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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배우 수업



가보지 않은 곳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짐승의 뼈가 발에 걸리는 염소와 말의 초원을, 구름이 걸린 지평선과 게르 위로 흩뿌려진 밤을. 자신할 수 없었다. 허술한 대사 몇 줄로 인물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이 막막해지던 무렵이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오로지 한가지 생각에 몰두해 있었는데도 그것이 어떤 감정의 징후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직업병에서 비롯된 습관의 잔여물, 끝나면 빠져나와야 하는 내 것 아닌 작품, 일교차 큰 어느 날 들어온 인플루엔자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성산동 주택가 후미진 골목에 지금은 허물어 버린 그 지하실이 있었다. 접어서 세워 둔 간이침대에 축축한 수건이 걸려있고 냉풍기가 소리 내며 돌아가던 곳. 난간 없는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세계지도가 붙어있는 벽이 보였다. 어디로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머물 것인지 꽤 구체적인 계획이 빼곡했던 지도가. 언뜻 가지 않는 곳 보다 가려는 곳이 더 많아 보여 나는 바로 물어보았다.

“이게 가능한 계획이야?”

던이는 작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설명했다.

“내년 이맘때쯤 출발해서 마무리 작업까지 칠 년쯤 돌 거니까.”

“아, 길게 다녀오는구나.”

나는 바로 이해한 동시에 던이를 곧 떠날 사람으로 분류했다. 언제 배역을 두고 경쟁할지 모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처럼 미리 거리를 두려 했다. 그때 던이가 “좀 아쉽지?” 웃으며 진저 쿠키가 그려진 틴 케이스를 내밀었다. 당황해서 얼결에 손을 넣었는데 매끈하고 빳빳한 종이가 만져졌다. 누르스름한 바탕에 In이지 ul인지 모를 알파벳이 새겨진 퍼즐 조각이었다. 던이는 조그마한 퍼즐을 만지작거리더니 “몽골엔 내후년 시월에 머무를 예정이니까. 그때 울란바토르로 오면 돼.” 하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울란바토르?”

u와 l이 새겨진 그 조각이 Ulaanbaatar라는 주장은 이상하게도 쉽게 믿어졌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가게 될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스튜디오에 온 건 고작 두 번째였고, 던이에 대해 아는 건 조연출 준희와 친분 있는 사진작가라는 사실 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퍼즐 조각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티슈를 뽑아 축축해진 손을 닦았다.

“내가 너를 왜 만나.”

맥주를 들이켜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나초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눅눅해진 나초를 씹으며 괜히 벽에 걸린 인물 사진들을 보았다. 습기에 우그러져 인상을 쓰고 있는 인상적인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던이는 지난 장마 때 스튜디오가 침수되는 바람에 한바탕 물을 퍼냈다며 툴툴거렸다.

“다 다시 작업해야 돼.”

“그런데 왜 이런데 빌렸어?”

“아는 형이 그냥 빌려주셨거든.”

던이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형편에 관해 얘기했다.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어쩌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왜 스튜디오에서 잘 수밖에 없는지. 그럼에도 내가 단수비자를 발급받아 몽골에 가는 일이 아주 간단한 일인 듯 말하던 던이. 칠 년의 여정을 위해 일 년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서 초기 경비를 벌겠다던 던이. 돌이켜보면 그런 보기 드문 낙관과 낭만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일을 냄새만 맡고도 뱉고 토해 버리는 내 모습에 질려 있던 무렵이었으니까.


맥주가 떨어져서 우리는 스튜디오를 나갔다. 편의점에서 종류별로 맥주를 담아 계산하고 한 캔씩 뜯었다. 차가운 캔을 들고 찻길을 따라 걷는 동안 던이는 몽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두금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낙타라든지, 은하수 속에 떠 있는 듯한 초원의 밤하늘이라든지, 코를 아프게 하는 건조한 모래바람이라든지, 몇 달 살다 온 사람처럼 묘사해서 물었다.

“너 몽골인이지.”

던이는 자신의 눈가를 톡톡 건드리며 “그러기엔 시력이 마이너스인걸” 하더니, 다만 좋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마음이 닿으면 마치 다녀온 장소처럼 느껴진다고. 듣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일 년쯤 시간이 흐르면 내 자취방 월세의 두 배가 넘는 울란바토르행 항공권을 구해 던이를 만나러 갈 수도 있겠구나, 막연히 상상하게 되었고, 그런 예감에 빠져들수록 그가 오래 떠나있을 거란 사실이 자꾸만 상기되어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되었다.

한강공원 입구를 마주하고서야 스튜디오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던이는 누군가 버리고 간 은박 돗자리를 주워와 참나무 그늘에 펼쳤다.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왔고, 우리는 한동안 어느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사라 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져온 캔을 비워갔다. 뒤늦게 올라오는 취기에 피식피식 웃는데, 따라 웃기만 하던 던이가 잠시 멈추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가져오겠다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뭐야, 다음에 찍어.”

