였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고. 남에게 전도하지 않고 있고, 불편해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이다. 남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래요, 다들 믿는 게 다르죠. 너그러운 상관은 없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아마 속삭임이었을 것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예배를 나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는 문제이며, 강압적인 전도만 하지 않는다면 부모님에게 숨겨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이 조금 바보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어째서 남자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한없이 바보처럼 웃고 마는가? 중요할 수도 있는 문제를 감언이설로 대충 녹여 상대의 목구멍에 혓바닥으로 넘겨버리는가? 그때 나는 안일했고, 어딘가 기댈 곳을 찾고 싶었다. 낙원탕에 들어가는 것도 좋았지만, 속눈썹의 길이를 겨눌 만큼 얼굴을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쯤은 세상에 있었으면 했던 것 같다. 그때, 공교롭게도 남편이 내 곁에 가장 가까운 남성이었고, 그래서 남편과 결혼했다. 이후에 인생이 끔찍하게 재편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낙원탕의 헌금을 백만 원 정도는 돌려받고 싶었다.


남편과 결혼한 일주일 만에, 나는 내 안에 살의가 있음을 느꼈다. 남편은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으며, 제 손으로 밥을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실을 아주 몰랐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토록 배려가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말을 하지. 나는 누구와 살든, 어떤 사람과 살든, 생활에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내 손으로 밥을 지을 수도 없고, 세탁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힘들어하니, 네가 희생을 좀 해달라고. 그랬으면 마음이 나았을까. 있는 그대로 사람 좋은 척은 다 하더니, 듣기에 부드러운 말만 하고 드러눕기만 하는 남편이 때로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그런 마음을 모르면서, 밤에는 늘 조그만 성기를 집어넣고 싶어 안달했고, 여전히 진득하게 들러붙어 오는 것도 징그러웠다. 나는 낙원탕에서 분홍 주머니를 따로 구입할 수 있는지 물었고, 선지자는 선뜻 헌금 봉투 하나를 내어주었다. 남편이 싫을 때마다 그 안에 동전을 넣었다. 조금씩 불룩해지는 주머니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스렸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둥그렇게 불러오는 주머니를 보면서. 나는 괜찮다고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동안, 뉴스에는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연행되는 모습이 몇 번이나 보도되었다. 누구나 그렇게 죽기도 하고, 시대와 관습에 따라 조금 더 죽어왔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녀가 희대의 악녀인 것처럼 떠들었다. 귀가하던 고등학생 여자아이를 무참히 살해한 남자는 아무래도 희대의 어떤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편을 살해한 여자는 몇 번이나 화면 속에 끌려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편은 씻지도 않은 손으로, 내가 깎은 과일을 집어 먹으면서, 화면 속 여자에게 상욕을 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특정한 모욕만을 힘주어 내뱉고, 혀로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욕의 센 발음들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얼굴은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좋단다. 재미있나 보군.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어쩌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어쩌다 품은 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을 주고 싶은 상대를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주머니처럼 밥을 먹을 때마다 조금씩 커졌다. 아이를 키우고 난 뒤로는 주머니에 동전을 채우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주머니를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빠듯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남편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먹고 마시는 돈보다 적었다. 남편은 미안해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했다. 부모 잘 만난 놈들이 자기가 벌어야 할 돈을 나눠 벌고 있다고 불평등한 사회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것처럼 화내기도 했다. 남편의 말에 일견 공감했다. 세상은 정말로 불평등하니까. 나쁜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며 가난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사라졌으니까. 정말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남편이 미웠고, 그래서 남편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 난 너를 왜 잘못 만났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못난 생각이 덜 익은 벼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일어섰고, 아이의 말간 얼굴이 미소짓는 것을 보며 분노를 삼켰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하느라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화장대 옆에 놓인 주머니를 때때로 참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신앙이 녹슬지 않았음을 맹세하곤 했다. 아이는 점점 커졌다. 윤이 자기 의사를 내기 시작하고, 엄마와 아빠라는 말을 구분하며 정확하게 부를 수 있게 되고, 걸음을 걷기 시작하고, 어른의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똥을 싸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마 병이 돌았을 거다.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시기를 몰랐다. 거실에 떨어진 핏자국과, 하얀 살점을 보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으니까.


