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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취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전기

2019년 6월 11일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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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취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전기

- 글렌 아담슨의 『공예로 생각하기』를 읽고



글렌 아담슨의 『공예로 생각하기』에서, 저자인 글렌 아담슨은 공예가 근대 미술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대립항의 위치에 놓여 있음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언급하며 시사한다. 허나 아도르노는 미학이론을 통해 “자명한 사실은 예술에 관한 어떤 것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과 세계의 관계도, 예술이 존재할 권리도.”라고 밝혔다. 어떤 것이 미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범주는 어느 정도인가. 미술은 얼마만큼의 포용력을 가졌는가. 그리고 어떤 한계들을 생성하는가. 저자는 이 책으로 하여금 그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용이하도록 우리를 이끌어들인다. ‘공예’를 포스트콜로니얼, 젠더의 문제로 끌어들이면서, 기존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에서부터 비평 작업을 실행하려 한다.

저자는 공예의 여러 범주 중에서도 ‘아마추어’적인 성격과 페미니즘 작가들의 작업을 연계하여 언급한다. 여기서 뜻하는 ‘아마추어리즘’이라 함은, 미술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범주, 아웃사이더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행위들을 일컫기도 하면서, 또한 대중들이 소비하는 실제 취미로서의 공예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맥락 속에서 ‘퀼트', ‘자수', ‘장식화' 등 귀족 여성들이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행위로서의 소위 ‘교양 활동’과 같은 사적인 영역에 놓인 활동들이, 점차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진 여성 작가들의 작업 소재로 사용됨으로써, 본래의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 미술계가 독점하고 있던 형식과 태도(젠 더)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으로 확장되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여러 여성 예술가들에 의해 취미와 애호의 수준을 뛰어넘어 미술이 가져야 하는 작업적인 질문과 고민들을 함의하고 있는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도예가 로버트 아네슨은 자신의 도예 작업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취미”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지만, 이는 화자의 언급이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서,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의 예술적인 작업에 대해 그토록 자기 비하적인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이 더 의미있을 지 모른다. 그동안 도예가 미술의 하위 개념으로써 어느 정도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었는지, 도예에 대한 가치 평가가 온당했었는지를 따져 본다면 그녀의 위 언급이 무척이나 자조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로 삶과 작업을 완벽하게 구분지어왔던-그리고 그것이 프로페셔널하다고 자인해왔던-기존 의 남성 작가들과는 달리, 여성 작가들은 미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지워가며 자신의 일상과 작업을 동일선상에 두었으며, 그러한 작가들은 20세기 근대 미술 사조의 무거운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네슨은 자신의 도예 작업을 “그냥 빌어먹을 공예일 뿐이다."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뭔가... 당신도 알다시피... 그 장엄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라고 덧붙인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한다.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의 범주 바깥에 있는 것들은 미술이 될 수 없는가? 미술의 범주 바깥에 놓여 있던 것들-이 책에서 ‘공예’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희한하게도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여진다. 어떤 범주의 바깥에 비껴서 있는 것들, 사람들, 사물들. 대개 그런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은 여성들이었고, 여성들의 공간에서 빚어지고 꿰어지고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저자는 많은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이 가정적 미술의 오랜 역사를 환기시키는 그러한 ‘공예’들, 그러한 ‘아마추어 활동’들을 미술사에 복권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섬유 콜라쥬를 이용한 프레임 작업인 <화장대에 앉아 있는 여인>의 작가 미리암 샤피로는 “어릴 적에 나는 엄마와 이모가 세계에 대해-할머니의 세계나 그들 자신의 세계에 대해-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들의 삶이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 미래가 공간적으로 확장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말하며, 덧붙여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대단히 체계전복적이다.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수용되기 힘들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수용된다면, 당신은 여성 들에게 뇌가 있으며, 용기가 있으며, 능력이 있으며, 세상을 움직일 능력이 있으며, 철학자가 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조안 아르바이터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녀가 작업에 활용한 소재는 가정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섬유 소재였으나, 작업의 내용, 그리고 작업의 의도를 비춰 보면 소재에게 기대할 수 있는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전위적이고 전복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 쓰이는 부드러운 재질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체제 전복이라는 의식적인 태동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로지카 파커는 ‘자수’에 대해 “이상적 여성상으로 여성을 교육하고 여성들이 그것을 잘 습득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여성성이라는 고통스러운 제약에 대한 저항의 무기”라는 양가적인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미술가인 주디 시카고는 이러한 페미니즘과 아마추어리즘의 성격을 혼합한 작업인 《여성의 집》이라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여성의 집》은 현실적으로 여성이 가장 오래 존재해왔던 공간인 ‘집(house)’에서, 여성의 삶에서 활용되었던 모든 질료들로 미술적 가치를 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건물이 파괴되고 작품이 유실되는 등 남겨진 작품 하나 없이, 당대의 해프닝이자 이슈로만 기록되었다. 또한 주디 시카고의 또 다른 작품인 <디너 파티>에 참여한 200여명의 여성 봉사자들은 크레딧 없이 무기명으로 작업하였으나,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주디 시카코의 이름만이 캡션에 남게 되었다.

나는 이 챕터의 발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버지니아 울프가 떠오르게 되었고, 버지니아 울프 와 그녀의 언니 바네사 벨이 함께 참여했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을, 그 그룹에 속한 저명한 남성들 을 떠올렸다. 만일 버지니아 울프가 존 케인스와 로저 프라이, 그랜트 던컨이 속한 이 그룹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인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출판할 수 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실제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그녀의 책 『자기만의 방』을 통해 서술한 바 있다. 또한 그녀는 여성에 관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그중에는 실제 현존했던 사람들의 전기도 있었다. 영국 인물 사전을 만들었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기(biography)’에 대한 버지니아의 애정은 매우 각별했는데, 특히 그녀는 1925년에 출간한 『일반독자』 (The Common Reader)에 《이름 없는 사람들의 전기》라는 에세이를 실기도 했다. 버지니아는 평범한 중간 계층, 특히 중산층 여성의 삶이 문학이든 기사든지, 활자로 적혀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고, 그런 보통의 여자들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 시절 전기문학의 주인공은 언제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남성들이었으므로. 그녀에 따르면 그 위대한 남성들의 뒤에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양육해 온 수많은 이름 없는 중산층 여성들의 삶은 글로 기록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돈이 많고 없음의 계급적 차이에만 관심을 가질 뿐, 평범한 삶은 간과해 왔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작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자신 의 책을 통하여 작가 지망생 여성들의 이야기를 씀으로써, 여성에게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문학의 범주 바깥이 아닌 안쪽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끝없이 보여주고자 했다.

어떤 것이 미술인가. 또는 어떤 것이 문학인가. 내게는 매번 거대한 질문이면서, 또 이토록 우문이 있나 싶기도 하다. 기준을 세움과 동시에 결국

에는 비껴서게 되는 것들, 그 섬약하고 여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저자인 글렌 아담슨은 "공예는 반 드시 자기 자신 너머의 뭔가를 만들기 위해 자기 존재를 감추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논의를, 우리는 발견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 우리가 직면해야 할 예술의 태도가 있다.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장엄 한 무언가.




필자 소개

차현지

소설가. 산다고 살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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