“사진은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지금? 너 다녀오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지난번 내가 찍어준 거 맘에 안 들어 했잖아.”

그건 그랬다. 던이는 아르바이트로 바쁜 틈틈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델을 해 주면 프로필을 찍어준다는 조연출 준희의 꾐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흰자가 번뜩이는 삼백안의 눈이라든가, 예민해 보이는 각진 얼굴형, 콧잔등의 붉은 주근깨가 잔뜩 부각된 사진만 여러 장이었다. 모델로는 눈에 띌 수도 있겠지만 연기자 프로필로는 쓰고 싶지 않은 사진. 한마디로 이 바닥에서 난감하다는 말을 대놓고 들어야 하는 튀는 이미지. 물론 그렇게 생긴 것이 나이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런 조건과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역할을 단순한 방향으로 한정 짓게 만드는 나의 외모가 늘 불만이었다.

“여기 있어.”

가려는 던이를 붙잡아 앉히고 나도 모르게 그 대사를 떠올렸다. 아마도 멀리 빌딩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와서였을 것이다.

“저거 다섯 대 지나갈 때까지만.”

언젠가 십 오분짜리 학부생 단편영화에서, 청주 공항 근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극 중 찾아온 연인에게 어서 가라고 화를 내는데 마침 비행기가 소음을 일으키며 낮게 떴고, 잠시 멍하니 있던 상대역이 “저거 다섯 대 지나갈 때까지만.” 하고 애드립을 쳤다. 그 장면은 쓰이지 않고 버려졌지만, 그 순간 구걸하듯 간절해 보였던 표정 연기 탓이었는지, 그 심심한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건 그 대사였다.



한 번 더 얼굴을 본 건, 제적 직전 복학해서 마지막 학기를 수료 중이던 학교 앞에서였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후문의 돌담 앞에서 거의 금발로 탈색한 머리에 흰 티를 입은 던이가 손을 흔들었다. 큰길을 건너 오르막길을 따라 몇 블록 걸었다. 오며 가며 지나치기만 했던 오래된 빌딩 꼭대기에 커피숍이 있다고 했다. 지루한 표정의 알바생이 카운터에서 공업 수학을 풀고 있던,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손님의 전부인 것 같던 한산하고 한가로운 커피숍. 아무 데나 앉으려 하자 던이가 “잠깐만.” 하고 막았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위치를 보는 중이야.”

던이가 의자마다 신중하게 앉아보며 설명했다.

“사진 찍으러 온 거야?”

던이는 “응, 거기 앉아봐.” 하며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한쪽 얼굴로만 해가 쨍하게 들어와서 무심코 파일을 꺼내 햇빛을 가렸더니, 던이가 긴 팔을 뻗어 파일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한강에서 알았어. 너는 자연광으로 찍어야 되는 거였어.”

아니, 거기서 얼마나 더 자연스럽기를 바라는 거야…… 내 프로필을 다시 찍어주러 왔다기 보다는, 자기 작품 사진을 다시 찍으러 온 모양이었다. 던이가 고르고 고른 테이블 앞에 앉은 나는 왠지 모르게 서운해졌고, 어이없게도 조금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 렌즈 캡을 열고 초점을 맞추려는 던이에게 말했다.

“됐어. 찍지 마.”

“왜?”

“싫어, 지금은.”

“아…… 미안.”

던이는 아쉬운 얼굴로 카메라를 내렸고, 그대로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 왜 여기엔 흔한 피아노 연주곡 하나 틀어 놓지 않았을까. 어색해진 분위기 탓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 일 그만둘까 봐.”

“갑자기 왜?”

“지겨워. 맘에 드는 시나리오도 없고, 그마저 거기서 더 싫은 역을 해야 되고. 가릴 처지가 아니란 걸 아는데 맡고 싶은 역이 없는 거야. 오디션도 의욕이 일어야 하는 건데 진심을 쏟을 수가 없고. 언젠가 좋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로 버텨오기는 했는데…… 후진 대사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나도 모르게 조롱하는 버릇이 몸에 박혀 버렸어. 알아? 나 올해로 이거 거의 팔 년째야.”

그 말을 진지하게 듣던 던이가 제안 했다.

“직접 써 보는 건 어때?”

“내가? 내가 글을 어떻게 써.”

한 번도 고려해본 적 없던 선택지 앞에서 고개를 내젓는데 던이가 부추겼다.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

“그냥, 이렇게 보면 보여.”

던이가 망원경 든 사람처럼 동그랗게 손을 말아 자기 눈에 가져다 대었다.