윤이는 병원에서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살점이 담긴 바구니나 양동이를 들고, 의사에게 호소했다. 소중한 가족을 살려달라고 말이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들것에 실린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해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살점이 떨어지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다니. 그대로 죽어간다니. 병원은 미어터졌다. 흰 타일과 벽에 영문을 모르는 환자들의 고함소리와, 가족들의 공포에 찬 비명과 울음소리가 깨진 파편처럼 튀었다. 불안과 의심이 묻지 않은 얼굴은 그 안에 한 명도 없었다. 수많은 추측들과 강요, 본능적인 소음의 마찰들이 주는 아주 찰나의 고요함 사이에, 윤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울부짖었다. 제발 윤이를 낙원탕에 넣어 달라고. 이 고통에 가득한 어리고 안타까운 몸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희생자가 더는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구역마다 트럭을 배치해 실어 날라야 할 정도로 많아진 후에야 정부는 입장을 표명했다. 참으로 여유롭고 명예로운 입장이었다. 희생자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더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눈물을 닦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우습고, 간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동안 대체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말했다. 책임은 소풍날 수건처럼 여기저기로 돌려지다가 어느 순간 증발해버렸다. 누구도 책임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긴, 인간이 질 수 없는 책임일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과 순진하고 성실한 목숨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었으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으니, 산 사람이 어찌 책임을 다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늘 남겨진 사람들의 몫인가? 사람들이 아무리 참담한 현실에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슴 속에 남겨진 아픔을 품고 있는 한,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어찌 아느냐고? 나 역시 남겨졌기 때문에. 정부는 점심 메뉴는 비빔밥입니다, 하는 듯한 어투로 원인은 벌레라고 말했다. 대규모 소탕 작전을 벌일 것이며, 백신 개발 중에 힘쓰고 있다고 말이다. 남편은 뉴스를 보며 계속 소주를 마셨다. 눈물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마 자고 있을 거야. 남편은 젖은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그 순간 그토록 싫었음에도 어쩐지 남편과 내가 아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시려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뭐가 우리를 이렇게, 윤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남편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남편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실에 필사적으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독하고 매섭게 느껴졌다. 세상은 덥다가 춥다가 기온을 마음대로 바꿨다. 일주일은 여름이었다가, 일주일은 또 초겨울처럼 춥다가 했다. 옷을 껴입다가, 벗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균형을 잃었다. 묵은 기상이변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탓에 사람들은 꾸준하게, 또는 성실하게 죽었다. 그 사이 백신이 개발되었고, 실은 오래전부터 백신을 개발해두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보급을 망설인 건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정말로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비슷비슷하게 이전의 삶을 이어나갔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그런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이전의 삶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예방 백신을 맞았고, 남편은 연구소에서 잠을 자고 오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을 비롯한 몇 명이 개발을 위해 불려가거나, 쫓겨나기도 했다. 매일같이 희망을 품다가,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고마운 거짓말이나 격려도 내가 사는 세계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만이 존재했으므로 무엇보다 잔혹하고 추운 세계. 내가 윤이라도 이런 세계에는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조금 괜찮아졌다. 아마도.



남편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헤집고 버리는 일이 아닐까. 나는 확신했다. 희생자의 집집마다 공무원이 들러 희생자가 쓰던 물건을 버리거나 소독했던 날이었다. 그저 집 안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그것도 훨씬 짧게 살다 간 누군가의 물건이, 아마 이 세상에 몇 천개는 존재할 똑같은 물건들이 조금 사라졌을 뿐인데 갈비뼈 안쪽의 모든 장기가 파도에 쓸려나간 것처럼 허무하고 황망해졌다. 나는 울고 싶었다.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일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주 찰나, 잠깐이라도 좋으니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날, 얼이 빠진 나 대신 찬거리를 사 온 남편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남편은 이제 그만 윤이를 보내주자고 했다. 자꾸 이러면 윤이가 엄마 신경쓰느라고 좋은 곳에 못 갈 거라면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틀렸으니까. 윤이는 더이상 우리가 보내거나,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윤이는 윤이대로 이미 먼 곳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많은 가족이 같은 온도의 차가운 가슴을 안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허리를 쓸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윤이 엄마, 하자.”


