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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진시황은 살아 있습니까?




죽는 소설만 썼다

선생님이 말했다 너 사람 좀 그만 죽여 일상적인 얘기를 쓰렴

사람은 원래 다 죽어요 선생님도 오늘 집 가다 죽을 수 있어요 변기통에 빠져 죽는 인간도 있는데요 그럼 그게 내 일상이에요?

심상치 않은 말들만 골라 하는 게 시라면

죽을 시를 쓰기로 했다 죽는 소설은 쓰지 말라길래

그렇게 수연이한테 말했는데 메모장에 써놓으래

지금 여기까지는 수연이가 시켜서 쓴 말

누가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수연아 막걸리 건더기는 먹지 말자 다음날에 머리 깨져요

사람 머리가 그렇게 쉽단다

여기 장수 한 병만 더 주세요

두개골을 쪼개면 뭐가 나오나요

오딧세이에서는 도끼로 사람 머리를 찍으니 신이 되던데

지점토로도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은 뭐하러 사람인가요

이야기에 아무 내용도 없으면 뭐하러 이야기를 쓰나요

독재자가 되고 싶어

제멋대로 살지 마세요 수틀리면 가만 안 둘 거니까

나만 보면 꼬리를 말고 발발대던 옆집 개도 지가 개새끼인 줄은 알던데

선생님 왜 사람새끼인 줄을 몰라요

선생님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죽어요

언제든지 죽어요

나는 죽어서 뭐가 될까요

욕을 먹으면 오래 사는 것처럼 원한이 모이면 귀신도 신이 될까요

그래서 신은 이 세상을 만들었던 거야

원래 가진 놈들은 뻔하게 못돼 처먹었거든

놀이터에서 안 타는 그네 위에 침을 뱉어 놓는 어린애처럼

가질 수 없다면 부수어라

인류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어디에 묻혔을까

과거가 추억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선생님은 내 소설에 불필요한 인간이 많다고 했잖아요

진시황은살아있습니까.hwp를 저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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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없음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음

대장경을 금동불상 안에 닭백숙의 찰밥처럼 숨겨놓음

배를 가르지 않고는 꺼낼 수 없음

침략당하기 전에 먼저 베자는 내 선조의 유구한 가르침

기원전부터 대물림된 우성오염인자

뺏길까 봐 헌혈도 한 적 없어요

그래요

동창회가 열리면 수연이와 함께 만나요 선생님

나는 징그럽게 오래 살 겁니다










작가 소개

이리

문학 레이블 공전 보스. <모티프> 책임편집인 겸 패션디렉터. 종종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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