“뭐야……”

머쓱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문득 자신의 비루한 상상력을 지루하게 늘어놓으며 키보드를 뚝딱뚝딱 두드리던 불린 육포 같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뻔하고 유해한 생각을 전시하는데 거리낌 없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게 그들은 무슨 용기로 그 일을 시작했을까. 대체 무얼 믿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고 던이의 등 뒤로 펼쳐진 길고 넓은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얼룩이었을까. 유리에 엷게 색이 들어가 있었다. 경계가 없는 파스텔 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여러 가지 색깔이 입혀져 있었다. 그 창을 투과한 빛은 순간순간 색을 달리하며 던이의 정수리와 어깨에 닿았고, 역광으로 빛을 입은 그의 실루엣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따뜻한 어둠, 부드러운 어둠, 찬연한 어둠. 지금 꼭 찍어야 할 사진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였을까, 곧 사라질 지금 같은 것, 왠지 붙잡아 두고 싶은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 자연스레 멀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없었던 사람처럼 홀연히. 며칠 밤낮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아무런 조짐 없이 연락이 끊어지거나, 혹은 내가 끊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금세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깊이 따져볼 것도 없이 우리는 어떤 의무를 나눠 가진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조차 내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구제가 안 되는 길치인 내가 몇 번씩 성산동을 찾아가 헤맨 이유를.

비슷하게 생긴 오래된 빌라 사이 숨어있는 그 지하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뙤약볕에 정수리가 뜨겁게 익을 때까지 좁은 골목을 헤매다 간신히 큰길로 빠져 나오기를 몇 번 되풀이했다. 한 번은 길 따라 걷다 보니 망원역이 나와서, 망원동 영화사에 있는 준희를 불러냈다. 회의 중이던 준희는 조연출로 들어가는 새 영화로 바빠서인지, 던이의 소식을 모르는 눈치였다. 최근 던이와 연락한 시점이 나보다 훨씬 전이었다. 조명팀으로 영화 일을 시작해 시력이 많이 상한 준희는 눈두덩을 비비며 화단에 담뱃재를 털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배역하나 만들어 줘?”

“뭐라는 거야.”

“급하긴 급했나 보네. 대본 보여 줬을 땐 구리다더니, 윤작가 핑계로 영화사 앞까지 찾아오고, 지금 박감독님 불러달라는 거 아니야?”

역시 준희를 찾아가는 게 아니었다. 좀처럼 정 가지 않을 유형의 인간이어서 오히려 무방비하게 곁을 내주게 된 동료였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와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만 늘 새로 깨닫게 해 주는 인간이었다.

“야, 지난 번 네가 말한 거.”

“말한 거? 말한 거 뭐.”

“전에 을지로에서 네가 술 처먹고 나한테 제발 만나달라고 매달린 거.”

“아아, 그거 생각해 본 거야?”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담배 한 대를 더 꺼내는 준희에게 바로 말을 던졌다.

“응. 너랑은 다시 안 보기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서 빨대를 꽂아 마셨다. 빈속에 차가운 탄산이 퍼져서인지 뱃속이 따갑게 부글거렸다. 남은 맥주를 하수구에 붓고 아스팔트 바닥에 캔을 밟아 찌그러뜨렸다.

며칠이 지나고, 느지막이 일어나 전자레인지에 인스턴트 북엇국을 데우던 중이었다. 간밤에 노트북을 열어두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었는데, 꼭 폭음한 다음 날처럼 두통이 일었다. 시나리오라니, 그런 건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 어딘가 모자라 보이던 찌질이들은 다 어떻게 글이란 걸 쓴 걸까. 설마 오히려 그래서 가능했던 일인가. 그래서 던이가 내게 그런 난데없는 바람을 넣었나…… 전자레인지에서 김이 올라오는 북엇국을 꺼내며 눈으로 아스피린을 찾는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던이였다.

‘지금 어디?’

십 분쯤 고민하다 마지못해 ‘집’ 하고 한 글자 찍어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아쉽네, 학교면 놀러 오라고 하려 했는데.’

북어 건더기를 휘젓던 나는 던이의 뻔뻔한 태도에 나무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뭐 하자는 거야 진짜, 통증이 올라오는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꾹 누르며 소리치는데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지금 내 병실에서 너희 학교가 내려다보여.’



병원 로고가 자잘하게 찍혀있는 홑겹의 환자복, 복도를 오가는 이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6인실 문간 자리. 던이는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윤효. 28세. 남

침대 맡에 붙어있는 낯선 이름표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는데 던이가 눈을 떴다.

“이름이 효였어? 준희가 윤 작가 윤 작가 하기에 윤 씨인 줄은 알았는데.”

이름에 대한 관심으로 인사를 대신하자, 던이가 머쓱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휠체어를 가리켰다. 나는 얼떨결에 소형 냉장고와 벽 사이에 손을 넣어 휠체어를 꺼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공연히 중얼거리며 휠체어의 손잡이와 받침대를 펼쳤고, 던이의 팔에서 바늘과 호스를 타고 뻗어 나간 침대 맡의 링거를 조심스레 내렸다.

“뭔데 휠체어까지 타?”