윤이 엄마, 하자. 윤이 엄마, 하자, 윤이, 엄마, 하자, 윤. 알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말은 무엇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것보다 중요한 저의가 알고 싶었다. 잠옷 바지를 내린 남편은 성기를 비벼왔다. 눈만 감으면 윤이가 형형했다. 막 전등을 끈 것처럼 번쩍번쩍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였다.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아니, 이것이 극복이고 살아가는 것인가? 그것,과 그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인가? 아마도 ‘윤이 엄마’와 ‘하자’는 말 사이에는 아주 많은 단어들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생략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이 엄마라는 말, 윤이의 엄마라는 말 안에는 수없이 많은 날을 가슴 저려왔던 고유한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떤 욕구와 생존도 있다는 것을, 그곳에는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세계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수도 있다. 나는 눈을 감을 따름이었다. 얕게 흔들리는 몸을 느꼈다. 남편의 숨이 거칠어질수록 단단히 눈꺼풀을 여몄다. 그러니까, 윤이 엄마인 나, 엄마가 아니었던 나, 윤이 엄마는 누구이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윤이 엄마는 엄마이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니까 결국 누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누가 되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자신과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해지는 노을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그러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였다. 연구소로부터 남편이 돌아올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불친절한 직원이 남편은 그나마 제 발로 걸어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연구소 안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진행되어 가족들이 수건을 가지고 데리러(사실 그것은 운반에 더 가깝다) 와야만 했으며, 피 머금은 살점과 동시에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낙오의 절망까지 닦아주며 돌아가야만 한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전화기 너머로 경직된 직원의 기색이 흘러드는 것 같기도 했다. 직원은 남편의 병에 다행히도 전염성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거스름돈 기부하듯 던지고는 서둘러 끊었다. 병이 상당히 진행된 사람도 치료를 받으면 전염성은 없앨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어지간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노랗게 물든 노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했다. 녹아버린 살점을 길게 늘어뜨리며 걸어오는 남편을 생각하니 문득 토기가 치밀었다. 변기통을 붙잡고 몇 번인가 구역질을 했더니 머리가 시원해졌다. 빛은 참 이상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주저앉은 내 모습이 긴 그림자로 늘어져 있었다. 나는 소중히 여겨왔던 분홍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던지듯이 그것을 처박아 두었다. 다시 꺼낼 일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신이 정말로 없다는 사실이, 단두대처럼 내 목을 쳤으니까. 정말 없었던 거니까. 그러니까, 있다면 나를, 누구보다 신실했던 나를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까. 꺼낸 지폐로 장을 보았고 남편이 먹을 죽을 끓였다. 세상이 그래왔듯이, 가뿐하게 배반하는 문은 열리기 마련이었고, 얼굴에 붕대를 감은 남편이 어색하게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원래도 남편이 썩 좋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병에 걸린 후 그는 조금 변했다. 전보다 욕을 자주 했고, 실없이 웃기도 했다. 나는 남편이 욕을 할 때마다 안도감을, 무구한 얼굴로 웃을 때마다 서늘한 공포를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몹시 가슴이 시렸다. 노인네 똥수발을 드는 것처럼 흘러내리는 피부를 연한 천으로 닦아주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감미로운 눈빛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남편 나름으로서의 사랑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인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건네졌다가 깊은 바다에 버려지듯 잠겨 사라졌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남편의 어떤 흔적들을 닦다 보면 정수리 위로 햇볕처럼 그런 눈빛이 내리꽂힐 때가 많았다.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이 있던 자리까지 흘러내린 피부가, 단지 입이 아닌 구멍이라고 말하고 있는 얼굴 앞에서는 죽어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건네는 다정한 사랑의 인사, 그것은 내게 무거운 굴레이자 압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남편은 자신이 걸을 수 있을 때 자주 바깥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다리는 멀쩡할 때였다. 남편의 알몸은 정말로 벌레가 파먹은 사과처럼 이리저리 구멍이 나 있었다. 가느다란 다리만이 고고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못내 안쓰럽고 볼썽사나워 나도 몇 번인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남편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무능력한 남편은 증오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아픈 몸을 외면하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이런 것을 의무감이라고 부르나. 외면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마주 볼 수도 없어 습관만이 깃든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을 말이다. 그가 복용하는 약은 밥알처럼 많아졌고, 약의 종류와 개수가 서서히 늘어남에 따라 더는 약 먹는 시간과 아닌 시간을 나눌 필요가 없어졌다. 그의 일상에는 쓴 약과, 어떻게든 몸에 힘을 주고 살점을 버텨야만 하는 시간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있지도 않은 살과 근육에 거대한 환상통을 느끼고 난 다음 날이면, 그는 산책을 하자고 했다. 그에게는 산책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부축이자 보호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파하는 사람의 땀을 닦아주거나, 옷 위로 배어나온 피를 닦아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그래, 모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충분히 지옥을 살고 있었으므로.