“그냥, 걸으면 피곤해 지잖아.”

던이가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와 휠체어에 앉는데, 웃으니까 볼이 패이면서 진짜 아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건 처음이라 그런지 숱 많은 정수리가 낯설었다. 푸석한 금발을 밀고 올라온 까만 머리가 가르마를 따라 선명하게 길을 내고 있었다. 괜히 내 두피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어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복도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목 나무 몇 그루와 백일홍, 맨드라미가 드문드문 심겨 있는 옹색한 옥상정원에 도착했다. 입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로 향했다. 신촌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 앞에 휠체어를 붙여두고, 그 옆 나무 벤치에 앉았다. 한숨 돌린 던이는 먼 친척의 소식을 전하듯 말을 꺼냈다.

“젊으면 진행이 빨라서 그럴 수 있대. 올해는 못 넘길 거라나.”

감정을 덜어낸 담백한 대사처리에 나는 휙, 고개를 돌려 던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이 대사가 연기였더라면 너무도 완벽해서 바로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의심할 여유 없이 남은 달을 세었다. 올해가 얼마나 남았더라, 9월, 10월…… 그때 던이가 가디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안에서 만지작거렸다.

“뭔데?”

“울란바토르.”

“그거 네가 갖고 있었어?”

“버리고 갔더라.”

“아, 어쩐지…….”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대기 중인 단역배우처럼 소리를 삼켰다. 동시녹음 때는 숨소리도 잡음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촬영 중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영하 9도까지 떨어진 한겨울이었고, 가출한 고등학생 역을 맡은 나는 짧은 교복 치마 위에 패딩을 걸치고 있었다. 숨 쉴 때마다 솜 빠진 패딩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던 것 같다. “잡음 누구야?” 나를 겨냥한 말인 줄 몰랐다. 괴팍한 감독인 건 알았는데 대뜸 내 앞으로 다가와 뺨을 칠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좀 좋은 걸 사 입지.” 누군가 농담이랍시고 말하고 하하, 웃었다. 그 배역을 따내기 위해 포기한 것이 너무 많아 순간 소리 내 웃거나 서럽게 울거나, 둘 중 하나를 빠르게 택해야 했고, 나는 아래턱을 목 가까이 바짝 당기고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그 작은 역할을 지켜 냈다고 믿어 왔다. 성대가 아프게 조여들도록 턱을 바짝 끌어당기면, 하고 싶은 말도 솟구치는 감정도 누를 수 있다고 자신하던 때였으니까.

빌딩 너머로 천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던이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난간 밖으로 퍼즐 조각을 던졌고, 갑자기 촬영이 중단된 현장처럼 옥상정원에 백색 등이 켜졌다. 멀리 대학의 노천극장에서는 축제 공연 리허설을 하는지 앰프에서 번지는 소리가 자동차 소음에 섞여 윙윙 울려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던이가 난간 앞에 서서 꺼낸 말이 바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라고?”

“사실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

“……”

“정말 너 안 보고 싶었어.”


병실에는 희끗희끗한 곱슬머리의 중년 여자가 침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던이를 보더니 링거를 받아들고 침대에 눕는 것을 도왔다. 내가 휠체어를 소형 냉장고와 벽 사이에 접어 넣는 동안 캐리어에서 모란무늬 극세사 이불을 꺼내 던이에게 덮어주었다. 어머니인 듯했다. 던이는 그가 이불자락을 가만가만 토닥여 주자 금세 잠이 들었다. 자연스레 그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몸집이 자그마한 던이 어머니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우리 새벽이랑 친해요?”

“네.”

친하다는 것의 기준이 뭘까. 난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만큼은 내가 살면서 따져온 수많은 관계의 기준들이 사사롭게 느껴졌으니까. 던이의 어머니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맞은편 병실에서 소변 통을 들고나온 간병인이 우리를 흘끗 보고 지나가고, 크록스를 신은 젊은 의사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지르는 동안, 그의 둥근 어깨를 감싸고 보호자 휴게실까지 부축했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멀거니 허연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며 기다렸다.

던이 어머니는 주섬주섬 반지갑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태어나 백일쯤 되었을까, 걸친 것이라고는 기저귀뿐인 던이의 아기 때 모습. 자꾸 새벽이가, 새벽이가, 하기에 그게 뭔가 했더니, 윤효의 효가 새벽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던이의 던은 새벽의 dawn이었나. 나는 그 담백한 작명법에 힘없이 웃었고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절 못 하게 만드는 눈웃음이라든지 끝이 살짝 올라간 새초롬한 입매, 다정한 말투가 던이를 닮은 것도 같았다. 내가 남의 집안 사정을 이렇게까지 알아도 되나, 싶을 때쯤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병인을 쓸 형편은 안 되고, 유일한 보호자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빈속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털어 넣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오후 늦게나 수업이 있어 오전 공강이 길었던 날이었다. 본관 검진센터 앞에서 던이를 기다리는 동안, 전날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돌잔치 때 실뭉치를 집은 던이, 원비를 못 내 유치원을 그만둬야 했던 던이, 한겨울 눈 쌓인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다 발목에 금이 간 던이. 그런 여러 모습의 어린 새벽을 상상하는 동안 던이가 불그스름해진 눈으로 검진센터 문을 열고 나왔다.

“카메라를 안으로 집어넣더라.”

“응?”

“늘 먼 곳만 상상해왔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보는 방법으로. 그저 풀로만 가득한 초원이라고 생각했는데, 망원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눈에 대면 풀 뜯는 염소와 말이 들어오는 거야. 몽골인의 눈을 갖는 거지. 근데 정반대의 방법이 있더라. 의사의 눈을 얻는 방법으로.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쑤셔 넣는 건 너무하잖아.”

“내시경 했구나. 마취를 하지.”

“몸 상태가 안 된대.”

“아……”

“나 커피 마실래.”

“마셔도 돼?”

“연하게 한 모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멀리 갈 수 없어 병원 1층의 베이커리 겸 카페로 들어갔다. 에스프레소를 반 샷만 넣은 아메리카노에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아 샌드위치의 포장을 벗기려는데 던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코를 막았다. 금방이라도 구역질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으냐고 묻기도 전에 던이가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서, 포장을 벗기다 만 샌드위치와 묽은 커피를 그냥 둔 채로 던이를 따라 나와야 했다.

병실로 돌아온 던이는 침대에 누워 힘없이 웃어 보였다.

“미안해.”

“뭐가.”

“자꾸 잠이 와서…… 커피를 못 마셔서 그런 가봐.”

이불을 덮어주자 던이는 희미하게 미소 띈 얼굴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는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밀린 웹툰 몇 개를 챙겨 보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뉴스 두어 개를 클릭하다 던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버섯, 부추, 단호박 따위의 효능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문서창을 띄웠다. 무심코 눈앞에 몽골을 그렸다. 노랗고 파란 꽃양귀비와, 밑동만 까맣게 남은 침엽수와,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는 게르……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는 풍경들을 그렸다 지우고, 또 그렸다 지우는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 해 걸음이 길어져 던이의 턱 끝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들이 누워 있는 침대 몇 개를 거쳐 창가로 향했다. 병실 창밖으로는 정말 내가 다니는 학교가 내려다보였다. 그냥 조용히 학업에 충실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턱걸이로 경영학부에 입학하고서는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시절 파고들다 이내 빠져나올 거라고, 곧 싫증 낼 거라고, 너는 어릴 때부터 근성도 끈기도 없었다고. 나는 색색의 움직이는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한동안 지켜보다 팔을 뻗어 블라인드를 내렸다.


병실에 며칠 출입하다 보니 던이가 찍은 인상적인 사진 속 인물들을 현실에서 마주할 때가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면 나는 던이를 흔들어 깨웠고, 한 발 떨어져 잔상에 남았던 사진과 찾아온 사람을 머릿속으로 대조해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던이를 오랫동안 끌어안고 숨을 고르던 여자는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어쩐지 자리를 피해 줘야 할 것만 같아 외투와 가방을 집어 들었더니,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죠?”

“영화에서 봤겠지.”

던이가 대신 대답했다.

“아, 배우시구나. 어쩐지.”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여자의 말이 맞을 것이었다. 스크린 속에 스쳐간 내 모습을 보았을 확률보다, 합정이나 홍대나 충무로 어디쯤의 현실 세계에서 마주쳤을 확률이 훨씬 높을 테니까. 여자가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물었다.

“아직 식사 전이죠?”

여자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걸어 내려가다 처음 발견한 음식점은 돈가스 전문점이었다. 내가 판모밀을 시키자 여자는 메뉴도 보지 않고 같은 것으로 달라고 했다. 여자가 먼저 입을 뗐다.

“새벽이와는 반년쯤 만났어요. 쇼핑몰 일을 하다 알게 됐는데, 모델을 예쁘게 찍어주진 못했죠. 포토샵 문제로 트러블도 좀 있었고…… 아니, 일단은 모델이 예뻐야 팔릴 것 아니에요. 그게 마케팅의 기본 중 기본 아니에요? 좀 더 예쁘게 만지는 일이 그렇게나 못마땅하면 그냥 풍경을 찍든가 다른 알바를 하지. 저는 아직도 궁금해요. 뭐 그리 대단한 예술을 하겠다고 칠 년이나 해외로 나가겠다고 한 건지……”

여자는 소스에 적시지도 않은 메밀 면을 조금씩 건져 먹으며 갑자기 가을이 되어버린 날씨라든지, 요즘 새로 개봉한 영화나 공연에 관한 대화를 간헐적으로 이어갔는데, 별안간 “개새끼.” 라고 소리치고 눈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그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나는 종업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냅킨을 좀 넉넉하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첫 병원에서는 결국 퇴원을 권유했다. 던이는 수술해주겠다는 의사를 찾을 때까지 집에서 버티겠다고 했다. 자취방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두 시간 십오 분. 서울의 변두리에서 변두리. 새삼 서울은 지나치게 넓었다. 버스 정거장 앞 과일가게에서 귤 한 봉지를 계산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언제 와?’