걸을 수 있는 걸음이 줄어들고, 다리까지 구멍이 나기 시작하자 그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물건을 던지기도 하며, 손찌검을 하려 손을 들 때도 있었다. 술이라도 마시고 고통을 잊고 싶다고 했는데, 근육을 물렁하게 만드는 술은 절대 금지라고 대책 방송에서 일렀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남편을 만류했다. 그는 전에 없이 분노했다. 어째서 자신을 무시하느냐고 멱살을 잡고 물어왔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차라리 내 얼굴을 내가 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폭력적인 시늉들은 어느 날 남편이 나를 때리려 팔을 번쩍 들었을 때, 팔뚝에서 살 한 덩어리가 거실 바닥 위로 철퍽, 애타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때 수도꼭지 잠그듯 멈췄다. 남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조차 흘리는 어린아이처럼 망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남편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한 후 걸레로 거실 바닥을 훑었다. 이런 고통들과 괴로움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고통들이 나의 부주의한 선택의 연쇄작용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섬뜩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딱 그때 말이다. 그때 그 눈빛에 속는 게 아니었다. 잡아오는 손길을 거세게 뿌리치고 찰나의 안정감을 너무 믿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정아 씨, 제가 가족이 되어 줄게요. 정아 씨를, 평생 외롭지 않게 해줄게요. 그 말이 주는 위태로운 따뜻함을 너무 믿지 말 것을 그랬다고. 나는 이미 깨끗해져 먼지 한 올 없는 거실을 한참이나 닦으면서 울었다. 너무 내 탓 같아서, 이 모든 인생과 이 모든 고통이, 꼭 내 탓인 것 같아서. 남편은 직접적인 폭력을 멈추었다. 대신, 주변에 있는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단단한 물건들을 남편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좋은 사람답게, 때리거나 던진 후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말해야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마법에 걸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사죄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말에 속을 때도 있었고, 속고 싶을 때도 있었다. 완전히 속으면 고통 같은 건 사라지는 걸까. 속지 못한 사람들이 남겨져 이렇게 아픈 걸까.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나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참뜻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순종이라는 것은, 말을 듣게 하는 어떤 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 순종은 그랬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고통으로 힘주어 조아리게 하는 것이었다. 괴괴한 죄책감을 주어 몸을 조이게 하는 것이었고, 잊은 척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픈 단어들을 뼈저리는 경험으로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갔다. 아니, 사람이었는지 잊어갔다. 살점이 떨어지는 그와 섹스를 해야만 하고, 그는 내가 내키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할 때면 꼭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외쳤다. 손으로도 돼. 입으로도 돼! 왜 성기는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나는 무엇일까? 어느 날 침대에 누운 남편이 말했다. 나는 침대 옆의 조그만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남편은 젖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윤이는 어디에 있을까?”


피곤했다. 정말로 피곤했다. 나는 반쯤 잠에 취한 채 말했다. 낙원탕에... 윤이는 낙원탕에 있어.


“낙원탕이라는 건 들어가면 고통을 잊게 되는 거야?”

“천국에서는 그래.”

“그럼 자기야, 나도 거기에 들어가면 다 나을 수 있어?”


우습다, 우스워. 이 모든 것이 우습다. 비웃음을 흘리는 의식 위로 졸음이 떨어졌다. 나는 점점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 한줄기 잠을 붙잡고 말했다. 아마도 남편은 못 들었을 거다. 만약 들었다면, 당장 나를 깨워 때리거나 던졌을 테니까.


‘못 가. 당신은 못 가. 거기는 용감하고 착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곳이야.’