‘다 왔어. 먹고 싶은 건?’

‘그냥 와.’

현관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에 짐이 가득 들어찬 작은 방이 보였고, 좁은 부엌을 한 걸음 넘어서자 붙박이장과 텔레비전이 마주 본 안방 겸 거실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이부자리가 흐트러져있었고, 물병과 약봉지들로 어수선해 마땅히 앉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귤 봉지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던이가 몸을 일으켰다.

“산책하자.”

“괜찮겠어?”

“조금 걷고 싶어서 그래.”

오래된 아파트가 끝없이 늘어선 동네,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더 키가 커 보이는 은행나무, 간밤에 내린 비로 좁은 인도에는 노란 잎이 수북이 깔렸고, 썬캡을 쓴 아주머니 몇 명은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자루에 은행을 주워 담고 있었다. 우리는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바닥을 보고 걸었다.

작은 서점이 보여서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학교와 아파트밖에 없어서 그런지 서점에는 언뜻 학습지나 참고서, 유아 서적만 즐비했다. 한쪽 구석에서 패션잡지를 찾아낸 던이가 표지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사진을 왜 이따위로 찍었을까.”

표지를 보니 언젠가 한 번 작품을 같이 했던 남자 선배가 단독으로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아……”

십수 년 연극만 하다 영화판으로 넘어온 ‘연기파’ 배우였는데 현장에서 몇 번 나를 불러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편의점에 가려면 논두렁 몇 개를 넘어야 하는 시골에서 꼭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밤에 그 일을 시켰다. 단역이었던 또 다른 친구에게는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 마른 몸을 더 마르게 하겠다고 선식으로 거의 식사를 때우던 예지, 현장에서 유일한 동갑내기였던 그 애는 그 작품 이후 이 판을 떴다.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캐나다로 이민 갔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그때 던이가 북, 소리 나게 표지를 찢었다. 나는 황급히 카운터를 확인하고 던이의 손등을 살짝 때렸다.

“야 무슨 짓이야.”

“그냥, 너무 보기 싫어서.”

“하, 정말. 어서 나가자.”

훼손한 잡지를 구석에 처박아두고 서점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걸었고, 바람을 많이 쐬었다. 던이가 한 번씩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를 때마다 나는 괜히 땅바닥이라든가 길 건너 상점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부축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애매하게 던이의 옷자락을 잡고 걸었는데, 던이가 걸친 베이지색 니트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팔짱을 꼈다. 던이는 다시 멈추어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은행잎 한 장이 옷깃에 달려 있어 손을 뻗어 은행잎을 떼어주며 물었다.

“너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

“티비도 보고, 귤도 까 먹고, 너 잠들면 글도 쓰고.”

“안 돼.”

“왜?”

“그냥, 네가 누울 공간이 없어.”

터진 은행알을 발로 툭, 툭, 차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자, 던이가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포슬포슬한 니트에 얼굴이 닿아 눈이 감겼다. 따뜻한 어둠, 부드러운 어둠…… 그 찬연한 동굴 속 그림자의 세계에서 나는 문득 아프지 않은 던이를 상상했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 던이를 바랐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 서 있었을까, 하는 덧없는 상상을 해 보려다 바로 얼굴을 떼고 가슴을 밀었다. 우리는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다시 걸어온 방향으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멀리 귤 한 봉지를 샀던 과일가게 앞 버스 정거장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언젠가 생긴 버릇처럼 성대가 아프도록 아래턱을 목 가까이 끌어당겼다.



큰 병원 네 곳을 찾아간 뒤에야 수술을 해 보겠다는 의사를 만났다. 수술을 앞두고, 지방촬영을 마친 준희가 뒤늦게 찾아왔다. 나는 병실 세면대에서 캠벨포도 한 송이를 씻어 일회용 접시에 냈다. 과일가게 주인이 유통창고에 보관해 놓았던 거의 마지막 포도라고 했던 것이었다. 준희는 그동안 다녀간 몇몇이 그랬듯 예후가 좋았던 누군가의 기적적인 투병기를 읊었고, 촬영 도중 낚시를 하다 대어를 잡은 이야기를 과장되게 늘어놓았다. 던이는 아픈 티를 내지 않는데 남은 힘을 끌어다 쓰느라 말을 거의 듣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포도를 접시 째 냉장고에 넣으며 준희에게 눈치를 줬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희가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언제부터 만났냐?”

“만나긴 뭘 만나.”

“그럼 너 여기서 뭐하냐?”