남편이 무척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날이 있었다. 그 날, 남편은 홀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손에 든 비닐봉지에서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뭉툭해진 손가락으로 몇 번이고 눌리지 않는 비밀번호를 눌러댔을 것이다. 번호를 세 번 틀려 삼 분간 다시 입력할 수 없는 시간에 나는 남편을 데리러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끙, 하고 남편이 계단에 앉는 소리가 났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웃는 얼굴로 집에 들어섰다. 어색하게 웃으려는 찰나, 남편의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소주 말고,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 내 마음, 인간의 마음.


“저금통이 있길래,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어.”


분홍색 헌금 봉투가 홀쭉해진 채 그의 손에 달려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군데군데 피에 젖어 있기도 했다. 나는 베란다로 달려갔다. 남편이 던진 리모컨에 세게 맞는 바람에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들어 가까스로 난간 위에 올랐다. 남편은 나를 붙잡고 울었다.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나는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돈을 마음대로 써서 미안해, 나는 병자인데, 나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네 소중한 돈을 마음대로 써서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일그러진 얼굴 위로 계속 눈물을 짜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윤이의 귀여운 얼굴이 아주 어렴풋이 깃든 오래된 얼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얼굴. 내가 내려왔을 때, 남편은 뭉툭하고 짧은 손가락으로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 위로 겹친 후 오열하며 말했다. 너 없이 내가 어떡해. 나는 어떡하라고. 아, 인생은 정말로 끝나지 않는구나. 나는 눈을 감았다. 홀쭉해진 봉투처럼 쪼그라든 마음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까스로 평정을 찾은 그에게 약을 먹여 재우고 난 후, 오랜만에 예배당에 갔을 때, 낙원탕은 감쪽같이 사라진 채였다. 선지자도 없었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기도하던 이에게 이유를 물으니 질병이 너무 심해 전염이 될까 봐, 탕을 메웠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의 앞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낙원탕을 돌려주세요. 아니, 나를 힘들지 않게 해 주세요. 저를 좀 구해주세요. 윤이가 보고 싶어요. 제발 남편을 죽여주세요. 남편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고통 없이 남편을 보내주세요. 라고. 어느 순간부터 소리 내어 기도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먼저 앉아 기도하던 그의 따갑고 의아한 눈총을 받았다. 그가 내 기도를 들은 것 같다. 나는 염려하지 않았다. 못된 소원을 빌 때의 마음은 이미 다 잊은 뒤였다. 아마 그도 알 것이다. 기도만으로 뭔가를 해 주는 값싼 신은 없다는 사실을. 예배당을 나선 후, 마트에 들러 세제와 반찬을 조금 샀다. 집으로 들어서기 전, 어쩐지 나는 비밀번호를 세 번 틀렸다. 삼 분간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윤이가 보고 싶을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평온해지는 시간의 냄새를 맡고 그리움은 늑대처럼 찾아오는 것이었으니까. 윤이가 보고 싶지 않다, 아니 보고 싶다. 커다란 바위로 마음을 콱 누르는 상상을 했더니 아픔이 조금 가셨다. 그때,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예사롭지 않은 낌새를 채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두 시간 전까지 사람이었을 누군가의 흔적만이 질펀하게 피 그림자를 지운 채 이불 위에 녹아 있었을 뿐. 분명 남편에게 먹인 것은 잠을 잘 자도록 도와주는 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라졌다. 죽었다는 말보다 사라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가 녹은 자국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현관문을 닫았다. 앞으로는 삼 분을 기다릴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비로소 아, 하고 웃었다. 웃음은 웃음이었다. 정말로 웃음이었기 때문에 웃었던 웃음이었다. 나는 인생이, 참으로 끝나지 않는구나 싶어 계속 웃음이 났다. 하, 하, 하고 웃었다.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김이 나는 것 같았다. 꼭 낙원탕에 몸을 적시면 나던 입김처럼 뜨겁고 진한 것이었다. 나는 계속 하, 하, 웃었다. 불현 듯 욕조에 물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원탕, 이제 나는 두렵지 않다. 진정 용감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가 있었던 자리에, 분홍색 주머니가 피를 머금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쪽을 보는 것도 같다. 아무려면 좋다. 인간의 마음, 그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 위로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욕조에 어깨 한쪽을 기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신을 잃을 것도 같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아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있어 단 한 번도 인생은 끝난 적 없었으니까.





필자 소개


이해주

소설도 쓰고 일기도 쓴다. 가끔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응원 받고 싶다.

세상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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