“나? 과제도 하고, 대본도 끄적이고. 뭐, 이따 어머님 오시면 바로 갈 거야.”

“허, 참.”

“……”

“야, 배우로서 이런 감정적 경험 욕심나는 거, 나 이해 못 하는 거 아니다. 너한테는 이게 다 학습이고 자산이겠지. 일반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해해. 일도 존나게 안 풀리고 영화판도 좆 같은 거. 니가 말하는 알탕,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근데 뭐, 그래서 네가 뭘 어쩔 건데. 너도 그걸 모르고 들어온 거 아니잖아? 안 그래도 요새 술자리에서 네 얘기 돌더라. 진수 형이랑 영민이, 그리고 미술팀 걔 누구냐, 진석이도 문병 다녀갔다며. 소문 다 났어 인마.”

“나 글 써야 되니까 어서 가주라.”

“야, 너 아까부터 자꾸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 그냥 하던 거나 잘 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제발 꺼져. 우리 안 보기로 했잖아.”

준희는 예의 그 빠르게 깜빡이던 눈을 손등으로 마구 비비더니, 엘리베이터 옆 자판기에서 솔의눈을 뽑아 단숨에 들이켰다. 텅 빈 엘리베이터 문이 한 번 열렸다 닫혔고, 준희는 고개를 돌려 던이가 있는 병실 방향을 쳐다보았다.

“윤 작가, 인간적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다. 너 한번 잘 생각해 봐. 윤작가 성격에 이렇게 와달라고 했을 리는 없고. 네가 흘린 일들 책임질 수 있을지.”


찬물로 얼굴을 씻고 병실로 돌아오니 던이는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드물게 고요한 오후였다. 오전에 사망 환자가 침대와 함께 병실을 나가서인지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나는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 던이의 팔에 꽂힌 주삿바늘과, 링거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마약성 진통제와, 살을 얼마간 도려낸 듯한 마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어두워지면서 심장이 뛰었다.

이 얼굴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을까.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젊으면 진행이 빨라서 그럴 수 있대. 올해는 못 넘길 거라나.’ 먼 친척의 소식을 전하는 듯했던 던이의 옆얼굴, 완벽한 연기처럼 느껴졌던 담담한 모습이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겹쳐졌다 흐려져 갔다. 길게 심호흡을 하고, 무심코 코 밑으로 손가락을 가져가려는데 던이가 눈을 떴다.

“누구 왔어?”

손을 떼고 고개를 내저었다. 던이의 눈이 다시 감기려 해서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또 자는 거야?”

“응?”

“새벽아, 나 심심해.” 

나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는 던이의 팔을 붙잡았고, 잠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개를 들었다. 던이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서울이었어.”

“……”

“서울에선 약속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

무슨 말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서울의 영문 Seoul에도 울란바토르처럼 u와 l이 들어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퍼즐 모서리에 찍혀있던 알파벳 첫 글자가 소문자였던 것 같기도 했다.

“수술 무사히 마칠 거야. 다녀와서 이야기 많이 하자.”


그날은 한산한 다른 병동으로 넘어가 늦게까지 병원에 남아 있었다. 간호사 스테이션 맞은편의 빈 휴게실에서 아무것도 없는 흰 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득 공기가 써늘하게 느껴졌고, 손이 시려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시는데 입안이 욱신거렸다. 화장실에 가서 입을 크게 벌리고 거울을 봤더니 혀 안쪽 깊숙한 부위가 송곳으로 긁어낸 듯 여기저기 허옇게 헐어 있었다.

밤에는 자취방 바닥에 누워 심하게 앓았다. 온몸에 열이 올라 차렵이불 안에서 땀에 젖은 옷을 한 겹씩 벗어야 했다. 아침이 되자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몸에 오한이 일었다. 밤새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듯 여기저기 근육이 쑤셨다. 큰길의 조그마한 동네 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호흡을 이어가기 힘들 만큼 기침이 났다. A형 독감이라고 했다. 독감이란 말에 놀라서 되묻자 노의사는 아이를 어르는 투로 말했다.

“젊은 사람은 어지간해서 안 죽어요. 나 같은 늙은이나 가는 거지. 주변에 옮기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주사실의 좁은 침대에 몸을 눕히자 간호사가 알코올 솜을 문지른 팔에 바늘을 찌르고 링거를 연결했다. 그러는 동안 붙박이 선반에 위태롭게 쌓아놓은 주사약 상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몸 안에 미지근한 수액이 돌기 시작하자 견딜 수 없이 나른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취약도 아닌데 침대 밑에서 누군가 팔을 뻗어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몸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창가로 자리를 옮긴 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활짝 젖힌 커튼 사이로 쨍하게 역광이 비쳐 던이는 하나의 실루엣으로 보였다. 그 따사롭고 부드러운 어둠은 라디에이터에 걸터앉아 투명한 아크릴 통을 집어 들었다. 호스에 입을 대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알록달록한 공들이 춤추듯 오르락내리락했다. 나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와 머플러로 무장하고 병실 앞을 스쳐 지나가듯 몇 번 기웃거렸다. 외투 깃을 여며 쥐고 병동 로비를 빠져나오는데 익숙한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길 잃어버렸지?’

왜인지 나는 다시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한여름의 성산동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대체 간판도 없는 붉은 벽돌집 지하실을 설명만으로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수화기 너머로 던이가 주변을 묘사해 보라는데 둘러보면 다 똑같이 생긴 빌라뿐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때 멀리 골목 사이로 손을 흔드는 던이가 보인다. 밝게 탈색한 머리를 하고, 언젠가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었던 동갑내기 배우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면서.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휴대폰 액정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찍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나 작품 들어가. 진작 말하려 했는데, 기회가 안 났어.’

병원 앞 정거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다다를 무렵 답이 왔다.

‘오기 싫었구나.’

그 짧은 문장 뒤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웃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붙어있었다. 답을 보내지 않았다. 일부러 투정인 듯 던져 본 말이라는 것을, 어떤 소극적 시도라는 것을 모르지 않아서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주저앉아 조금 울었다. 지하철 환풍구 앞에 걸터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서 한동안 올라오는 바람을 맞았다.



수술을 택한 건 잘 한 일이었다. 던이는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요양을 위해 강릉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한 번씩 항암 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온다는 소식은 던이의 블로그에서 보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느 바닷가 커피숍에서 사진전을 열었고, 반응이 좋아 서울에서도 같은 전시를 몇 번 더 열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시간과 장소가 적힌 초대장이 단체 문자로 날아왔다. 가끔 오가다 마주친 누군가 나에게 던이의 소식을 물어오면, 윤 작가와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잘 모른다고 잘랐다. 회복되는 듯 보였던 던이가 갑자기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은 준희에게 전해 들었다.

시간을 가지니 어지럽게 부유하던 침전물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나의 상태도 조금씩 진정되는 듯 했다. 졸업장을 받던 날, 학교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세면대 거울에서 아주 낯선 듯 익숙한 얼굴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텅 빈 삼백안의 눈, 머무를 곳 없이 각진 얼굴, 표정을 뒤덮은 붉은 주근깨. 내가 작가라면 이 얼굴을 두고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인물을 어디로 보낼 수 있을까.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을 지닌 인물에게는 한 씬도 내주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의 애정도 아까웠다.

한동안 끄적이던 시나리오를 전부 휴지통에 넣고, 현금 서비스를 알아보았다. 칼로 눈꼬리를 찢어 내리고, 톱으로 얼굴 뼈를 갈고, 레이저로 주근깨를 지졌다. 적지 않은 빚을 만들었고, 붓기가 가라앉자마자 바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대본이 구리든 후지든 상관하지 않았다. 고르고 가리고 따지려는 돌올한 마음은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마모되고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한-중 합작 영화의 누군가 반려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본을 받고서야 원나라 장수 부인 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초반 몇 씬은 몽골 현지촬영이어서, 급하게 단수비자를 발급받았고, 같은 날 병원에 들러 신경안정제도 처방받았다.

출국 전 새벽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불 꺼진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는데, 어둑한 천장이 가지를 쳐 나가듯 잘게 나뉘더니 커다란 퍼즐의 꼴을 갖추어 갔다. 어른거리는 작은 조각마다 하나하나 지명을 붙여 보았다. 런던, 파리, 앙카라, 암스테르담, 브라질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하노이…… 희부옇게 천장이 밝아올 때까지, 그래서 그 구불구불한 경계가 흐려지고 빛바랜 민무늬 벽지가 다시 또렷해질 때까지, 아는 지명들을 중얼중얼 읊조렸다. 나는 알람이 울리고도 한참 뜬눈으로 누워 있다가, 팀 사람의 전화를 받고서야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팀 사람들은 이미 수화물을 부치고 탑승구 쪽으로 이동한 뒤였다. 뒤늦게 서둘러 탑승 수속을 밟고 걸어가던 중, 나는 낯익은 번호로 문자 한 통을 받고 돌부리에 걸린 듯 멈추어 섰다.

‘심심해’

나는 그 세 음절이 던이가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순간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지난 새벽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잠시 웅크리기로 했다. 충동은 사랑과 비슷한 면이 있어 잔뜩 웅크린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이 아니게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가끔씩 멍하니 보곤 했던 그 사진들은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 단 한 번도 쓴 적 없던 그 사진들을, 그래서 더 사람같이 느껴졌던, 더 진짜의 나처럼 보여서 오히려 무용했던 던이의 사진들을 이제는 전부 삭제해야겠다고.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로 울란바토르행 비행기가 곧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탑승구 근처에서 누군가 새로 만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고, 아래턱을 목 가까이 바짝 끌어당겼다.




필자 소개


류시은


소설가. [나나], [인물과 식물]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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